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점검회의 영상, "본질은 무단 도용 아닌 '생방송' 포장"

YTN 리허설 ‘무단녹화 송출’ 파장

“핵심은 생방송이라고 거짓말 한 것”

리허설과 실제 방송 거의 일치해

YTN 민영화 추진 속 정부여당 공세 강화

2022-12-20     이명재 에디터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게시된 국정과제 점검회의 중계 화면. 자막에 '생방송'이라고 표시돼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

YTN이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정과제 점검회의’ 사전 리허설 장면을 ‘돌발영상’으로 내보낸 것을 둘러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허가되지 않은 사전 리허설 장면 녹화에 더해 생방송 장면과 교차 편집해 마치 사전 각본에 따라서 생방송이 진행된 것처럼 왜곡시켰다”고 주장하면서 무단 녹화에 대한 법적 대응과 출입기자단 징계 요청 등 강력 대응에 나설 방침으로 알려졌다.

YTN 측은 대통령실의 항의를 받고, 방송을 유튜브에 업로드 후 30분 만에 삭제한 것은 물론 관련자 징계까지 검토 중이다.

그러나 돌발영상의 내용과 국정과제 점검회의의 실제 진행 내용 등을 비교하고 관련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번 사태는 ‘무단 도용’ 여부와는 별개로 사전에 철저히 준비되고 예행연습까지 거친 것을 ‘리허설 없는 생방송’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높다.

이 사태를 전하는 언론의 보도는 대통령실의 주장대로 이를 ‘영상 무단 도용’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돌발영상과 실제 방송 내용을 비교해 보면 이번 회의는 질문자들을 각 부처에서 선발하고 질문-답변 내용 역시 상세한 각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YTN 돌발영상을 확인해 보면 국정과제 점검회의는 리허설 내용과 거의 똑같이 진행됐다. 리허설 때와 같은 출연자들과 같은 내용의 문답을 주고 받았다. 리허설 때 대통령을 향해 던졌던 시민들의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 나왔고 리허설 때 대통령 대역을 했던 이의 답변도 실제 윤 대통령의 답변과 비슷했다.

‘균형발전’ 분야와 관련된 윤 대통령 답변의 “제가 검사 시절에 전국을 돌아 다녀봤다”는 말,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패널 간의 ‘강력범죄로 인한 불안감’ ‘신당역 스토킹 범죄’ 등 발언, 국민 패널의 ‘기존 노조의 본질을 벗어난 행동’ 등의 말은 리허설과 실제 방송 간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리허설 중에 "국민 앞에 서니 떨린다"는 말까지 연습하고는 점검회의에서 실제로 "지금 생방이라 떨린다"고 해 리허설 없는 생방송으로 비치게 하도록 의도하는 발언까지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2.12.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전 정부의 청와대 홍보 부서에서 일했던 이들은 이번 사태의 핵심은 리허설이 있었으냐 없었느냐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부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 형식으로 방송을 할 때는 거의 '리허설'을 해 왔다는 것이 청와대 근무자들의 얘기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는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도 리허설을 했지만 이때는 주제에서 벗어난 엉뚱한 질문이 나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국민패널들에게 질문 내용이 아닌 어떤 주제의 질문을 할 것인지를 점검하는 수준의 리허설이었다”면서 “진짜 문제는 이번 회의에 대해 윤 정부 측은 '사전 리허설이 없었던 만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라고 언론을 통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사전 각본이 있었느냐 여부의 문제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관계자들은 “청와대 비서진이 국민들이 궁금해할 여러 분야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자료를 만들어 보고하면 대통령이 이를 참고자료로 활용했을 뿐 답변 시나리오까지 짜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처럼 질문의 내용을 사전에 정해놓고 대통령 대역까지 정해서 답변도 정해놓고 사전 연습까지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청와대 재직 경력이 있는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패널들의 질문 등이 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서 보기가 민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과 같은 '리허설 생방송'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4년 1월 신년 기자회견 때 상세한 질문 내용과 질문 순서까지 '각본'이 짜여져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 거센 비판이 쏟아졌었던 것과 흡사하다. 윤석열 정부가 '박근혜 식 생방송 포장 국민과의 대화'를 따르려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19일 “두 시간 반이 넘는 생중계 행사에서 순서 조정 등 사전 기술 점검이 당연히 필요하며, 기술 점검 때 나온 대통령의 예상 답변은 대통령 평소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 답변은 당연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국정과제 점검회의 때의 방송 내용을 리허설 장면과 비교해 보면 이 부대변인이 말한 기술 점검 수준의 예상 답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방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국정과제 점검회의 생방송은 생방송이라기보다 ‘실시간 방송’이라고 해야 맞다. 즉 사전에 각본에 따라 리허설을 거친 드라마나 쇼를 실시간으로 송출한 것이며, 이는 대통령실이 말하는 ‘리허설 없는 생방송’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YTN 홈페이지에 공지돼 있는 국정과제 점검회의 리허설 돌발영상 관련 안내문. YTN 홈페이지 캡처

한편 YTN은 지난 18일 “12월 16일 방송된 돌발영상은 사용 권한이 없는 영상으로 제작된 것으로 밝혀져 영상을 삭제조치했다”고 공지했다. 이 공지는 이례적으로 모바일 홈페이지 상단에 고정 공지사항으로 올려져 20일 오전 11시 현재까지 걸려 있다. 이는 대통령 및 고위 공직자의 공개 행사와 관련된 영상자료에 대한 저작권 이용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에 대해 지적하는 언론 보도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YTN은 관련자들에 대한 사내 징계까지 추진하고 있다. 19일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YTN은 방송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징계 대상자와 범위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사안이 징계사유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사내외의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무단 도용’으로 규정한 이번 사태는 YTN의 민영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와중에 터져 나와 YTN을 더욱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대통령실과 여당은 YTN에 대해 공세를 높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YTN에 강력한 유감을 표하며 이에 상응하는 법적, 윤리적 책임을 묻기에 앞서 돌발영상 사태에 지휘 책임이 있는 분들은 스스로 언론인의 윤리에 부합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삭제 경위를 밝히라고 나서는 것은 물론 이번 사태의 배후에 언론노조와 연결된 YTN 경영진이 있는 것으로 주장했다.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는 19일 성명서를 내고 “YTN의 15일자 돌발영상 사태는 민노총(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장악한 방송의 민낯을 보여주기 충분했다”고 말했다.

사태의 발단이 된 국정과제 점검회의는 지난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것으로,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이 회의가 ‘생방송으로 진행됐다’는 자막과 함께 게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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