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외교전 본격화, 방황하는 '윤 정부'
총선 국민 심판에도 정신 못 차린 가치·진영 외교
가치 공유? 일본 노림수에 뒤통수 맞은 한일관계
'분단국 리스크' 벗어나야 진정한 국익 실현 가능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는 11월 15일 미 대선일이 다가오면서 향후 국제질서의 향방을 놓고 국제사회에서는 활발한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 대선을 딱 1년 앞둔 작년 11월 15일, 시진핑 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미·중 정상회담이 갖고 ‘전술적 데탕트’에 합의하면서 각국도 속속 외교전에 뛰어들었다. 금년 4월 10일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5월 16일에는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중·러 정상회담을 가졌다. 5월 26~27일에는 기시다 총리와 리창 정무원 총리가 방한해 제9차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정상회담과 함께 외교장관회담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작년 11월 26일 부산에서 4년 3개월 만에 한·중·일 3국 및 양자 외교회담이 열렸고 금년 1월 12일 미·일, 2월 21~22일 한·일 및 한·미·일, 4월 26일 미·중, 5월 13일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잇달아 개최됐다. 한국 정부도 전쟁 중인 러시아를 제외하고 동북아 외교전에 참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릇된 신냉전 인식 아래 이념외교, 진영외교에 발목이 잡혀있는 실정이다.
가치 공유 국가 일본의 뒤통수 치기
윤석열 정부가 최대 업적으로 내세운 한·일 관계의 정상화는 일본의 뒤통수 치기로 곤경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노림수는 이중적이다. 하나는 중국의 굴기와 일본의 국력 쇠퇴를 맞이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이탈을 막아 중국을 견제하려는 이른바 ‘편승을 통한 균형’ 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탈바꿈함으로써 아시아 외교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전략은 아베, 스가로 이어지는 자민당 내 강경파뿐 아니라 기시다로 대표되는 온건파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전자는 역대 자민당 정부가 추진해 온 대중국 견제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아베 1기 내각에서 내걸었던 ‘자유와 번영의 호(弧)’(2006)와 아베 2기 내각에서 본격 추진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2013)이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중국의 굴기에 맞서기 위해 미국을 인·태 지역에 묶어두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의도는 2017년 미국이 인·태 전략을 자신의 지역 전략으로 채택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후자는 한때 아시아 대표주자였던 일본의 외교력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일본은 1968~2010년 사이에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었고 이 지위를 이용해 G-7 정상회의에 아시아 대표주자로 참석했다. 하지만 이제 일본의 종합경제력이 2010년 중국에 역전당했을 뿐만 아니라 1인당 GDP에서 조만간 한국에도 추월당할 판이다. 그렇기에 지난 4·10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적 역할 확대를 통해 보통국가의 완성을 사실상 선언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 꿈을 노골화했던 것이다. ☞ '팍스 아메리닛폰'과 윤석열의 외교 무개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22일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4.22)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의 성과로서 △최초의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한·미동맹의 ‘핵 기반 동맹’ 격상, △한·일 관계 정상화와 새로운 단계로의 한·미·일 협력 강화 등 세 가지를 꼽았다. 한·미동맹과 관련된 두 번째를 빼면, 첫째와 셋째는 일본과 관련된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일본의 이중 노림수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금년 들어서도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왜곡한 교과서들이 일본 정부 검정을 통과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외교청서’가 발간됐다.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줄곧 총리 명의로 공물을 봉납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독도를 방문했을 때 적반하장격으로 일본 정부는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까지 했다. 최근에는 ‘가치 공유’를 했다는 일본 정부가 자유시장주의 국제질서에 반해 한국 민간기업인 라인야후를 강탈하려는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고 있다. ☞ 윤석열 대일본 외교파탄…'매국'으로 귀결된 '한일 우호'
정상화까지는 요원한 한·중 관계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한·중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양국 수교 이후 줄곧 이어지던 대중 무역수지가 이 정부가 시작되면서 적자로 전환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 이후 줄곧 사용해 왔던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다가 작년 11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 때야 처음으로 사용해 빈축을 사 왔다. 정재호 주중 대사는 중국 정부의 관계자와 의미 있는 실질적인 접촉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는 냉랭한 중·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신임 주중 일본대사가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등을 폭넓게 만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 가운데, 5월 13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왕이 외교부장 겸 당 중앙정치국원의 초청으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공식적으로는 5월 말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경색된 양국 간 신뢰를 증진하고 협력의 계기를 이어가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중국의 속내는 작년 1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전술적 데탕트’에 합의한 이후 한국, 일본 등과 관계 회복에 나서면서 윤석열 정부의 의중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양국 간에 근본이해의 충돌은 없다”면서 한·중 관계에서 미국의 ‘간섭 배제’를 촉구하였다. 또한 한·중 경제무역의 규모가 크고 상호보완성이 강하므로 양국이 장기적인 파트너가 되어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해 세계 자유무역 체계를 지키고,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흐름에 협력하자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조태열 장관은 한·중 관계와 한·미 관계가 ‘제로섬’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면서 7차례나 ‘협력’을 언급하며 양국 관계의 발전 의지를 밝히는 데 그쳤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문제는 중국의 최대 현안이자 미국의 대중 정책의 핵심이다. 지난 4월 26일에 열렸던 미·중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왕이 부장은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중국의 발전권을 제약한다면서 탈위험화(de-risking)를 내세운 미국 주도의 대중 수출통제 조치를 비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측은 이번 한·중 회담에서 미국의 반도체 정책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루어질지 예의주시했다. 5월 17일 조태열 장관이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한·중 회담의 결과를 설명한 것은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태열 장관은 이번 한·중 회담이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양국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교환하는 자리였다고 밝히면서 “난관이 있더라도 이견이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하는 가운데 협력의 모멘텀을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기대했던 한한·중 관계의 분위기 반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은 동북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이하고 수동적인 한·러 관계 인식
윤석열 정부가 주변국 외교를 활성화하는 가운데서도 대러외교만큼은 중단되어 있다. 한·러 관계와 관련해 지난 4월 27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러-우 전쟁이 끝나면 복원이 가능하다는 낙관 아닌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본인이 러시아 대사와 양자 외교를 담당하는 외교부 1차관을 지낸 경력이 있고, 현재 윤석열 정부의 안보 책임자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그의 발언에 무게가 실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국제정세 인식은 안이할 뿐만 아니라 미국 중심의 친서방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피동적이다.
장호진 실장은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한·러 관계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전쟁이 끝나면 양국 관계가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한국이 우려하는 핵심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하지 않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이른바 ‘레드라인’을 지키며 양국이 관계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러시아는 주변 4국 가운데 역사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리스크가 적은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 시절에 시작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보수-진보를 넘어 30년간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한·러 우호 관계는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파탄 나고 말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외생변수가 작용했다고는 하나, 일본이 시베리아 가스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서유럽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대러외교는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장 실장은 외교부 1차관 시절에 작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한·러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으리라고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그로 인해 한·러 관계가 최악의 위기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쇼이구 국방장관의 방북에 이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을 갖고 양측 간에 군사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작년은 물론 이번 그의 한·러 관계 전망은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한·러 관계의 복원과 관련해 △국제정세 가속화 등 심각한 외생변수가 없을 것 △우크라이나전 이전으로의 정상화 두 가지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대로 한다면, 우리의 대러외교는 끊임없이 외생변수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또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물론 크림반도까지의 완전 회복을 목표로 하는 ‘젤렌스키 평화공식’이 유지되는 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정상화는 요원한 일이다. 결국 한국 외교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겠다는 외교 무능의 자기 고백일 뿐이다.
남북관계 관리 못하면 우리 외교전은 필패
윤석열 정부의 잇따른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련국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일본은 윤석열 정부의 굴종적인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외교력 회복과 국익 추구, 한반도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한·미·일 3자 안보협의회 등 제3국을 겨냥한 안보협력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미국이 조성한 군사적 긴장과 대북 제재·압박을 풀기 위해 실질적인 조처를 하라고 촉구하면서 북한을 비롯한 당사국들이 만나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것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 러·중 정상, 한반도와 동북아 위협의 원천은 미국
더 나아가 중·러 양 정상은 두만강 하류에서 중국 선박의 항해 문제에 대해 북한과 함께 건설적인 의견 교환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중국이 오랫동안 동해 쪽 출해구(出海口)를 확보하고자 했으나 북한과 러시아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에 중국이 출해구를 확보하게 되면, 동북 3성의 물류난이 해소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극해 항로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러시아가 합의해 주었기 때문에 북한은 더욱 거센 압박에 내몰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한민족 전체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를 북한과 협의할 어떠한 대화 창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
북한의 반응도 매우 비판적이다. 5.16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조태열 장관이 왕이에게 한반도 평화, 안정과 북한 비핵화를 위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하자, 5월 16일 박명호 외무성 중국 담당 부상은 “한국 외교관들이 20세기 케케묵은 정객들의 외교 방식인 청탁과 구걸 외교로 아무리 그 누구에게 건설적 역할을 주문한다고 해도 우리는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주권적 권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규범이 부재한 상태에서 대화 창구마저 없는 윤석열 정부에게는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외교의 근본적인 문제는 국제정세의 신냉전 인식과 진영외교, 이념외교적 접근에 있다. 남북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분단국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경우, 우리 외교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주변국의 외교전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기존 외교 노선의 성찰과 전환 없이 각국의 움직임에 수동적 대응하는 형태로 외교전에 뛰어드는 바람에 오히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윤석열 외교는 4.10 총선에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기존 외교 노선을 지속할 국내의 정치적 동력을 크게 상실하였다. 앞으로 닥쳐올 외교 폭풍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외교안보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