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진영의 '트럼프 기대론'이 위험한 이유
김정은 만나 남북관계 돌파구 열어줄 것이라는 바람
한두 가지 이유로 민주주의 유린한 인물 지지하는 발상
무엇보다 윤석열과의 조합, 한국에 끔찍한 결과 될 것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3개월여 앞으로 바짝 다가온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의 4년 만의 세계 최강대국 최고 권력자 복귀 전망에 미국 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전지구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이른바 진보로 분류되는 이들 사이에서 트럼프에 대한 기대가 적잖게 보이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에서 대체로 미국의 민주당 후보 지지가 일반적인 한국 진보 진영에서 트럼프 당선을 바라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트럼프 집권 1기 때의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다. “재집권하면 김정은과 잘 지낼 것”이라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의 발언은 그 같은 기대감을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김정은을 언급하며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라며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그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할 것”이라고 해 재선 시 김정은 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추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에 대한 기대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실망도 크게 작용한 것이랄 수 있다. 바이든이 4년 전 트럼프의 맞상대가 됐을 때 내걸었던 '미국을 다시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 바이든이나 미국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을 낳고 있다. 특히 한반도 주변의 대중 포위 전략이나 신냉전적 상황은 바이든도 트럼프와 다를 게 없다는 인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같은 남북 관계 긴장 완화 가능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트럼프의 당선을 바라는 것은 과연 타당한 일인가. 또 그같은 기대를 수긍한다 하더라도 4년 만에 대통령에 복귀하면 트럼프는 과연 첫 임기 때와 같은 모습을 보일 것인지는 의문이다. 트럼프에 대한 기대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자국의 이익 우선 기조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옳은 것이다. 미국의 '이익'이 어떤 것이며, 그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어떤 것이냐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는 면에서 전례 없는 일방주의를 보였다.
그보다도, 트럼프는 집권 4년간 민주주의와 이성, 분별, 인간에 대한 예의를 파탄내려는 집요한 시도를 보였다. 폭력경찰에 의한 무고한 흑인의 죽음과 그 이후 펼쳐진 무법과 광란의 사태에서 보였듯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기간은 미국의 상식적인 국민들-특히 흑인과 이민자, 약자와 소수자들-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악몽이 됐었다.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의 선동으로 폭도들이 미국 연방의회에 난입해 의사당을 점거하고 4명의 시망자가 발생한 2021년 1월 6일의 사태는 미국 역사에 영원히 치욕의 날로 기록될 일이었다.
트럼프의 8년 전 당선은 미국의 타락을 넘어 세계인의 수치며 굴욕이었지만 4년 만에 그가 다시 대통령에 돌아온다는 것은 2중의 수치며 굴욕이다.
이제 그는 더욱 강력해지고 확신에 차 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피격 사건 당시 자신의 심경을 설명하면서 "피를 흘렸지만, 나는 매우 안전하게 느꼈다. 신이 내 편에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해 자신에게 신의 가호와 후광을 스스로 덧씌웠다. 피격 당시 오른팔을 쳐들고 외쳤던 '싸우자(fight), 싸우자, 싸우자'는 말은 누구와의 싸움을 의미하는 것인가.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 미국 우선주의에 따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그의 신념에 찬 일방 독주와 파행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당선을 바랄 것인가. 오로지 우리의 남북관계를 위해서 미국 국민들에 어떤 희생과 고통이 따라도 우리는 아랑곳할 일이 아니며 세계인으로서의 수치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다소 과장해서 설령 히틀러라도 남북문제를 푸는 데 도움만 된다면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냐, 라는 물음 앞에서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런 논리라면 7.4 남북 공동성명 등으로 남북 간의 관계 개선 시도를 한 박정희를 그런 이유로 그의 수많은 악행과 민주주의 유린에도 불구하고 지지하겠다는 것과도 거의 다를 바 없다.
바이든이든 혹은 그가 아닌 다른 어떤 민주당 후보로 교체되든 그가 과연 적임자이냐 하면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어떤 한두 가지 면으로 복잡다단한 사안을 판단하려는 단견과 협애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 위험한 것은 트럼프와 윤석열의 조합이 낳을 결과가 어떨 것인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윤석열이 지난 2년간 보여왔던 이해하기 힘든 행태에 비춰볼 때 도저히 예상하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미 대일 굴욕 외교를 펼쳐 온 한국의 대통령은 트럼프에게는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상대일 수 있다. 동맹이라도 비용을 대지 않으면 돕지 않겠다고 거듭 얘기하고 있는 트럼프는 이미 재임 시절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이상 올리라고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가 썼던 협상 카드는 ‘주한미군 철수’였다. JD 밴스 부통령 후보 역시 17일 수락 연설에서 동맹 간의 상호 방위를 ‘미국의 자비’로 규정하며 “미국인의 자비를 배반하고 무임승차하는 동맹들은 더 이상 없게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당시처럼 한국의 대통령이 문재인이 아닌 윤석열인 상황에서 방위비 협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어느 정도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에 23억 달러(3조 원)가량을 유무상 지원하겠다는 등 펑펑 써대는 씀씀이를 보이고 있는 그의 '통 큰 손'이 얼마나 후한 인심을 쓸지 가늠이 된다.
이미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사실상 '탄핵'을 당한 윤석열로서는 트럼프를 자신을 구원해 줄 손길로 삼을 수 있다. '한미 동맹관계의 획기적 개선'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과거 전두환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나 일본 나카소네 총리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것과 같은 모습을 재연할 수도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성은 한국 권력의 문제에 있는 것이다. 한국은 대미 관계에서 결코 종속변수가 아니다. 물론 분명한 국력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에는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 이 말은 강자와 약자의 지위가 바뀌지는 않더라도 국면과 상황, 주체적 대응에 따라 강자의 지위와 약자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변동되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게 옳다. '트럼프와 윤석열'의 조합은 한국을 영원한 약자, 만만한 '봉'으로 만들 것이다. 트럼프 그 자체가 문제인 점을 넘어서 그를 상대하는 한국의 대통령이 윤석열이라는 점이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비록 일부일지라도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일고 있는 '트럼프 기대론'을 접어야 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