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자녀 지분가치 16%↑…이래도 상속세 내리자고?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가치 155조 돌파
자녀 세대 지분 가치 증가 속도 더 빨라
상속세 최고세율 내리면 초부자만 혜택
부의 양극화는 사회갈등·자본시장 위협
재벌 기업 총수 일가의 지분가치가 155조 원을 넘어섰다. 1년 만에 14%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자녀 세대로만 한정하면 증가율은 16%에 육박한다. 재벌 총수 일가로 부가 쏠리고 부의 대물림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는 19일 ‘대기업집단 오너일가 지분가치 승계 현황, 2022년 12월 말~2024년 05월 말’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2024년 지정 대기업집단 88곳 중 동일인(총수)이 있는 7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5월 말 현재 오너일가 지분가치는 155조659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2년 말 136조 8369억 원과 비교해 18조 8221억 원(13.8%) 증가한 수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자녀 세대 지분가치가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지분가치가 모두 증가했으나 자녀 세대의 지분가치 비중이 1%포인트 가까이 늘어 지분 상속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부모 세대의 지분가치는 81조 5149억 원으로 2022년 말(72조 8821억 원) 대비 11.8%(8조 6328억 원) 증가했다. 이에 비해 자녀 세대는 2022년 말 63조 9548억 원에서 74조 1441억 원으로 15.9%(10조 1893억 원) 증가했다.
그 결과 부모 세대 지분가치 비중이 2022년 말 53.3%에서 현재 52.4%로 0.9%포인트 줄어든 반면, 자녀 세대의 비중은 46.7%에서 47.6%로 늘었다. 자녀 세대의 지분가치 비중의 그룹별 평균도 2022년 말 40.9%에서 42.9%로 2.0%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 총수 일가 중 자녀 세대 지분가치 비중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곳은 ‘영원’이다. 지난 2022년 말 자녀 세대 지분가치 비중이 0.7%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8.5%포인트 증가하며 29.1%까지 확대됐다. 영원무역 창업자인 성기학 회장에서 차녀인 성래은 부회장으로 ‘2세 승계’ 작업이 진행된 결과로 해석된다. 성 회장은 지난해 3월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 법인 와이엠에스에이(YMSA) 주식 중 50.1%를 성 부회장에게 증여한 바 있다. YMSA는 그룹 지주사인 영원무역홀딩스 지분 29.09%를 보유한 비상장사다.
‘3세 승계’에 속도를 올리는 한솔그룹도 자녀 세대 지분가치 비중이 25%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한솔그룹은 지난 2022년 말 자녀 세대 지분가치 비중이 19.7%였으나 현재 45.1%에 달한다.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회장은 조동혁 회장의 장녀로 지난 2020년 한솔케미칼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조 부회장 지분가치 비중은 2022년 말 9.5%에서 35.4%까지 높아졌다.
효성그룹은 2022년 말 77.9%였던 자녀 세대 비중이 92.7%로 14.8%포인트 늘어났다. 고 조석래 명예회장 보유 지분 상속이 진행 중인 효성은 7월 1일부터 기존 지주사인 효성과 신설 지주사 HS효성 등 2개 지주사 체제로 재편된다. 이에 따라 조현준 효성 회장이 기존 지주회사인 효성과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을 맡고, 조현상 부회장은 신설 지주인 HS효성과 효성첨단소재를 지배한다. 조 회장의 지분가치 비중은 2022년 말 34.7%에서 현재 51.0%로 증가했다.
반면 상속세 납부 등 여러 이유로 자녀 세대 지분가치 비중이 줄어든 기업도 있다. 넥슨과 엠디엠, 삼천리, 현대해상화재보험, 한국앤컴퍼니그룹 등이다. 넥슨은 2022년 말 68.2%였던 자녀 세대 지분가치 비중이 57.4%로 10.8%포인트 감소했는데 이는 고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두 딸인 김정민, 김정윤 씨가 넥슨 지주사 NXC 지분을 상속세로 납부한 결과라고 CEO스코어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재벌 기업 총수 일가로 부가 집중되는 동시에 부의 대물림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에 역행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과 정부, 국민의힘은 최고 상속세율을 현행 50%에서 30%로 낮추고 주식을 상속할 때 최대 주주 주식평가액에 적용하는 20% 할증도 없애자고 한다. 한마디로 초부자인 재벌 기업 총수 일가의 부의 대물림을 돕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한겨레가 1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상속세 최고세율 적용 대상자는 2022년 기준 955명 불과하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30%로 내렸을 때 그 혜택은 과표 500억 원을 초과하는 20명에 집중된다. 이들이 납부한 상속세 전체 금액은 약 14조 7000억 원으로 전체 상속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7%에 육박한다. 결국 상속세 최고세율을 내리면 이들 재벌 총수 일가가 부를 대물림할 때 그 부담을 확 덜어주게 된다. 재벌만을 위한 상속세 개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상속세 과세 방식이 합리적이지 않고 비효율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래서 꼭 개편해야 한다면 부의 쏠림과 부의 대물림을 막는다는 본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상속세를 폐지한 국가들도 자본이득세와 재산세 등을 통해 부의 쏠림과 부의 대물림을 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