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천적” 이시바 집권 일본, 얼마나 달라질까?

1차 투표에서 뒤진 이사바 2차 투표서 역전

전현직 총리 스가, 아소, 기시다 이해타산이 결정

다카이치 탈락 이유-한일관계 등 외교안보도 한몫

“이시바도 자민당”인 이상 크게 바뀔 것 없어

2024-09-28     한승동 에디터
이시바 시게루(중앙)가 27일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당선된 뒤 손을 흔들어 축하 박수에 답례하는 모습. 2024.9.27. AP 연합뉴스

27일의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당선됐다. 5번의 도전 끝에 자민당 제28대 총재가 된 이시바 당선자는 10월 1일 소집될 임시국회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이어 제102대 일본총리에 지명될 예정이다. 국회의 총리지명 선거 절차를 거친 그는 바로 내각을 구성하고, 올해 11월 이전에 중의원을 해산한 뒤 총선을 통해 국민적 신임을 묻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1차 투표에서 뒤진 이사바 2차 투표서 역전

“아베 신조의 천적”, “자민당 내의 야당”, 당내 지원세력이 거의 없는 “찬밥 신세”, “이시바는 결코 자민당 총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그가 자민당 총재가 된 것부터 관심거리다. 여기에는 기시다 총리를 물러나게 만든 ‘아베파’를 중심으로 한 자민당 파벌들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 비리가 터지면서 자민당을 위기로 몰아간 최근의 정치상황 변화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해체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힘을 발휘한 파벌 구성원들의 이합집산, 특히 총리를 지낸 아소 다로 부총재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기시다 총리 등 유력 정치인들의 이해타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차 투표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상이 의원들 표 72표, 당원 표 109표를 얻어 총181표로 1위를 했다. 이시바는 각각 46표, 108표를 얻어 총154표로 2위를 했다. 3위는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으로, 각각 75표, 61표, 총136표를 얻었다.

그런데 1, 2위 득표자가 올라가는 2차 결선에서는 이시바가 의원 표 189표, 총 47표인 도도부현 표 26표를 얻어 총 215표가 돼,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다카이치의 173표, 21표, 총194표보다 21표를 더 얻어 역전승을 거뒀다.

이시바는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보다 의원 표도 적었고, 예상 외로 당원 표도 더 적었으나 2차 투표에서 이를 모두 뒤집었다.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 이시바 시게루(오른쪽) 전 자민당 간사장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7일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이시바가 당선된 뒤 손을 잡고 축하하고 있다. 2024.9.27. AP 연합뉴스

전현직 총리 스가, 아소, 기시다의 이해타산이 결정

1차 투표에서 고이즈미 후보가 의원 표 75표로 선두 3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의원 표를 얻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자민당 현역의원들은 처음엔 고이즈미 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후보 연설회와 토론회를 거치면서 고이즈미의 빈약한 토론실력 등 그의 실제 내공이 드러나면서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한때 본인이 직접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말이 돌았던 스가 전 총리의 정치력이 판을 뒤집었다. 아소 부총재가 이번 총재선거를 “스가 대 반스가”의 싸움이라고 했을 정도로 당내 정치에서 영향력을 지닌 스가는 이시바와 고이즈미를 끌어안았고, 특히 고이즈미를 밀었다.

아소도 애초에 고이즈미를 염두에 뒀으나, 스가가 고이즈미를 품고 있는 상황에서 스가와 껄끄러운 경쟁관계인 그는 다카이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칭타칭 아베의 후계자인 다카이치는 우익 정치성향에서 아소와 다르지 않고, 1차 투표에서 예상 외로 당 안팎에서 많은 지지를 얻어낸 점에 아소는 주목했을 것이다. 기시다는 처음에는 1차 투표에서 당원 표를 많이 받은 쪽에 표를 주겠다고 공언했으나, 1차 투표 뒤 기시다파에 속했던 의원들에게 이시바에 투표하라고 지시했다.

다카이치가 탈락한 이유-한일관계 등 외교안보정책도 한몫

여기에는 다카이치의 극우적 성향 때문에 그가 자민당 총재가 되고 총리가 되면 조만간 실시될 총선에서 자민당이 야당 공세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당 내의 우려가 작용했다. 또한 다카이치가 아베노믹스에 집착할 경우 자신이 시작한 탈아베노믹스 노선이 위태로워지고, 아베파가 주요 표적이 된 파벌 해산 이후의 정치개혁이라는 자신의 자민당 이미지 쇄신 노력이 좌초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시다의 판단도 작용했다. 게다가 자신이 주요 치적으로 앞세운 외교적 성과, 그 중에서도 ‘한일관계 호전’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언하는 극우성향의 다카이치가 정권을 잡을 경우 한국 쪽 반발로 역회전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럴 경우 미국 민주당 정부와 애써 추진해 온 한미일 군사지휘통합 등 삼각 안보체제(한미일 ‘군사동맹’)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2차 결선투표에서 스가와 기시다는 이시바로 표를 몰아 주었고, 아소와 모테기 간사장, 고노 다로 디지털대신 쪽은 다카이치를 지지했다.

이시바는 기시다 쪽의 표를 얻기 위해 금융소득 과세 강화와 법인세 증세 등 분배 쪽을 강화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기시다의 경제정책 노선을 따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것은 특별한 대안이 없어 “경제정책이 약점”이라는 얘기를 들어 온 그가 택한 현실노선이기도 하다.

안보정책과 관련해, 방위청장관과 방위대신을 지낸 이시바는 ‘아시아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결성을 지향하면서 주일미군지위협정(SOFA, 주둔군지위협정)을 양국이 대등한 관계로 바꿔야 한다며 주권국가로서의 지위 강화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아시아판 나토의 경우 군사동맹관계에 관건이 될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현행 헌법에 저촉되는 현실에서 당장 실현될 가능성이 없댜. 아시아판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선뜻 나설 아시아 국가들도 (한국은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찾기 어렵다.

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위해 이시바는 미국 내에 일본 자위대 전용 훈련장을 만들고 거기에 적용되는 지위규칙을 주일 미군에도 적용하자는 안을 내놓고 있으나, 역시 실현 가능성이 없다. 무엇보다 미국이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시바를 ‘이단’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는 미국에서는 이런 안보와 관련한 이시바의 발언을 경계하며 긴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스가와 기시다의 절대적 지원 아래 자민당 총재와 총리직을 얻어낸,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이시바가 현실정치와 외교에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새로 선출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자민당 대표가 27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시바는 10월 1일 임시국회에서 일본총리로 지명될 예정이다. 2024.9.27. AFP 연합뉴스

“이시바도 자민당”인 이상 크게 바뀔 것 없어

조만간 실시될 중의원 해산 뒤의 총선거에서 이시바가 이끄는 자민당이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에 따라 그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고, 그럴 경우 대내외 정책에서 ‘이시바 색채’가 강화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도 자민당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수합동으로 진보적 정치세력의 집권을 원천적으로 막아 온 일본의 ‘1955년 체제’는, 몇 번의 짧은 예외 기간을 빼고 사실상 일당지배를 계속해 온 자민당이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당내 주도권을 쥔 파벌을 교체하면서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를 통해 장기집권을 계속해 온 특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베 신조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이 대세를 장악해 온 자민당에서 “아베의 천적”이란 얘기를 들은 당 내 소수파요 ‘이단’인 이시바가 대권을 쥐게 됐지만, “그도 자민당”이라는 점에서 크게 바뀔 것은 없을 것이다.

한일관계에서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소액주식투자는 대상에서 제외)와 법인세 강화, 2030년까지 시급을 전국 평균 1500엔으로 올리는 등의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분배측면을 강조해 온 이시바가 금리 인상을 강행하면서 탈아베노믹스 쪽으로 나아갈 경우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경제관과는 다소 엇갈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시아판 나토를 꿈꾸는 그의 안보정책이나 대외정책이 이제까지의 자민당 노선과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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