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휴전 협상 막판 쟁점으로 떠오른 '필라델피 회랑'
외부와 차단하는 14.5㎞ 길이 비무장 완충지대
네타냐후 "휴전해도 병력 잔류"…억류 인질 외면
인질 가족, 시신들 발견에 "네타냐후가 인질 포기"
'회랑에 병력 잔류' 미 중재안에 하마스 반대 고수
이스라엘, 제닌 난민촌 등 서안지구 나흘째 공격
10· 7 이후 가자에서 어린이 1만 7000명 살해
이스라엘군의 '필라델피 회랑' 잔류 여부가 가자 휴전 협상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스라엘은 휴전 합의 이후에도 자국 안보를 지키고 하마스 재규합과 무기 밀반입을 저지하기 위해 이곳에 군 병력을 꼭 남겨놔야 한다고 고집하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협상 중재자 중 미국은 이스라엘 쪽에, 이집트는 하마스 쪽에 더 기울어 있다.
가자 휴전 협상 막판 쟁점인 필라델피 회랑
외부와 차단하는 14.5㎞ 비무장 완충지대
필라델피 회랑은 1979년 미국 중재하에 맺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약'에 근거해 조성된 비무장 완충지대다. 총 14.5㎞인 이 회랑은 가자지구와 이집트의 경계선을 따라 지중해 연안에서 이스라엘의 케렘샬롬 국경 검문소까지 이어진다. 가자에서 이집트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라파 검문소도 여기에 속해 있다. 휴전 후에도 이스라엘군이 필라델피 회랑을 통제한다면, 가자는 '지붕 없는 거대한 감옥'처럼 외부 세계와 계속해서 차단된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초 일부 이스라엘 병력의 필라델피 회랑 잔류를 용인하는 '새로운 중재안'을 이스라엘에 제시해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30일 이스라엘 하욤의 보도에 따르면, 휴전–인질 석방 협상이 타결되면 이스라엘국방군(IDF)은 첫 6주간 필라델피 회랑을 따라 배치한 병력을 점차 감축하고 6주가 끝날 무렵엔 감시탑 병력만이 잔류한다는 게 새 중재안의 내용이다.
미국은 이를 가지고 하마스에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하마스는 이 중재안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했던 '3단계 휴전안'을 개악한 것이라면서 거부하고 있다. 바이든 제안을 토대로 6월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통과시킨 결의안 2735호는 모두 3단계로 돼있다.
네타냐후 "휴전해도 필라델피에 병력 잔류"
'병력 잔류' 미 중재안에 하마스 반대 고수
내용을 보면, △ 1단계: 첫 6주간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이며 완전한 휴전과 가자 인구 밀집 지역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일부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교환,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귀향, 가자 전역에 대한 대규모 인도주의 지원의 안전하고 효과적 제공 △ 2단계: 모든 인질 석방과 가자에서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 등 영구적 적대행위 종식 △ 3단계: 다년에 걸친 가자 재건 계획 개시와 사망한 인질 시신 송환 등이다.
하지만 미국이 네타냐후의 추가 요구 사항들을 묵인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이전에 제시했던 바이든의 원안을 준수하라는 게 하마스의 입장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필라델피 회랑 '통제권'은 휴전 이후에도 절대 넘겨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아예 지난 29일 저녁 안보 내각을 긴급 소집해 휴전 후 필라델피 회랑 병력 잔류방안을 제시하고 예고도 없이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을 정도다.
표결에 앞서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모사드 국장 등이 억류된 인질을 희생할 위험이 크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거나 이견을 내놨지만, 네타냐후는 그대로 표결을 강행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군 주둔 방안은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미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5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휴전 협상에 이스라엘군 병력 배치 계획을 담은 지도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날 표결에선 반대표를 던진 갈란트와 기권표를 던진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 장관을 빼고 나머지 각료 8명이 필라델피 회랑 병력 잔류 안에 찬성했다. 극우 유대 광신자인 벤-그비르는 필라델피 회랑은 물론 가자 전역에 군 병력의 전면 주둔 유지를 지지하고 있다.
갈란트 "병력 잔류, 인질 귀환 택일하라"
인질보다 회랑 통제권 선택한 네타냐후
표결 자체를 반대했던 갈란트 국방장관과 네타냐후 총리가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갈란트는 이스라엘군이 완전하게 철수해야 억류 인질 석방을 하겠다는 하마스의 입장을 고려할 때 필라델피 회랑에 병력을 남겨놓는 안을 하마스가 수용할 리가 없고 그러면 협상은 깨지고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인질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나아가 휴전이 성사돼야 레바논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와 갈등이 진정되고,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암살에 따른 이란의 보복 계획도 유보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인질의 생명보다 필라델피 회랑 통제권이 훨씬 더 중요하단 견해를 보였다.
이스라엘 매체 '채널12'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각료회의에서 갈란트는 "당신들은 필라델피 회랑 잔류를 결정하고 있다. 이게 논리적인가. 거기에는 살아있는 (인질들이) 있다"라면서 병력 잔류와 인질 귀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신들은 하마스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인질 포기를 뜻하는 그런 결정을 하고 있다"면서 "만일 (하마스 최고지도자) 신와르가 필라델피를 떠나거나 인질을 받거나 택일하라는 딜레마를 제시하면 당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따졌다.
인질 가족 포럼 "네타냐후 인질 포기"
가자 지하서 억류 인질 시신 추가 발견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란 '국가'에 정말 중요한 것은 필라델피 회랑에 군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네타냐후는 "30명의 목숨이 달려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갈란트의 질문에 "나는 필라델피에 남겠다. 단호한 협상만이 (신와르를) 압박해 굴복시킬 것이다"라고 답했다. 특히 네타냐후는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이 회랑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이스라엘의 인질과 실종자 가족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인질·실종자 가족 포럼'은 성명을 통해 "각료회의 발언을 듣고 모든 이스라엘 시민은 한숨도 못 잤다"면서 "시민들이 토요일 아침 침대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납치됐는데도, 총리가 그들을 가자의 하마스 터널 안에서 죽게 놔두면서까지 자리 보전을 위해 무슨 짓도 할 것이라는 점을 모든 시민은 알아야 한다"고 네타냐후를 성토했다.
더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IDF는 31일 밤 가자지구 지하에서 하마스 억류 인질들로 추정되는 시신들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인질·실종자 가족 포럼'은 X에 올린 성명에서 "네타냐후가 인질들을 포기했다. 이제 이건 사실이다"라고 규탄했다.
이스라엘군, 제닌 등 서안지구 나흘째 공격
10· 7 이후 가자서 어린이 1만7000명 살해
한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테러 기반을 파괴한다는 구실로 28일 지상군과 불도저 등 장비를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툴카렘과 제닌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나흘째 군사작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31일 제닌 난민촌을 급습해 도로를 따라 설치된 폭발 장치 수십 개를 무력화하고 무장 세력을 사살했으며, 무장세력과 총격전 과정에서 자국군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와파 통신은 제닌 지역 곳곳에 물과 전기 공급이 끊기고 여러 명이 구금됐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측에 따르면 작년 10· 7 사태 이후 서안에서 최소 660명의 주민이 이스라엘군이나 정착민의 공격으로 살해됐다.
알자지라의 27일 자 보도에 따르면, 10· 7 사태 이후 가자에서 320일 동안 4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됐고 최소 1만 명이 실종됐다. 이 중 어린이는 약 1만7000명이며, 이스라엘군의 군사 공격으로 매일 최소 53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남성과 여성은 매일 72명이 숨졌다.
알자지라는 "4만 명이 손을 잡고 양팔 간격으로 인간 사슬을 만들면 미국 맨해튼 섬 주위를 충분히 감쌀 정도이고, 서로 몸을 딱 붙이고 늘어서면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베르사이유 궁까지 24㎞의 길이가 된다"고 소개했다. 알자지라는 "어린이 약 1만7000명이 살해됐는데 이는 교실 550개를 채울 수 있는 수치"라면서 "피란처로 쓰이는 500개 이상의 학교가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됐으며 대부분 훼손되거나 파괴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