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정치부장의 어처구니 없는 '오만한 무지'

'48년 건국' 문제 삼는 걸 좌파 반일정서로 몰아

'건국'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에 대한 무지 드러내

상식적인 사고의 결핍이 낳은 무모·대담한 주장

2024-08-27     이명재 에디터

중앙일보 26일자에 실린 <‘1948년 건국은 친일’이라는 궤변> 제목의 이 신문사 정치부장의 칼럼은 언론인의 오만과 무지가 겹치면 어떤 글이 나오는가를 보여준다. 오만해서 무지하며, 무지해서 오만하다는 것, 혹은 그 반대라는 것을 여지 없이 드러낸다. 

이 글은 “대한민국은 서자의 나라인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듯, 건국을 건국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개탄하면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건립됐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며 ‘1948년 건국’을 부정하려는 건 이승만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말과 함께 ‘어떻게 1948년 건국을 얘기하면 뉴라이트, 친일파라고 매도당할 수 있나’라면서 억울하게 뉴라이트 친일파로 몰리는 이들을 위한 변론을 편다.

 

이 글은 무엇보다 '건국'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건국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건국의 요소들에 대해 전혀 모르지는 않은 듯하다. 이는 그의 글 속에서 “국가의 3요소는 주권·국민·영토라는 상식과도 어긋난다”는 대목을 통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일제 시대 우리에게 나라가 있었나"라면서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을 염원하고서 우리에게 나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신 승리'에 불과하다고 꾸짖기에 이른다. '정부'가 건립된 것을 나라가 새로 세워진 것으로 보는 그의 단순한 주장은 그와 같은 단순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의 광복이나 정부 수립은 없었던 나라를 새로 세운 것이 아니라 본래 있었던 나라를 온전하게 되찾은 것이라는 점에 대한 근본적 무지를 드러낸다.

일제에 의한 병합은 나라의 경영을 빼앗겼을지언정 나라 자체가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빼앗겼다고 해도 뺏긴 것은 나라의 일부였다. 국토와 국민은 그대로 있었으며 주권의 행사를, 그것도 불법적으로, 일시적으로 박탈당한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언론인에 더욱 필요한 것은 지식보다는 상식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언론에 대해 ‘무관의 제왕’이라는 명예로운 별칭으로 부르는 것은 그 명예에 맞는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상식적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식이나 상식의 양보다는 '상식적인 사고'다. 무엇을 아느냐보다 자신이 아는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같은 상식적 사고에 미치지 못하면서 제왕의 권력을 누리려 할 때 언론에 대한 사람들의 상식적 기대는 무너진다.   

그의 ‘상식적 사고’에서는 "대한민국 ‘정식’ 정부를 건국으로 인정하지 못하면서, ‘임시’ 정부를 건국이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지 않나"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는 이 대목에서 마치 대단한 논리적 허점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따지는데, '정식(48년 수립) 정부'가 건국이 아닌 것은 임시정부에 의해 이미 대한민국이 건국돼 있기 때문이라는 그 명백한 사실,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논리적 귀결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문구에 담긴 정신, 게다가 이 문구 앞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라고 한 말로써 더욱 건국의 역사적 맥락을 부연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 칼럼의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의 1998년 "올해로 건국 50주년을 맞았다"는 발언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2003년 8월 15일 "58년 전 오늘 나라와 자유를 되찾았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는 말, 그리고 김구 선생이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세우고 ‘양심건국(良心建國)’을 주장한 것, 여운형이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결성한 것을 들어 그렇다면 이들도 '건국'을 얘기했으니 친일파라는 얘기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비를 걸 만한 꺼리를 찾아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건국절’ 논란이 일기 전 ‘건국’과 ‘정부수립’이 별 구분 없이 사용되던 때의 한두 발언들은 찾아내 꼬투리 삼으면서 그 이후 건국절 논란이 제기된 뒤에 있었던 그와 다른 수많은 말들은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못본 체하는 것인가. 다른 상황과 배경에서 나온 '건국' 발언을 임시정부 법통을 부인하는 논리의 연장에서 사용하는 지금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지 아니면 왜곡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필자 자신이 ‘건국 대통령’으로 받드는 이승만 대통령부터가 해방 후 제헌국회가 구성됐을 때 의장을 맡아 사회를 볼 때도 임시정부 수립됐던 해를 원년으로 삼아 ‘민국 29년’ 식으로 일관되게 말했던 것에 대해선 설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의 독립일이자 건국일은 초대 대통령 워싱턴 정부가 출범한 1789년이 아닌 1776년 7월 4일이었다. 그때는 미국이 영국에 전쟁을 벌이던 초기 열세이던 때였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지 확실치 않던 때였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6년 전의 독립선언일을 독립일로 정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다른 나라도 아닌 중앙일보가 많은 면에서 절대 모범으로 삼는 미국에서 있었던 그같은 역사적 사실이 중앙일보의 이 정치부장에겐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중앙일보의 이 필자는 옳고 그름이 아닌 ‘팩트’로 검증해야 한다고 썼다. 그 말에서는 ‘현장의 진실을 중앙에 두다’는 중앙일보의 사시가 엿보인다. 이 '엄중한 사시'에 누구든 시비를 건다면 이 중앙일보 정치부장은 그에 대해 상당한 근거를 요구할 것이다. 중앙일보에 사시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헌법이 있다. 자신의 회사의 사시에 대한 긍지와 지키려는 마음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최고 규범으로 국민들에 의해 승인된 헌법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존중과 이해가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는 “좌파 진영이 반일 정서를 이용해 ‘1919년 건국설’을 몰아붙였다”고 한다. 제헌의회 이래로 87년의 여야 합의와 국민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헌법 전문의 ‘1919년 건국’이 과연 좌파 진영의 반일정서에 의한 주장인가. 그가 말하려는 '팩트'와 '진실'이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독자들은 적잖게 혼란스럽다.  

공교롭게 지난 5일 민들레에 기고한 <‘언론의 중립’이라는 망상>에서 유시민 작가는 이 중앙일보 정치부장의 글을 뒤늦게 읽게 됐다면서 "내가 언론에 대해서 한 주장의 근거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내 견해를 비평한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허수아비를 무딘 칼로 내리쳤을 뿐이다”고 어이없어했다. 

중앙일보의 이 필자의 <‘1948년 건국은 친일’이라는 궤변>에서 과연 그는 무엇을 내리친 것인가. 자신이 만든 허수아비인가, 자신이 만든 팩트인가. 혹은 이런 정도의 지식과 상식과 사고를 가진 이가 편집국의 주요 간부를 맡아 대담하게도 '궤변을 질타'한다며 칼을 휘두름으로써 중앙일보의 '빛나는 사시'를 스스로 내리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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