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의 유에스 스틸 매수 ‘깨몽’
바이든 대통령 “매수 막겠다” 정식으로 표명
외국투자위, 일본제철의 매수 “안보에 문제 있다”
대통령의 매수 중지명령 번복 가능성 거의 없어
철강노조와 펜실베이니아 주, 매수에 반대
일본제철과 유에스 스틸 “매수가 미국에 플러스”
일본제철의 미국 종합제철회사 유에스 스틸(U.S. Steel) 매수계획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식으로 이를 막겠다”는 뜻을 밝혀 매수 중지명령을 내리는 쪽으로 최종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워싱턴 포스트>와 <파이낸셜 타임스> 등이 4일 보도했다.
매수 중지 최종결정 및 발표가 며칠 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유에스 스틸의 주가가 한때 20% 이상 폭락했다.
외국투자위원회, 일본제철의 매수“안보상 문제 있다”
일본제철은 지난해 12월 약 140억 달러(약 18조 6760억 원)로 유에스 스틸을 매수하기로 유에스 스틸 쪽과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며, 미국 정부기관인 미국외국투자위원회(CFIUS)는 이 매수가 미국의 안전보장상 문제가 없는지를 심사해 왔다. 일본제철 쪽은 아직 심사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으나, <파이낸셜 타임스>는 CFIUS가 이미 유에스 스틸 쪽에 “극복하기 어려운 안전보장상의 우려가 있다”는 심사결과를 통보했다고 전했다. CFIUS의 심사결과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이 매수 중지명령을 내리면 일본제철은 매수계획을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매수 중지명령 번복 가능성 거의 없어
미국정부도 아직 CFIUS로부터 매수 중지 권고를 받지는 않았으나,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대로 CFIUS가 안전보장상의 우려가 있다는 뜻을 통보했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며칠 내로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일본경제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5일 보도했다. 미국 대통령은 “외국인이 미국의 안전보장을 해칠 우려가 있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고, 사태를 막을 다른 수단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일과 관련해 미국 대통령이 중지명령을 내린 뒤 번복된 예가 별로 없어, 일본제철로서는 중지명령이 내려지면 더는 매수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외국기업의 미국기업 매수나 미국 내에서의 활동에 관용적이었던 미국사회가 '내향화'하면서 외국자본 진출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초당파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최근 변화도 일본제철 매수작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일본제철은 올해 말까지 매수를 완료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미국 대선 뒤의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FIUS의 심사까지 포함해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 한해, 기업은 연방 지법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명령 내용을 무효화하기 위해 이처럼 재판정에서 싸울 수 있으나 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극히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 공화 양당간 정치문제화한 유에스 스틸 매수
이 문제와 관련해 오는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2일 연설에서 유에스 스틸이 “미국 국내에서 소유되고 운영되는 기업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밝힌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나라면 즉각 (매수를) 막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8월에도 “일본의 유에스 스틸 매수를 막겠다”고 밝혔다.
노조와 펜실베이니아 주, 매수에 반대
1901년에 창업한 미국 철강산업의 상징적 존재인 유에스 스틸을 외국자본이 매수하는 것에 대해 노동조합과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는 미국 대통령선거전의 행방을 가를 경합 접전주(스윙 스테이트)들 중의 하나로, 민주 공화 양당이 이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어, 정치문제화하고 있다.
고용을 걱정하는 미국철강노동조합(USW, 철강노조)도 일본제철의 유에스 스틸 매수에 강경한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노동조합을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표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매수 반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일본제철과 유에스 스틸, “매수가 미국에 플러스”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일본제철은 지난달 29일 13억 달러를 유에스 스틸에 추가 투자해 수십년 이상 가동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4일에는 매수가 이뤄지면 이사의 절반 이상을 미국 국적자로 채우겠다는 약속을 더 보탰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이 유에스 스틸이 “미국 국내에서 소유되고 운영돼야 한다”고 한 말을 의식한 것이다.
유에스 스틸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에게 자문역을 맡겨 매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있다. 5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일본제철의 유에스 스틸 매수가 “미국에 플러스”가 된다는 글을 기고한 폼페이오 전 장관은 철강노조 가입 노동자들을 고용해 온 실적이 있는 일본제철의 매수가 고용을 더욱 안정화시킬 것이라며 “미국의 공급망을 중국에서 떼어내 중국공산당보다 우수한 세계경제 모델을 구축하고 싶다면, 동맹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면서 일본제철이 그런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에스 스틸은 4일 직원들을 상대로, 일본제철에 회사를 팔 수 없게 될 경우 노후화하고 있는 피츠버그의 몬밸리 제철소를 폐쇄하고, 피츠버그에 있는 본사를 다른 곳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럴 경우 수천 명이 실직하고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유에스 스틸 직원들은 상당수가 일본제철의 매수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버릿 유에스 스틸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일본제철의 매수는 경쟁력을 유지하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우리에게는 자금이 없다. 일본제철이 매수할 수 없게 될 경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매수에 반대해 온 철강노조는 성명을 통해 “유에스 스틸 CEO가 근거없는 위법적인 협박을 하고 있다”면서 “그의 무모한 발언은 미국에게 큰 장애”라고 바판하고, “미국의 철강은 철강노조의 헌신과 노력 없이는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