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를 '보수화' 아닌 시시하게 만들려는 안창호

몰상식 넘어 황당 기이한 주장으로 실소 자아내

함량미달 인식과 의식으로 인권 지킴이 되겠다?

고검장-헌법재판관 맡았던 것부터가 놀라운 일

2024-09-04     이명재 에디터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가 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9.3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이 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인 모습에 대해 몇몇 신문에서는 인권의 최후 보루인 인권위원장이 될 자격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켜준 자리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주요 인권 문제에 대해 왜곡되고 편향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옹호하는 등 반인권적 견해를 태연하게 고수했다”(한겨레)고 했다.

그의 인권위원장 후보자 지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들의 연속이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그간 각종 저술과 강연을 통해 했던 “부모-자식 성적 행위, 소아성애, 짐승과의 성행위 등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차별금지 항목에 성적 지향이 들어간 것을 두고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합법화법’으로 의심하며 반대하고 있는 일부 개신교 단체들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임은 물론 그 자신이 그같은 주장의 원천인 듯했다. 

“차별금지법에 의해 다수의 표현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며 “소수자 입장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한 것은 다수가 소수자를 비판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인권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권리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는 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음을 드러냈다.

그가 생각하는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생각과는 매우 다른 듯하다는 것은 그가 과거 헌법재판관 퇴임 뒤 변호사로 활동하며 유명 리조트 회장 아들의 미성년 성매매와 불법 촬영 혐의 사건을 변호한 이력에 대해 해명할 때 드러났다. 그는 “피의자의 아버지와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여서 사건을 맡게 됐다”면서 “변호사가 피고인, 피의자를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변호하는 것은 인권보호에도 부합한다”고 답했다. 

그의 몰상식을 넘어 기이한 주장에는 한계가 없다.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을 야기할 수 있다고도 했는데, “많은 문화맑시스트들이 ‘우리의 주적은 기독교’라며 동성애가 사회주의 혁명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맑시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은 물론 동성애와 같은 성적 다양성의 인정도 그 사회의 자유를 증진함으로써 사회 진화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동성애=사회주의 혁명'으로 등식화해버린다. 

인권위원장 후보자가 됐다는 것은 둘째치고 이 같은 수준의 이해력, 지적 수준을 가진 이가 서울고검장과 헌법재판관을 지냈다는 것부터가 놀랍다. 

그의 발언들은 '보수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함량 미달'이라고 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에 대한 그의 믿음은 확고해 보인다. 창조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인데, 반면 진화론은 과학적 증명이 없다고 본다”고 말하면서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설명까지 내놓는데, “진화론은 무생물이 최초의 생명체로 형성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그 생명체의 오묘함과 섬세함, 그 전제에 대한 현대과학의 충분한 설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과학적 상식이 된 진화에 대한 수많은 대중적 설명들이 나와 있지만 그는 대담하게도 자신이 모르는 것,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을 충분한 설명이 없는 것으로 바꿔버린다.

이같이 거침없던 그가 답하지 않는, 혹은 답하지 못한 질문도 있다. “뇌물 수수 문제에 대통령도 예외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상식적인 질문, 특히 법치의 기초를 묻는 질문에는 “답변하기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법률가로서도, 공직자로서 답변해야 하는 기초적 물음에는 답변을 거부한 것이다. '적절'과 '부적절'이 그에게선 거꾸로 물구나무 선 것이었다.

안 후보자에 대해 한겨레의 사설은 "그가 인권위원장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안 후보자는 우리나라의 인권 향상을 위해 스스로 물러나는 편이 더 낫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장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일은 이미 이전에도 있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 설립된 이래 인권위는 이른바 '보수' 정부 때면 위원장을 맡기에 결코 적임이 아닌 인물들이 위원장이 돼 인권위를 흔들리게 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출범 초기에 인권위를 정부 산하에 편입해 보수적인 기관으로 만들려고 했다가 큰 반발을 사서 무산된 적이 있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인권위의 보수화’ 시도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인권위의 보수화가 아니라 '시시한' 기관으로의 전락이었다. 검찰이나 경찰과 같은 권력은 없지만 어느 기관보다 강력한 도덕적 권위로 다른 권력을 견제하는 기관이기에 '권력' 이상의 권위가 필요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처음 임명한 인권위원장은 인권기관 책임자로서 부적격자인지를 일관되게 보여줬다. 그 위원장 때의 인권위는 보수적인 인권위가 된 것이 아니라 '시시하고 하찮은 인권위'가 돼버렸다. 그런 점에서 당시의 현병철 위원장은 그 같은 인권위의 변신을 이행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가 인권위원장의 수장으로 앉은 그 순간부터 인권위는 '추락'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한 온갖 비판과 조롱에 가까운 공격에도 전혀 끄덕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국회 청문회장에서 그의 극단적이며 황당한, 그러나 그 자신으로서는 상식이었을 답변을 듣고 의원들이 차라리 어이 없어 할 때 환하게 웃는 표정을 짓는 안창호 후보자의 모습은 다시 한 번 인권위를 시시한 기관으로 전락시키는 데 그가 최고의 적임자임을 증명해 보인 듯하다. 그가 청문회에서 보여준 저급하고 편협한 지식과 인식, 그러나 그럼에도 장관급의, 게다가 인권수호기관의 수장이 되려 한다는 것은 '윤석열식' 고위공직자 인사의 또 다른 기념비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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