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이 쏘아올린 경제 위기 신호탄

책임회피 일관하는 관료집단에 둘러싸인 ‘백치’ 대통령

국가부도 초래했던 IMF 위기 당시보다 더 심각한 상황

정부실패 비판해야 할 전문가 집단·언론도 제 기능 못해

2024-09-09     홍종학 경제스케치북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지난주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경제스케치북」에서 한국 경제의 장기침체가 불가피한 이유를 다뤘다. 한국 경제는 현재 초저출산이나 초고속 고령화, 부동산거품, 가계부채와 같이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데,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의 전례를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장기침체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위기를 부정하는 정부실패와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 참석해 한덕수 국무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2024.7.3. 연합뉴스

정부실패와 관료주의로 커지는 경제 위기 위험성

정부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관료주의다. 한국의 관료들은 우수한 인재들이고 경제성장을 주도해온 공로가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성과에 대해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보다는 무사안일과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있다.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문제를 해결하려고 섣불리 건드리다 책임을 지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경제 위기 자체를 부정하고 문제를 축소하면서 미봉책으로 임기를 채우려 한다. 예를 들면, 폭탄 떠넘기기와 책임회피에 익숙한 관료사회이기에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모두 뒷짐 지고 있다.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기록하고 있다. 경제 관료들이 자신들만의 사일로(silo)에 갇혀 집단사고에 빠지게 되면, 부정적인 정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경제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 전문가들은 부실한 부동산 파생상품이 안전하다고 홍보했으며, 이를 맹신한 경제 관료들은 집단적으로 위험을 방기한 경험이 있다. 지나고 나면 모두 황당하기 그지 없는 사례로 보이지만, 집단사고에 빠진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함께 위험을 경고하는 파생상품 감독 책임자를 몰아내기까지 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이러한 정부실패와 관료주의의 문제로 국가부도사태인 IMF 위기를 겪은 바 있다. 1994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멕시코에서 시작하여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경제 위기가 전이되고 있는데, 최고 의사결정자인 대통령은 아무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발언을 반복하는 경제 관료들이 올바른 보고를 했을 리 없고, 온 국민이 펀더멘털의 뜻을 알게 될 즈음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었다. 아무런 잘못없는 수많은 서민들이 큰 고통을 받았고, 그 상흔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관료들 집단사고 막아야 할 전문가와 언론도 실종 상태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은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 관료들의 집단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언론과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은 현재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헌법은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명문화하고 있지만,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국책연구원이나 민간 연구소의 전문가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사라진지 오래다. 이런 상태에서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받고 있으리라 믿기 어렵다.

방송을 하고 나자 많은 시청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료들이 문제를 감추고 쉬쉬하고 있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국민들은 장기침체의 고통에 빠져있는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관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의 정책을 유지해 침체를 장기화 시켰다. 한국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 정책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자주 벌어지지만 일반인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취재진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을 지켜보고 있다. 2024.8.29. 연합뉴스

관료주의와 집단사고 병폐 여실히 보여준 대통령 기자회견

방송 며칠 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이 행진하듯이 놀라운 발언을 쏟아냈다. 의료대란의 한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응급실이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체감 경기는 조금 늦게 반응할 것이지만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는 발언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이 현재 한국 경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은 현재 좋은 정보만 받고 있고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백치에 가까워 보였다. 필자가 주장했던 관료주의와 집단사고의 병폐를 여실히 보여준 생생한 증거였다.

사람들은 설마 대통령이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백주 대로를 벌거벗고 활보할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믿기 힘든 현실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 경제의 위기가 코앞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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