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양산하는 '보호출산제' 폐지해야 한다

반인권적 '고아호적' 피해 아동 더 이상 없어야

보호출산제는 아동 권리 무시한 잘못된 제도

부모와 아동 강제 분리, 피해 아동들 삶에 재앙

아동의 출생 등록과 양육받을 권리 보장해야

2024-07-02     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국내입양인연대 등 아동인권단체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입양특례법 무력화하는 보호출산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1.7.7. 연합뉴스

1. 더 이상 '고아호적'의 피해 아동은 없어야 합니다.

저는 4살 무렵인 1977년 5월 여름에 시장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길을 잃었습니다. 그 직후 춘천 오순절 입양위탁소에 보내졌고,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가족을 찾지 못하고 온갖 상처와 트라우마를 껴안은 채 '고아(기아)호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피해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길을 잃은 아동에게 원가족으로 복귀를 시켜줘야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입양위탁소에 수용되었고 6개월 만에 입양돼 시설장과 춘천시장, 춘천지방법원에 의해 '고아호적'이 만들어졌습니다. 1978~1980년 사이엔 영국과 미국으로 2번 해외 입양이 될 뻔했습니다.

해외 입양이 좌절되자 강원도 원주의 다른 시설로 전원 조처되어 수용되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온 시설은 말이 고아원이지 강제 수용소나 다름없었습니다. 시설에 입소 되자마자 방을 배정받아 생활했고, 매일 아침 6시면 기상하여 체조하고, 예배 보고, 청소하고, 식사 등을 이어가는 그야말로 모든 일상이 철저히 군대식 제식 훈련소와 같았습니다.

1970-80년대 집단수용시설 중심의 실상은 폐쇄적이었습니다. 반복되는 폭력과 학대에 아동의 인권이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무사히 버티며 살아내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아동 인권이 전무하던 197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멀쩡하게 부모가 있는데도 누구의 동의도 권리도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경쟁적으로 만들어지는 부모 없는 '고아호적'의 관행이었습니다. 당시 시설수용소에는 이렇게 '고아호적'으로 수용된 아동들이 100명 정도였고, 관할 지역에만 5개의 시설이 있었으니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조차 없습니다.

'고아호적'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년 이후(보호 종료)로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그야말로 '편견과 차별'의 모든 소나기를 맞아가며 버텨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인권적 제도입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으므로 힘들고 교육, 금융, 취업 등 사회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홀로 감당하며 책임져야 하는 유령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비인간적 제도입니다. 

 

국민의힘 여성의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보호출산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7.4. 연합뉴스

2.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권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통과된 심각한 반인권적 법안이며 제도입니다.

출생통보제와 보호(익명)출산제가 이제 오는 7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작년 6월에 출생통보제가 통과되고, 3개월 만인 10월에 이 법안이 일사천리 통과되는 과정이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참담하고 고통스러웠으며 악몽을 꾸는 듯했습니다. 1970년대 당시 저를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입양 아동, 시설수용 아동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통과되는 과정은 문명이 개명하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유례없는 일이었습니다.

늦게라도 아동의 공적 출생통보제가 시행되어 아동의 생명을 지켜내고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공론화되었다는 건 다행이고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어려움에 처한 위기 임신부가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고, 산모가 신원을 숨기더라도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보호출산제도 함께 통과됐습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는 사실상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 회귀하려는 것입니다.

아동이 ▲자기 부모를 알고(정체성) ▲원가정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통과됐습니다. 따라서 보호출산제는 폐지하고, 아동의 권리를 위해 더 많은 숙의를 거쳐 충분하고 세심한 포괄적 입법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날 국회에서 통과된 위기 임신 및 보호 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10.6. 연합뉴스

3. 보호출산제는 고아호적 피해 아동을 양산하며 부모와 아동을 강제 분리하는 폭력적인 법안입니다.

보호출산제는 첫째,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알지 못하고, 둘째 아동이 원가정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권리를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박탈당한 채 살아가야 함을 전제하는 강제적이고 치명적이며 폭력적인 법안입니다.

고아호적은 부모를 알 수 없고, 버려진 아이(유기)로 기록되기 때문에 아동이 자신의 부모와 다시 결합할 수도, 원가족으로 복귀하도록 면접할 권리와 상담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동의 생존과 존엄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훼손되는 그야말로 재앙적 신분제도입니다. 아동기가 출생 이후 살아갈 유년의 뿌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생애 기간임을 고려한다면 피해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법안입니다.

지금도 제가 지원하며 돕고 있는 '자립 청년(보육원 퇴소자)'들은 고아라는 낙인과 차별과 혐오가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신분조차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전국적으로 고아호적으로 살아가는 누적 시설 퇴소인들은 1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무연고자로 불립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3104명(2020년 보건복지부 통계 기준)이 '자립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시설을 퇴소해 사회에 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당하고 부정당한 채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동의 출생 등록과 양육은 보호받아야 하는 보편적 권리이자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할 공적 책무입니다.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알고, 원가정에서 친생부모와 애착을 형성하며 양육 받을 권리는 그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분리해서도 안 되고 친생부모와 생이별을 강요해서도 절대 안 됩니다. '분리불안'은 아동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폭력, 학대, 상처로 남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고,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청년들이 있고, 이 비율이 일반 성인보다 2~3배 높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출생 아동이 자신의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살아가며, 권리로서 지켜질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는 모든 지원과 자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모든 아동이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아동이 태어나는 즉시 출생등록이 될 권리를 자유권과 사회권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독자적 기본권으로 판시한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이기도 합니다.

한 인간의 생애에 미치는 그 나라의 문화적, 시민적, 경제적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34년이 넘었고,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 헤이그협약도 모두 비준했습니다. 이제라도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회는 그에 걸맞은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공적 책무도 설계하고 마련해야 합니다. 

 

2024년 5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보호출산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필자 제공

4. 아동의 출생등록과 양육 받을 권리는 아동 인권의 출발점입니다.

지금 저출생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가 모든 에너지와 관심을 집중해서 논의하고 입법해야 할 것은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아동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보장할 '출생과 양육의 권리 보장'에 대한 것입니다. 아동이 출생 등록될 권리는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는 첫 단계이자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전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아동이 사람으로서 인격을 자유로이 발현하고 부모와 가족 등의 보호 아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도모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제라도 우리 국가와 사회가 아동의 출생과 양육 정책에 있어서 '보호'라는 소극적 조치와 아동시설 수용 중심의 체계가 아니라 원가정에서 친생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회적 기본권리와 공적 의무로서 뒷받침하고 보장해야 합니다.

모든 아동이 보편적으로 출생을 축복받으며 원가정에서 친생부모에 의해 애착과 정체성을 형성하며 양육 받을 권리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존중받는 아동 인권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로운 22대 국회가 개원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가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보호출산제를 폐지하고, 여성(모성)과 아동의 권리가 포괄적이고 보편적으로 보장된 대안 입법에 보다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제도와 법안을 설계하고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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