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에 대처하는 조선일보의 지독한 이중성

자사 논설위원의 여기자 성희롱에 대한 미온 대응

정치인 등에 추상같이 비판하던 논조와 대조

내부 구성원들, 들끓는 만큼 스스로 자성할 것인가

2024-08-26     이명재 에디터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국가정보원 직원과 여성기자들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성희롱 대화를 해 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이후 조선일보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논설위원이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는 ‘사실관계 확인 중’이라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소속 기자들의 성희롱 사건에 관련된 기자들을 즉시 업무배제하고 징계과정을 공개한 다른 언론사들과 대비된다. 또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성희롱 사건에 추상같이 비판’하던 조선일보의 그동안의 논조와도 대조적인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대처다.

이같은 조선일보의 2중성에 대해 언론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규탄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조선 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은 26일 ‘권언유착 성범죄를 규탄한다!’는 성명에서 “조선일보사 논설위원이 여기자들에 대해 마치 품평회 하듯 입에 담기도 수치스런 말로 성희롱을 했다”면서 “그동안 정치인이나 미투 사건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넘어서 각종 선정적인 기사로 신문을 도배해 왔던 조선일보의 취재 관행이나 회사내 전통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일보사는 이미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언론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지 오래다. 특히 사주 일가를 둘러싼 온갖 범죄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곳이 바로 조선일보로서, 2009년에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자필 문건을 남기고 한 연예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는데 당시 조선일보 사주 일가에서 삼촌과 조카로 의심되는 복수의 인물이 연루되었다는 것은 널리 보도된 내용이다”면서 “그중 한 사람은 아직도 조선일보 계열사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는 상황이며 조선일보 회장인 방상훈씨는 수사 과정에서 ‘우리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퇴출할 수도 있다’는 막말로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는 고위 경찰의 증언도 있었다. 참으로 사악한 언론 가장 범죄집단이다”고 규탄했다.

 

'사실에 대한 믿음, 할 말을 하는 용기'를 강조하는 조선일보의 홈페이지 회사 소개 화면. 조선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이 성명은 “조선일보는 일본 제국주의에 아부와 충성을 일삼았지만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죄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범죄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조선일보에서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면서 조선일보에 대해 “이 논설위원의 범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엄벌에 처할 것과 이 논설위원이 왜 국정원 직원에게 그런 사진을 보냈으며 둘 사이에 불법적인 거래는 없었는지도 명명백백히 밝혀라”고 요구했다.

이에 앞서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지난 22일 <조선일보 논설위원 문자 성희롱, 위력 성범죄로 일벌백계하라>라는 논평을 내고 “둘 사이 오간 대화는 읽기 어려울 정도의 처참한 수준으로 누구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야 할 언론사 논설위원과 공무원의 대화 속 형편없는 젠더 의식은 실망을 넘어 불쾌할 지경”이라며 “특히 성희롱 피해자인 여성기자들은 조선일보 논설위원보다 낮은 연차의 기자들로 알려졌는데, 이는 업무상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보이는 심각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들의 주장대로 조선일보의 대응은 매우 소극적이다. 기자 단체대화방 성희롱 사건에 관련된 기자들이 소속된 뉴스핌, 서울신문, 이데일리는 가해자로 지목된 소속 기자를 즉시 업무배제하고 징계과정을 공개했었다. 게다가 언론단체들의 성명대로 "정치인이나 미투 사건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넘어서 각종 선정적인 기사로 신문을 도배해 왔던" 조선일보의  그동안의 보도태도와도 상반된다.

조선일보의 해당 논설위원이 국정원 직원에게 사진을 공유한 이유도 의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의 언론단체 성명에서 지적한 대로 "취재원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댓가로 이런 사진을 제공했다면 성범죄는 물론 명백한 취재 윤리 위반"일 수 있다.

한편 미디어 비평 매체인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자사 논설위원의 여기자 성희롱 문자 파문에 조선일보 내부 구성원들이 들끓고 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지난 22일 발행한 ‘조선노보’가 이 성희롱 사건에 대한 구성원들의 반응을 전한 기사는 “회사가 성범죄 사건에 미온적 대처를 해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고 썼다. 조선일보 직원들은 회사가 그동안 성폭력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고,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노보는 “회사는 성범죄 가해자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특정 부서로 보낸다” “여기자들에게 ‘좋지 않은 직장’이다. 나아가 ‘유해한 직장’이다” “우리 회사에선 강간이나, 가슴이나 엉덩이 정도는 만져야 가해자가 겨우 파면될 수 있다. 시대의 젠더 감수성에 비해 너무 뒤처져 있다” “이번 사태는 가해자 1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문화를 뼛속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문제다”는 등의 조합원들 발언을 소개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은 “보도 내용 진위에 대해서는 사측에서 진상을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에 대해 의혹 한 점 없이 철저히 진상 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엄정 대처에 나설 것을 회사에 요구한다”고 노보에서 밝혔다.

노보에서 얘기한 대로 향후 조선일보가 철저한 진상조사와 엄정한 대처를 할지 주목된다. 또 조선노보에서 인용한 어느 조합원의 "내부에서는 ‘사적인 대화인데 이게 왜 문제가 되나’라는 의견이 있다. 세상의 상식과 동떨어진 편집국 내 젠더 의식에 더 큰 좌절을 느꼈다"는 말처럼 성희롱 사건에 대해 강도 높게 공세를 폈던 조선일보 기자들의 젠더 의식에 자기비판과 변화가 있을지 조선일보 밖에서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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