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까지 속여 먹으려는 구치소 사기범들

사건 소개해 줄 테니 나를 접견해 달라

그게 안 통하면 작전 주, 마약밀수 거짓제보

찜통·냉방 잠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지

환경 탓일까, 타고난 성정일까, 아니면 운명?

2024-09-20     김태현 리걸프리즘

 

김태현 변호사

구치소는 재판 중인 피고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무거운 죄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그 증거도 충분해서 구속 상태에 있는 이들이다. 재판이 끝나고 유죄가 확정되면 그들은 교도소로 이감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수도 있다. 구치소는 해당 피고인이 재판을 받는 법원 소재지에 배정되지만 교도소는 피고인의 마지막 주소지, 혹은 출신지(고향)를 기준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순천 출신 사기범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피해자에게 사기를 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은 서울구치소(안양 소재)에 있다가 재판이 확정되고 나면 순천교도소로 이감되는 식이다.

변호사로서 독립해 활동한 지 얼마 안 되던 시절, 나는 서울구치소에 자주 드나들면서 많은 사기 피고인들을 만났었다. 이번 명절 즈음 그 시절 알고 지내던 수감자 한 명이 마침내 출소했다면서 안부 인사를 물어오길래 잠시 그 시절의 기억들을 소환해 보았다. 그들이 갇혀있는 방에서 잠시라도 나오기 위해 변호사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이 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에서 벌어질 법한 ‘기브 앤 테이크’

구치소 방은 냉난방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방에 보통 5~6명씩은 수감되어 있다. 그러니 수용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구치소 방을 나오고 싶어 한다. 그들이 구치소 방을 나와 갈 수 있는 장소는 한정적이다. 변호인 접견실, 수사용 접견실, 일반 접견실 그리고 법원과 검찰청 정도다.

변호인 접견실은 여름에는 에어컨이, 겨울에는 히터가 가동된다. 접견실은 불과 1평 정도에 불과하지만 구치소 방에 비하면 너무나 쾌적하다. 그리고 변호인과 마주보고 앉은 책상과 의자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문제는 변호사를 접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꽤나 머리가 영민한 수용자들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변호사를 접견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변호사에게 일정한 이득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접견을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사건 소개’다. 수용자(A)가 변호사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다. A가 아는 다른 수용자(B, C)가 변호사를 찾고 있는데 그들을 소개해 줄 테니 그 대가로 그들(B, C)을 접견하러 올 때 자신(A)도 함께 접견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A 덕분에 사건을 여러 건 수임할 수 있으니 제법 괜찮은 제안으로 들린다. 어차피 B와 C의 사건을 진행하기 위해 구치소에 와야 하니 별로 큰 노고를 들이지 않고도 A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접견했던 B가 다시 또 이런 제안을 한다면? 자신이 아는 다른 수용자 D, E, F, G를 소개해 줄 테니 자신의 사건을 무료로 진행해달라. 변호사는 뒤늦게 자신이 어떤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용자들의 출정과 변호인 접견이 재개된 18일 오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로 경찰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2020.5.18. 연합뉴스

‘사건 소개’로 안 되면 ‘거짓 제보’까지 동원

두 번째 방법은 변호사에게 다른 종류의 이득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주가조작범 출신 수용자는 구치소 밖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이 곧 작업(?)에 착수할 종목을 알려주겠다면서 그 대가로 접견을 요구하는 것이다. 종목만으로는 부족하고 매수 시점과 매도 시점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최대의 이익을 볼 수 있다면서 매일 자신을 보러 오라고 한다. 물론, 수용자의 말이 거짓일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변호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주가조작범의 공범이 될 것인가, 수용자에게 속아 넘어갈 것인가, 차라리 깔끔하게 손을 뗄 것인가.

자신의 방을 벗어나고 싶은 그들의 욕망에 변호사들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들도 깜빡 속을 때가 있다. 어떤 수용자들은 방에서 잠깐 벗어나기 위해 수사기관에 거짓 제보를 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한번은 어떤 마약 사범을 접견하게 되었는데, 그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조만간 해외에서 국내로 상당한 양의 마약이 밀수된다는 정보를 제보할 예정이니 마약수사대 모 경관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마약 사범의 경우 다른 마약 사건을 제보하거나 자신이 소속된 유통라인에 대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면 그들을 검거한 후 수사기관에서 ‘공적서’라는 것을 발급해 주는데, 그 공적서는 재판의 양형에 크게 반영된다. 그래서 마약으로 여러 번 검거되고도 가볍게만 처벌되는 자가 있다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그 마약 사범의 변호인이 될 예정이었으므로 당연히 ‘공적서’를 받는 일을 도와야 했다.

그래서 그가 부탁한 대로 마약수사대 모 경관에게 전화를 했다. 모 경관에게 그의 이름을 대고 “이 분이 경관님께 제보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라고 이야기하자 그 경관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제보할 것이 있다고 연락을 해서 구치소까지 찾아간 것이 벌써 네다섯 번은 되거든요. 하지만 막상 찾아가면 별 내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는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람들 속여 먹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사는 그들, 운명일까?

그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그 마약 사범은 나를 선임할 것 같은 태세만 취하고 결국 입금은 하지 않겠구나. 마약 사건을 한 번쯤 다루어 보고 싶던 나는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사기 사건 기록더미를 들여다 볼 때는 피해자가 도무지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에 속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서울구치소에서 잠깐 그들을 접견해보면 나 역시 밖에서 그들을 만났더라면 아주 쉽게 당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변호사 백현우도 전세 사기를 당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영리할 뿐 아니라 정말 열심히 산다. 상대방을 파악하고 그들이 덥썩 물 만한 미끼를 던지고 한번 속아 넘어간 상대를 최대한 오래, 철저히 이용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그들이 열심히 일하기 싫어서 사기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사기죄를 저지르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한탄이 쏟아진다. 그 노력을 애당초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생산적인 곳에 기울였다면 그들은 아마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으리라.

그래서 형법 교과서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 개인이 자신이 가진 역량을 쏟아부을 때,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가 처한 환경일까? 아니면 타고난 성정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운명인 것일까?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