문다혜 씨 CCTV영상 방송 도배 괜찮은가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불법, 범죄 무관하다면
이를 무단으로 방송에 내보내면 안 돼
설령 관련 있더라도 망신주기 목적이라면 곤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TV기자들 ‘단독’ 욕심에 과도하게 모욕 당한 문다혜 씨 경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 씨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자 마치 경쟁하듯 방송사들의 CCTV 영상 방출이 시작됐다. 그녀가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걷는 모습, 자신의 차를 찾지 못해 다른 이의 차 문을 열려고 하는 모습들이 담긴 CCTV 영상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그 누가 한 번쯤은 술에 취해 갈지자로 밤거리를 걸어본 적 없겠냐만은 그런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CCTV 영상이 이런 식으로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정신적 충격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문다혜 씨는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을 부인하지도 않았고, 운전자를 바꿔치기 하지도 않았고, 사고가 난 이후에 현장에서 도망을 치지도 않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아무리 그녀가 전 대통령의 딸이라지만 그녀 자신이 공인인 것도 아니니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그녀에게 망신을 줄 공익적 필요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관건은 시청률.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 끌 자극적인 영상을 내보내기 위해 기자들은 요 며칠 간 이태원 거리를 누볐을 것이다. 그녀의 모습이 담긴 영상 하나를 발견할 때마다 특종을 잡았다면서 기뻐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입맛이 씁쓸해졌다. 법률가로서의 나의 견해는 방송사들이 문다혜 씨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있다. 한 무인 문방구 점주가 자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어린아이가 담긴 CCTV 영상을 캡처해서 프린트한 다음 문 앞에 붙여두었다. '2만 3천 원 상당의 피규어 1개와 포켓몬 카드 11장을 결제하지 않고 가져간 아이를 찾는다'는 글과 함께. 이에 대해 법원은 '사진을 게시함으로써 그곳을 출입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보도록 했다'며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점주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위와 같은 법원의 태도에 의하면 방송사들은 모두 사실을 적시해 문다혜 씨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방송사, 무인점포 주인, CCTV 건물주, 모두가 인권침해 용의자
한편, 방송사들이 그 CCTV 영상을 어떻게 확보했을까를 생각해보자. 방송에 사용된 영상은 공공CCTV 영상은 아닐 것이고 분명 사설CCTV 영상일 것이다. 기자의 취재에 응하여 CCTV를 설치한 사인들(대부분은 건물주)이 영상을 방송사에 제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술한 바와 같이 CCTV 영상의 방송 송출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면 그것을 방송사에 제공한 자 역시 명예훼손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10월 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의 음주운전 사건과 관련해 잘못된 폐쇄회로 CCTV 영상을 방송한 JTBC ‘뉴스룸’에 대해 법정 제재를 결정했다. ‘뉴스룸’은 지난 8월 7일 슈가의 음주운전 사건을 전하면서, 전동스쿠터를 운전하는 다른 일반인의 CCTV 화면을 마치 해당 사고 관련 영상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보여줘 시청자를 오인케 했다. 방송사가 사과를 했기 때문에 법정 제재 중 가장 낮은 ‘주의’ 처분을 받았는데 사실은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사적인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을 아무런 윤리적·법률적 검토 없이 무제한 송출하는 것이 과연 방송 윤리에 맞는 것인지.
슈가는 비록 공인이기는 해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바 없고 전동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스스로 넘어졌을 뿐 사고가 난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슈가가 전동스쿠터를 타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해서 방송으로 송출해야 하는 이유는 순전히 방송사들의 취재 경쟁 때문이다. 자료화면이 있어야만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빨리 CCTV 영상을 확보하려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건과 관계없는 영상이라도 일단 틀고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호중과 슈가, 문다혜는 다른데도 같은 것만 보려는 방송사
이런 CCTV 영상 확보 경쟁은 사실 올 5월 9일경 가수 김호중의 음주뺑소니 사건 때 절정을 이루었다. 그 이후로는 방송사들도 시청자들도 암묵적으로 음주운전 사건 보도에는 CCTV가 자료화면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형성하게 된 것 같다. 물론 가수 김호중 씨의 경우에는 본인이 음주 사실 자체를 강력 부인하고 증거인멸 시도를 거듭했다.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방송사들의 CCTV 영상 송출은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항변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후 슈가와 문다혜 씨 사례는 다르다. 방송사들은 별다른 법적 검토 없이 가수 김호중 뉴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기억만을 떠올리며 그들의 모습이 담긴 CCTV를 거리낌 없이 방송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4년 대한민국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CCTV에 찍히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덕분에 각종 범죄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고 범죄가 발생한 경우에 그 경위를 살펴보거나 범인을 찾는 것도 손쉬워졌다. 이처럼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감 향상에 큰 도움이 되는 CCTV이지만 아무리 좋은 도구여도 남용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필연적으로 그 앞을 지나다니는 선량한 시민의 모습이 담길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공개되어 그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인권침해 도구로 악용되지 않게 하는 방도
이제는 무분별한 CCTV 방송 송출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다 함께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지금까지는 정확히 일치하는 판례가 존재하지 않지만 머지않아 CCTV 영상과 관련하여 영상을 제공한 자와 영상을 송출한 방송사가 동시에 명예훼손으로 처벌되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꼭 법률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방송사 내부에서 CCTV 영상을 송출하기 전에 충분한 윤리적 검토를 거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그 안에 찍힌 개인이 공공질서를 어기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CCTV 영상 송출이 기본적으로 제한되어야 하며, 예외적으로 그 개인이 자신의 모습이 송출되는 것에 동의하였을 때에만 방송에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공공질서를 어기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장면이 찍혔다 하더라도 그 개인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CCTV 영상의 송출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공공질서를 어기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그 사안이 지극히 가벼워 CCTV 영상의 공개가 해당 개인에 대한 망신주기의 목적밖에 없는 것이라면 역시 그 영상의 송출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방송사들이 스스로 관행을 교정해 더는 CCTV 영상의 무분별한 방송 송출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