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부터 틀린 ‘일본식 영어’ 애용하는 나라

글로벌 스탠더드, 마이너스 성장, 인프라 등 오용

2024-07-22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외국인 투자기업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아니면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더 유리한 제도와 규제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윤대통령은 “우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하고 국제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이 나라 대통령이 매우 애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글로벌 스탠더드’란 말은 틀린 말이다. 영어에 아예 없는 말이다. 당연히 영미권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용어는 1990년 말엽 일본 버블 붕괴 시기에 일본 재계인사들이 쓰기 시작한 말이다. 세계의 표준에 적응시켜 나감으로써 관료지배 구조나 연공서열 기업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의 약점을 극복해나가자는 취지였다. ‘세계 표준’을 명분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사실상 미국의 기업 경영이나 비즈니스 방식이나 기준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생겨난 말이 ‘글로벌 스탠더드’이니 일본과 미국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 나라 대통령이 충분히 좋아할 만하다.

물론 영미권에서 ‘global standard’라는 용어는 없고 또 이와 완전히 부합되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유사한 경우를 찾아보자면, ISO(국제표준화기구)를 비롯해 IT 등의 과학기술과 공업 규격 그리고 회계기준 등에서 쓰이는 ‘국제표준규격’, 혹은 ‘국제기준’, 영어로는 globalization이나 international standard 정도라 할 수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영어로 연설하고 있다. 2023.04.28 연합뉴스

마이너스 성장, 인프라... 이 또한 틀린 영어

윤 대통령은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난달, 1년여 만에 수출 마이너스 행진에 종지부를 찍고 2개월 연속 수출 플러스를 이어가며,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수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성과를 말하기도 했다.

‘마이너스(minus) 성장’, 그러나 이 ‘마이너스 성장’이란 말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말로서 영미권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다. 역시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영어다. minus란 우리말로 ‘빼기’라는 뜻이다. ‘빼기 성장’? ‘수출 빼기 행진’? 전혀 통하지 않는 엉터리 영어일 뿐이다. 음수의 영어 표현은 negative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에너지, 보건, 교육, 인프라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꼭 필요로 하는 지원을 계속하고 이를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우리들이 ‘사회 기간시설’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프라’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식 영어다. 영어 infrastructure의 앞부분 infra만 떼어내 만든 조어다. 하지만 infra는 굳이 그 뜻을 얘기한다면 ‘아래의’, ‘하부의’ 의미밖에 없으며, 절대 ‘사회 기간시설’이나 ‘사회간접자본’ 등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의미로 해석될 수 없는 말이다.

‘제·개정’은 틀린 말, 이제 그만 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제개정된 형사 법제와 재판 시스템의 변화에 발맞추어 세밀하고 구체적인 수사 방식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개정’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엄청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언론에서 이 표현이 정확하다는 믿음으로 그리고 최근의 줄임말 대세를 타고 왕성하게 사용하고 있다.

‘가운데 점(·)’의 문법적 의미에 상응하여 이해할 때, ‘제·개정’이라는 용어는 ‘제정 및 개정’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제정’과 ‘개정’의 한글 ‘정’ 자는 같지만, 어원적으로 ‘제정(制定)’의 ‘定’과 ‘개정(改正)’의 ‘正’으로서 전혀 상이한 ‘정’ 자다. 그러므로 ‘제정(制定)’과 ‘개정(改正)’은 절대 줄임말로 사용될 수 없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한자로 표기된 국회법의 관련 조항을 살펴보자.

第84條(豫算案ㆍ決算의 회부 및 審査) ⑧委員會는 稅目 또는 稅率과 관계있는 法律의 制定 또는 改正을 전제로 하여....

第98條의2(大統領令등의 제출등) ①中央行政機關의 長은 法律에서 위임한 사항이나 法律을 執行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規定한 大統領令·總理令·部令·訓令·例規·告示등이 制定·改正 또는 廢止된 때에는...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제·개정’이라는 잘못된 말 대신 “제정 또는 개정”이나 “제정·개정”이라고 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는 대법원의 「대법원규칙 등의 제·개정절차 등에 관한 규칙」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대법원규칙 등의 제·개정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여 시행 중이다. 여기에서도 ‘제·개정’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물론 잘못이다. 동 규칙 내용 중에도 ‘제·개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특히 본래 법률 명칭이나 법률 본문에 ‘제·개정’과 같은 줄임말은 사용될 수 없도록 명문화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잘못된 일이 국가 법률을 대표하는 대법원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SNS? 영미권에서 통하지 않는다

말이 나온 김에, 한두 가지 덧붙인다.

‘SNS’란 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SNS에 올린 글”, “SNS 자제령”, “SNS 마케팅” 등등 너무나 친숙한 일상 용어다. TV 방송은 물론이고 각종 언론 기사와 인터넷에서도 시시각각 보고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흔히 ‘사회관계망서비스’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사용된다.

우리는 이 ‘SNS’가 당연히 영어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은 ‘겉만 영어’지 실제로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틀린’ 일본식 영어일 뿐이다.

영미권에서 ‘SNS’라는 줄임말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일본이 자기 임의대로 줄여서 ‘SNS’라는 자기식의, 일본식 영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의 총무성과 일본의 TV 방송에서 ‘SNS’라는 이 줄임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니 영미권에서 통용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SNS의 정확한 영어 표현은 social media다.

‘환경호르몬’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잘못된 말

우리 사회에서 ‘환경호르몬’이라는 말은 많이 사용된다. 환경단체들도 이 말을 애용한다. 이 ‘환경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 활동을 통해 생성, 분비되는 화학 물질로서 생물체에 흡수되면 내분비계 기능을 방해하는 유해한 물질이라는 의미하는 말로서 쓰인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이란 용어는 어딘지 모르게 환경을 위한 호르몬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과연 ‘환경호르몬’의 영어는 무엇일까? ‘환경호르몬’ 말 그대로 environmental hormone일까? 실제 우리나라 영문 표기 신문에는 ‘환경호르몬’이 그대로 environmental hormone이라고 표기되고 있다.

그러나 ‘환경호르몬’의 공식 영어 명칭은 endocrine-disruptor 혹은 hormone-disrupting chemicals로서 약칭은 EDC이다. 즉, ‘내분비 교란물질’로서 생물체에 흡수되어 내분비계의기능을 방해하는 유해한 물질이다.

그렇다면 왜 이 ‘내분비 교란물질’이라는 말이 ‘환경호르몬’이라는 말로 둔갑되었을까? ‘환경호르몬’은 바로 1998년 5월에 일본 환경청이 ‘환경호르몬 전략 계획’을 발표하면서 유행된 말이다. 일본에서 이 ‘환경호르몬, 環境ホルモン’이라는 말은 ‘환경호르몬 학회, 環境ホルモン学会’나 ‘환경호르몬 측정, 環境ホルモン測定’ 등과 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환경호르몬’이란 용어는 인간과 환경에 유해한 물질을 마치 환경에 유익한 물질로 혼동하게 만들 수 있는 부정확하고 비과학적인 용어에 속한다. 이렇게 일본에서 편의적으로 만들어진 용어를 그대로 들여와 사용하는 상황은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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