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카리브해’ 동해, 일본이 독도에 집착하는 이유

미국-중국 패권경쟁의 ‘세키가하라’ 남중국해

동아시아의 ‘카리브해’,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

한국(한반도)은 ‘현상 유지’ 수혜자일까 피해자일까

스페인제국에 ‘현상 변경’ 요구한 미국

독도에 대한 일본의 ‘현상 변경’ 요구

온난화 속 새로운 동북아 ‘카리브해’로 떠오른 동해

2024-08-01     한승동 에디터
독도.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져 있고, 일본 오키섬에서는 157km 떨어져 있다. 

남중국해 지배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이 싸우는 것은, 그것이 단지 남중국해라는 바다뿐만 아니라 미국-중국 패권경쟁의 행방을 가를 ‘세키가하라’이기 때문이라고,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외교안보분야 칼럼니스트 아키타 히로유키는 29일 칼럼에서 썼다.

 

남중국해의 분쟁 지역인 제2 토마스 암초(아융인)에 좌초돼 있는 필리핀 함선 BRP 시에라 마드레를 찍은 항공 사진. 2023.3.9.  연합뉴스

미중 패권경쟁의 ‘세키가하라’ 남중국해

‘세키가하라’는 1600년 10월 21일, 교토 동쪽의 일본 최대 담수호 비와코(비파호)와 나고야 사이에 있는 세키가하라에서 벌어진 전투를 가리킨다. 임진년(1592년)에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 9월에 사망한 뒤 도요토미 정권 내에서 권력쟁탈전이 벌어졌고,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 쟁탈전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로 귀결되게 한 결정적인 전투였다. 도쿠가와가 이끈 동군이 그날 모리 데루모토의 서군을 격파함으로써 도쿠가와 막부의 에도시대가 열리게 된다.

베이징과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기도 한 외교안보 전문가 아키타는 미국이 남중국해를 중시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9~20세기 초, 미국은 유럽 세력을 몰아내고 남북 아메리카대륙을 지배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중심점에 있는 카리브해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에서는 남중국해가 그런 요충지(급소), 즉 동아시아의 ‘카리브해’다.

 

카리브해

동아시아의 ‘카리브해’

바꿔 말하면, 남중국해가 중국 세력권에 들어가면 인도태평양도 지배하게 된다. 중국도 미국이 카리브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관점에서 남중국해를 중시한다.

남중국해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를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남중국해가 세계의 교역을 떠받치는 대동맥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등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세계 무역상품의 약 4분의 1이 남중국해를 통과한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는 전체 교역량의 약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가 남중국해를 지나간다.

만일 남중국해를 중국이 지배히게 된다면 세계무역의 운명을 쥐고 있는 해상교통로(sea lane)가 중국 관할 아래로 들어간다. 그만큼 중국은 외교와 안보상으로도 발언권이 강해질 것이다.

또 하나는 군사적 영향력이다. 중국은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 안에 두는 핵 미사일들을 적재한 원자력잠수함들을 남중국해에 본격적으로 배치하려 하고 있다. 이 잠수함들이 남중국해에서 제한없이 활동하고 태평양으로도 나갈 수 있게 되면, 미국에 대한 중국의 핵공격능력이 대폭 증대된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 등에 제공하고 있는 ‘핵 우산’ 효력도 약화시킬 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뒤인 2013년부터 남중국해 작은 암초들에 여러 군사거점들을 구축하고 그곳 전체 해역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해 왔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 중재재판소가, 남중국해의 필리핀 근해 섬들의 영유권을 놓고 중국에 맞서고 있는 필리핀의 제소에 따라 심사한 결과 2016년에 중국 쪽 주장이 국제법상으로 근거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으나, 중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그리고 동해.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남중국해 연안국들의 근해까지 포함한 남중국해 거의 전 해역을 자국 영해라 주장하고 있다.

 

필리핀 보급선 우나이자(중앙)가 지난 5월 4일 남중국해의 분쟁지역인 제2 토마스 암초(아융인 암초)에 접근하려다 중국 해안 경비대 함정들의 물대포를 맞고 있다. 2024.5.4. AP 연합뉴스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

아키타는 일본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해서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현상 변경”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힘으로 남중국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만드는 ‘현상 변경’을 묵인하고 방치하면 국제경제뿐만 아니라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세계질서에도 헤아릴 수 없는 큰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미국, 그리고 미국과 이해를 같이하는 일본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 미국 일본에겐 남중국해를 중국이 지배하게 되는 ‘현상 변경’은 국제경제와 세계질서에 타격을 가하는 용납할 수 없는 국제법상의 범죄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겐 ‘현상 유지’야말로 부당한 폭거일 수 있다.

 

1999년에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의 일부인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 좌초된 필리핀 함선에서 펄럭이고 있는 필리핀 국기. 중국과의 영해분쟁 최일선이 돼 있다. 2014.3.29. 로이터 연합뉴스

스페인 제국에 ‘현상 변경’ 요구한 미국

미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포함한 태평양의 광대한 해역을 지배하게 된 것은 1898년에 발발한 미국-스페인전쟁(미서전쟁)이 그 출발점일 수 있다. 미국이 도발한 그 전쟁에서 미국은 기울어가던 스페인 식민지 쿠바를 빼앗고, 푸에르토 리코, 필리핀과 괌까지 빼앗고 하와이까지 같은 해에 합병했다. 당시 스페인에겐 미국이야말로 ‘현상 변경’을 통한 국제경제와 세계질서 교란자요 파괴자였을 것이다.

1905년 러일전쟁 직후 미국이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필리핀과 조선(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서로 보장해 주기로 한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전승국 미국과 안보동맹을 맺고 동맹자가 돼, 전후 미국이 주도한 아시아태평양 질서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미일동맹은 이 전후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을 ‘현상 변경’을 노리는 질서 파괴자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한반도)은 ‘현상 유지’의 수혜자일까 피해자일까

이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낀 한국(한반도)은 미국과 미일동맹이 설계하고 유지시키려 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태평양 질서의 수혜자일까 피해자일까.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 있고 미일동맹이 제공하는 시장질서를 활용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는 점에선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는 위험하고 달가울 리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한반도)은 미국과 미일동맹이 설계하고 유지하려는 전후 질서에 의해 국토가 분단되고 민족의 이산 속에 처참한 전쟁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분단국가로 소모적 민족대결 구도에 갇힌 채 미일동맹의 하부 종속적 지위를 감수해야 하는 반면, 가해국이자 전범국인 일본이 그 구도의 최대 수혜자가 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군림’하고 있다는 점에선 피해자다. 그리고 한국(한반도)과 중국(베이징+타이베이)은 근대 이후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혹심한 피해자라는 점, 그리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은 미일동맹이 설계하고 유지하려는 전후 질서의 ‘현상 변경’을 요구하는 중국에 선뜻 동조할 순 없을지라도(그 ‘중화 중심주의’의 위험성 때문에), 그 처지를 충분히 이해할 순 있지 않을까.

 

동북아역사재단이 서울 영등포구 독도체험관에 1794년 영국에서 로버트 로리와 제임스 휘틀이 간행한 '신세계지도첩'에 수록된 옛 지도를 공개한다고 15일 밝혔다. 사진은 로버트 로리와 제임스 휘틀이 제작한 지도에서 한반도 주변 부분을 확대한 모습. 2024.7.15. 연합뉴스

독도에 대한 일본의 ‘현상 변경’ 요구

동일선상에서 논할 수는 없겠지만, 아키타 히로유키의 얘기는 독도 관련 현상 변경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독도는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져 있고, 독도에서 제일 가까운 일본 영토인 사마네와 돗토리 현 앞바다의 오키섬(오키노시마)은 독도에서 157km 떨어져 있다.

일본이 독도에 집착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독도 영유가 가져다 줄 동해에 대한 지배 또는 패권이 아닐까.

독도가 일본영토 ‘다케시마’로 공인되면, 일본 영해선이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가르게 되고 동해 중앙의 핵심해역이 대거 일본 영해선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해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일본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헤서 동해가 사실상 일본의 내해(일본해)가 될 경우 일본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국에 대해서도 압도적인 전략적 우위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독도를 미리 점령하고 러시아 발틱 함대를 궤멸시키기 위한 군사 요충지로 활용한 것도 독도가 지닌 그런 전략적 가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일본은 그 러일전쟁 때의 독도 점령 사실을 독도가 자국령 ‘다케시마’임을 주장하기 위한 유력한 근거로 동원하고 있다.

 

동해와 그 주변 지역

기후위기 속 동아시아의 ‘카리브해’로 떠오르는 동해

지구 온난화로 멀지 않은 장래에 북극항로가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요 해상교통로가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동해는 한국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물류의 주요 해상통로가 돼, 동아시아의 ‘카리브해’, 동북아시아의 ‘남중국해’가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독도의 해양전략적 가치는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그리고 여러 문헌자료들을 통해 고대로부터 한반도 부속 도서들 중 하나였음이 명백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 주장, 즉 ‘현상 변경’ 요구는 그런 계산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을까.

일본 제국군을 누르고 일본을 장악한 미국 점령 당국은 효과적인 일본 통치를 위해 군국일본의 우익 전범자들을 재기용하고 그들의 독도 영유 주장에 동조했다. 그것이 ‘독도 문제’의 출발점이다. 한국과 중국이 배제당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최종안에서 독도 영유문제는 아예 빠져 흐지부지됐지만, 일본은 그때 일을 또 하나의 근거로 삼아 ‘다케시마 일본영토’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자가당착

단언하건대,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는 한 한일관계는 한반도 남쪽과의 사실상의 통합을 갈망하는 일본 보수우익 주류세력의 희망과는 달리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며 반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독도가 한일간의 운명을 가를 ‘세키가하라’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은 19세기 후반에 그들이 강제 복속시켜 실효지배하고 있는 오키나와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해서는, 그 섬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중국 쪽 움직임을 ‘현상 변경’ 시도라며 비판하고 있다. 독도에 대해서는 '현상 변경'을 요구하는 그들의 ‘내로남불’식 자가당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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