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결집' 막겠다는 조선일보의 '치킨게임'

윤석열 탄핵 고조되면서 '우파 대결집' 호소 나서

윤 정권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 옹호하는 딜레마

자신의 지면 안에서 자기모순과 충돌 벌어져

2024-09-30     이명재 에디터
28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전국민중행동, 자주통일평화연대, 전국비상시국회의 주최한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에서 참자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204.9.28. 이호 작가

윤석열 정권과 함께 조선일보의 위기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윤 정권을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도 결사적으로 옹호하는 조선일보의 딜레마도 깊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윤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이른바 '좌파 결집'이 되지 않도록, 한편으로는 지금의 윤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우파의 대결집'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조선일보의 분투가 펼쳐지고 있다.

조선일보의 30일자 1면 머릿기사 <김건희 때리기, 결집하는 좌파>에서 그같은 의도가 읽힌다. 이 기사는 '박근혜 탄핵' 주도 좌파단체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면서 야당과 장외 세력이 반(反)윤석열 공동 전선을 펼치고 있다고 쓰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서울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제히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를 거론하며 친야 성향 전국민중행동과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등이 개최한 것이라면서 “현재 윤 대통령 탄핵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단체들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을 주도했던 단체들”이라고 했다.

이 기사는 '김건희 때리기'보다는 '좌파 결집'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도 김건희 씨에 대해 일정 정도 비판하면서 사과 필요성을 주장한 조선일보로서는 김건희 때리기 자체를 문제 삼기 힘들다. 조선일보의 이 기사는 그보다는 좌파의 결집을 우려하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김건희 씨의 온갖 추문에 대한 공세는 어쩔 수 없다고 보며 자신들도 비판의 대열에서 아예 빠질 수 없다고 보지만 좌파가 결집하는 것은 위험신호라는 것이다. 특히 ‘탄핵’이라는 불길이 폭발적으로 점화되고 그 불길이 커지는 것에 물을 끼얹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동시에 그 '불순하고 위험한' 불길을 막을 우파의 대결집이 필요하다는 호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9월 30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제목. 

그 같은 의도는 같은 날짜 오피니언 면에 실린 <대통령 지지율은 왜 중요한가>라는 칼럼에서 뒷받침된다. 윤태곤이라는 정치칼럼니스트의 글은 "탄핵론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응은 극히 미약하다. 현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남미식으로 탄핵이 일상화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탄핵 추진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크지 않다고 애써 깎아내린다. 그럼에도 "하지만 국회 앞 대로변에도 동네 지하철역 앞에도 걸려 있는 탄핵 어쩌고 하는 현수막은 익숙한 풍경이 됐고 동네 호프집에 앉아 있어도 탄핵이라는 단어가 귀에 걸리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식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이 글의 필자는 탄핵 추진이 무리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근거들도 들고 있는데, 김의겸 전 의원의 청담동 술자리 ‘허위 주장’, 김건희 여사에 대한 ‘날조된' 추문과 '악의적' 공격들을 꼽고 있다. '허위' '날조' '악의적'이라는 표현으로 상당한 근거가 있는 의혹 제기를 묵살하고 있다.

이 기사는 민주당이 이번 주에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과 해병대원특검법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면 곧바로 재표결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 야당들이 ‘일방 처리’한 특검법안들에 대해 윤 대통령이 4일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당장의 특검법 재의결 시의 이탈표 방지도 해야겠지만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되는 특검법 재의결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단속’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보름 앞으로 다가온 10월 16일 보궐선거, 특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의 ‘좌파 교육감’ 당선을 막기 위해서도 ‘우파’ 진영의 결집이 필요한 것이다.

김건희 씨 스캔들이 악재이며 일정한 사과 표시를 윤 대통령 등에게 요구하면서도 이들 사안이 행여나 탄핵으로 커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위의 <대통령 지지율은 왜 중요한가> 칼럼에서 ‘충암파 장군들이 계엄령을 준비한다’ ‘윤석열 정권이 독도를 일본에 넘기려 한다’는 의혹과 주장을 ‘밑도 끝도 없는 괴담’으로 몰고, 이런 주장이 대통령과 여당에 타격을 입히지도 못했다고 한 것에서 그 같은 의도가 보인다.

조선일보가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에 대해 계엄령설을 제기한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과 형제간임을 굳이 상기시키면서 김 위원에 대해 계엄령 ‘저작권자’라고 해 계엄령 의심 징후에 대한 문제제기를 마치 ‘창작’한 것처럼 비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같은 시도들은 분열적이다. 적당한 비판은 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 ‘적당하고’ ‘안전한’ 선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선일보 자신이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은 대통령이 여전히 국민 뜻을 모르고 있으며 변한 게 없다고 평가한다”(9월 19일 사설)고 했다. “왜 민심이 떠나고 있는지 통절한 자성이 없다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도 했다.

마침 이 신문이 ‘좌파 결집’을 경고한 30일자의 오피니언 면에 실린 사회정책부장의 칼럼 제목 <치킨게임은 제발 그만...醫政 이제 대타협을>은 조선일보의 이 같은 기사들을 보는 독자들의 혼란을 요약한다.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게임을 가리키는 ‘치킨 게임’이라는 말은 닭에 대한 모독이지만 그 점을 차치하고 치킨게임이라고 본다면, 조선일보 자신이야말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다만 다른 상대와의 게임이 아닌 조선일보 자신이 조선일보 자신을 상대로 마주 보고 벌이는 치킨게임이다. 자신의 지면 안에서 분열적이며 모순적인 기사들이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의정 대타협을 하라는 칼럼이 실린 날 인터넷 판에 실린 대형 인터뷰 기사의 상대는 한덕수 총리였다. "모욕과 능멸의 정치 두고 볼 수 없었다"는 제목 아래 실린 이 인터뷰에서 한 총리는 최근 대정부 질문에서 “미몽에서 깨어나시라” “정치의 힘은 모욕과 능멸에 있지 않다”고 호통친 것이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 신문의 인터뷰어는 한 총리로부터 ‘의료 붕괴’는 거짓이고, 야당의 괴담 선동은 멈춰야 하며, 의대 증원은 대법원까지 인정한 정당한 것이며, 정부 개혁 의지를 믿어야 한다는 말을 이끌어냈다.

마주 보고 달리는 의료계와 정부에 대해 치킨게임이라고 했던 사회정책부장의 호소는 이 인터뷰어나 한 총리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듯하다.

한 총리는 자신이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마치 전제군주 국가의 ‘주군’으로 모시는 듯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대인이시다. 제일 개혁적인 대통령이고”라고 했다. 그가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며’ “국가냐, 인기냐 했을 때 (대통령은) 당연히 국가이고 국민일 것이다”라고 한 대목에서는 자신이 총리로 있던 시절의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까지 끄집어내며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할 당시엔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그때 노 대통령이 각료들 앞에서 ‘내가 진짜 외롭다’ 하시더라”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노무현을 넘어서는 대통령으로 자신의 지금의 주군을 띄워올린다.

“윤 대통령도 외롭다고 하던가”라는 질문에 “외로워도 그런 말씀을 하실 분은 아니다”고 해 자신의 고독과 결단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이로 드높였다.

치킨게임을 하지 말라고 정부에 대해 엄히 나무라는 조선일보의 지면에 실리는 이런 식의 말들과 기사들은 조선일보가 스스로 벌이는 ‘치킨 게임’을 독자와 국민들에게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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