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를 낳고 키우는 곳, 유대인 정착촌과 팔 난민촌

유대 광신자 스모트리히는 정착촌 출신

"가자 주민 굶겨죽이기는 정당하고 도덕적"

EU, 프랑스 등 서방동맹도 극우발언에 반발

팔 외교부, ICC에 스모트리히 체포영장 촉구

하마스 새 실권자 신와르는 팔 난민촌 출신

2024-08-09     이유 에디터

"지금의 국제적 현실에서 우리는 전쟁을 관리할 수 없다. 누구도 우리가 2백만 명의 민간인을 굶겨 죽이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인질이 돌아올 때까지 그것이 정당화되고 도덕적일지라도 말이다."

 

점령지역 정착운동 책임자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이 10일 크네세트(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07. 10 [AP=연합뉴스]

가자 주민 200만 아사시켜도 도덕적 정당?

'유대 광신' 장관 발언에 서방 동맹도 반발

이스라엘의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지난 5일 한 유대인 정착촌 운동 지원 행사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 구호품을 들여보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 같아선 하마스가 인질을 석방하지 않으면 가자 주민을 굶어 죽게 놔두고 싶고, 설사 그런 행위를 해도 도덕적으로 정당할 것이란 주장이다. 섬뜩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올해 44세의 스모트리히 장관은 유대교 근본주의 정당인 '종교적 시오니즘당'의 대표로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의 힘) 대표인 이타마르 벤-그비르(48) 국토안보부 장관과 함께 베냐민 네타냐후의 극우 연정에서 핵심 파트너다. 스모트리히는 가자 재점령과 2005년에 철수한 유대인 정착촌의 재구축을 지지하고, 자발적 이주란 구실로 팔 주민의 추방을 추진하고 있다.

그의 이 발언은 11개월째 접어든 가자 전쟁 과정에서 4만 명을 학살했는데도 자위권을 내세워 이스라엘을 옹호해온 미국과 유럽 동맹국의 비판을 부를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2일 호주 멜버른 시내 빅토리아 주립도서관 앞에서 주민들이 돼지코가 합성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을 들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24.06.03. EPA AP 연합뉴스

EU "민간인 의도적 굶기기는 전쟁 범죄"

팔 외교부, ICC에 스모트리히 체포영장 촉구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7일 성명을 통해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굶기는 것은 전쟁 범죄다"라며 "그 말은 그가 국제법과 인도주의의 기본 원칙을 경멸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보렐은 "이스라엘 정부가 스모트리히 장관의 발언과 분명하게 거리를 두기를 바란다"면서 수십만 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가자인의 인도주의적 필요를 지원하기 위한 접근을 요구했다.

프랑스도 성명을 통해 "충격적 발언에 깊이 실망했다"면서 이스라엘이 현재 가자를 통제하는 만큼 가자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은 "국제인도주의법에 따른 의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데이비드 라미 외교 장관은 자신의 'X'를 통해 "스모트리히 장관의 발언은 어떻게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스라엘 정부 차원에서 그 말을 철회하고 문책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최후 후견인'인 미국은 공식 입장은 내지 않았다. 그러나 한 국무부 대변인은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의 논평 요청에 "끔찍한 발언이다. 이런 발언은 해롭고 충격적이란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외교부는 8일 스모트리히의 발언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발언이며 국제인도주의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그런 '무책임한 발언'은 가자 주민에 대한 선동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외교부는 8일 성명을 통해 스모트리히의 발언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정책을 수용하고 자부하고 있음 명백히 시인한 것이다"라면서 유엔 산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그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8일 가자 남부의 칸 유니스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국방군(IDF)의 소개 명령을 받고 피신하고 있다. 2024. 08. 08 [EPA=연합뉴스]

가자지구, 이스라엘 육·해·공 봉쇄에 질식

식량 구호품 전달, 이스라엘 규제로 지장

ICC의 카림 칸 검사장은 지난 5월 20일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전범'으로 지목하고 체포영장을 청구할 당시 "전쟁의 한 수단으로 민간인 굶기기"를 이들의 여러 혐의 중 하나로 제시했다.

현재 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 공격 탓에 인도주의적 재앙에 놓여 있다. 육·해·공에서 모두 철통 봉쇄된 가운데 주민 대부분이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있고 수십만 명은 불결한 천막촌에 밀집돼 있다. 가자는 국제기구에 의해 지난 6월에 "기아 위험이 높다"라고 판정받았지만, 구호 기구들은 식량과 다른 구호품 전달 시도가 이스라엘의 규제, 계속되는 전투, 그리고 법과 질서의 붕괴 등으로 인해 방해받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사실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의 신변은 스모트리히의 안중에는 없다. 그는 기습 공격을 당한 작년 10월 7일 오후 긴급 각료회의에서 "하마스를 인정사정없이 쳐야 하고 인질들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인물이다. 가자에서 하마스를 뿌리 뽑는다면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들의 생명과 안전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어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네타냐후 내각의 극우 각료들. 왼쪽부터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부 장관, 이스라엘 카츠 외무부 장관. [월드파이낸셜리뷰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스모트리히와 벤-그비르, 유대인 정착촌 출신

팔 주민 내쫓고 불법 정착촌 확대 옹호

스모트리히와 벤-그비르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부정하고 가자엔 불법 유대인 정착촌 재구축, 요르단강 서안에는 정착촌 확대 등을 통해 팔 주민들을 내쫓고 요르단강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더 위대한 유대 국가' 건설 구상에 대한 광신적 옹호자다. 공통점은 둘 다 유대인 정착촌에서 태어나거나 그곳에서 자랐다는 점이다. 스모트리히는 1980년 2월 골란고원 태생으로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 베이트 엘에서 성장했다. 벤-그비르도 1976년 5월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 메바세레트 시온에서 태어나 자랐다. (위키피디아 참조)

유대인 정착촌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통해 점령한 가자, 서안 등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한 유대인 거주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이들 점령 지역을 '영토'로 만들고자 러시아 등지에서 이주해온 유대인을 정착시키고 계속해서 정착촌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법적, 폭력적 정착촌 확대 과정에서 난민으로 전락한 팔 주민의 무력 항쟁을 불렀다. 하지만 스모트리히와 벤-그비르 같은 '유대인 정착촌 아이들'의 눈에는 '야훼'(유대교의 신)가 약속한 땅인 정착촌을 무력으로 빼앗으려는 세력으로 비쳐 극단적 적대감을 지니게 됐음 직하다.

 

6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직위인 정치국장에 선출된 야히야 신와르가  2021년 5월 24일 가자시티의 반이스라엘 집회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하마스 신와르, 팔레스타인 난민촌 출신

폭력은 폭력을, 가해는 저항을 부른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적의는 적의를 부르며, 가해가 있으면 저항을 부르는 법이다. 스모트리히와 벤-그비르 같은 '유대인 정착촌 아이들'의 정반대 편에는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인 1200명을 살해하고 250여명을 납치한 '알아크사 홍수작전'을 주동한 야히야 신와르다. 신와르는 1962년 10월 가자의 칸 유니스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자이슬람 대학을 졸업하고 20대에 하마스 창설에 참여했고 이스라엘 군인 등을 납치·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22년 복역한 뒤 2011년 풀려났다. 2017년부터 가자 지구 지도자를 맡아왔고 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된 이스마일 하니예의 후임으로 지난 6일 하마스 정치국장에 선출돼 군사와 정치·외교 전 분야를 관장하는 명실상부한 하마스의 최고 실권자로 등장했다.

이스라엘은 '제1의 공공의 적'인 신와르를 찾아내 제거하겠다면서 정치국장 선출 다음 날인 7일에도 가자에 대한 군사 공격을 이어갔으며, 하마스는 하니예 암살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싸움이다. 비극의 무대인 유대인 정착촌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상대에 대한 끝 모를 적개심을 갖고 비타협적인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이스라엘 유대 광신자 극우 각료들의 폭주를 막는 데 국제사회의 단합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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