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후계 공백·경제난 등 이란발 중동불안 뇌관
대통령 등 보수파 고위관료 빈자리 메우기 곤란
제재로 인한 경제난, 보수파 분열이 불안 가중
중동 정세 요동 촉발할 수도 있는 이란 내정불안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 이후의 이란과, 이란 내의 변화가 야기할지도 모를 중동정세 변동 가능성에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란 내부 일각에서 이번 사고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개입했다는 근거없는 ‘음모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전직 외교장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가 미국 책임론을 꺼내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낡은 미국제 헬리콥터 부품 수입을 미국이 제재조치로 막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며 책임의 일단을 미국도 져야 한다고 비난한 것이었다. 이는 오히려 이란 당국이 그런 음모설이 근거없다고 보거나,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 문제를 그런 쪽으로 끌어가고 싶어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고 봐야 한다. 이란 당국도 헬기 추락을 기술적 고장 탓으로 단정했다.
사고 헬기는 1960년대에 벨 헬리콥터가 제작해 1970년대 초 베트남전쟁 때 많이 사용된 기종이다.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전 ‘친미국가’였던 이란에서도 도입해서 썼으나 그 ‘이슬람 혁명’ 뒤 이란이 ‘반미국가’가 되고 제재를 받으면서 부품 수입이 불가능했다.
하메네이 체제 안정론 “별다른 변화 없을 것”
이번 사고 뒤의 이란 국내 사정과 관련해, 라이시 대통령 사망에도 불구하고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군 통수권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정의 모든 주요정책 결정권을 지닌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건재한 상황에서 당장 체제상의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한편에 있다.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 이후의 이란 신정체제에서 최고지도자는 선출직이 아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할 수 없는 하메네이 절대권력 아래서 그가 이끌어 온 관료기구와 혁명수비대 등의 체제 지반이 나름 탄탄하게 다져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현체제에 반대하는 개혁파가 일거에 세력을 확장해 보수강경파와 정권을 다툴만한 도전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체제 불안정 요인들-후계 공백과 경제난
그러나 사고 헬기에 탑승했던 대통령과 외교부장관 등 이란 보수강경파 정권을 이끌어 온 핵심 고위관료들 다수가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공백을 메우기가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 2022년 여성의 히잡 착용 강제에 반발하는 시위를 계기로 전국적인 대규모 반체제 시위가 장기간 벌어진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란 국민들 중 다수가 현체제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도 위험 요소다.
장기간의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인한 경제난과 40%에 이르는 인플레에 지친 이란 국민들은 변화를 바라고 있다. 2021년에 집권한 라이시 체제 3년간 이란 통화 리알의 미국 달러 대비 시세는 절반으로 떨어졌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아가고 있다. 경제난과 억압에 지친 다수의 국민들에게 라이시 체제는 인기가 없었다.
2022년에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친 히잡 강요 반대시위를 계기로 터져나온 반체제 시위가 수천 명이 체포되고 다수가 사망(사형 집행 포함)하는 상황에서도 장기간 지속된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헬기 사고가 난 19일 밤 이란의 해외 반체제 매체들이 사고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축하하는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보수파 분열 속 불안 안은 하메네이 후계 문제
게다가 라이시(63) 대통령은 84세의 하메네이 뒤를 이을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돼 있었기 때문에, 그 빈 자리를 누구로 채울 것인가를 두고 집권세력 내에 분열과 혼란이 일 경우 체제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제1 부통령 대행체제 하에서 앞으로 50일 안에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공백이 된 최고지도자 후계자를 물색해 매끄럽게 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하메네이-라이시 체제가 이끌어 온 보수강경파 내부가 여러 정파로 분열돼 있고 그들간의 대립과 반목이 심각할 정도라는 분석도 있다.
하메네이가 이끌어 온 이란의 보수 집권세력은 2021년 대통령선거 때 이란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온건파나 개혁파 정치인들을 아예 후보 등록도 할 수 없게 해 놓고 라이시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50일도 남지 않은 기간에 이제 다시 그런 유사한 과정을 밟아가기가 쉽지 않고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럴수록 후계자 계승 과정은 위험성이 커질 것이다.
하메네이의 차남인 모지타바 하메네이도 최고지도자 후계 물망에 올라 있어, 그를 후계자 공백을 메울 대체인물로 세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슬람 혁명’을 표방한 하메네이 체제가 권력을 세습할 경우 집권세력 안팎으로부터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들이 있다.
이란 내정 불안, 중동 정세 요동 촉발할 수도
이란 내정이 불안정해질 경우 중동 지역정세에 새로운 리스크(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보수강경파 일부에서 권력승계를 둘러싼 내분(‘내우’)이 일어날 경우 그들이 그것을 외부 문제(‘외환’) 탓으로 돌려 자신들 내부문제를 호도하고 그 책임을 외부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 보수강경파가 헬기 사고의 원인을 그들이 적대해 온 미국이나 이스라엘 쪽으로 돌리면서 도발할 경우 중동 정세가 요동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레바논 등 온건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을 기획해 왔고, 11월의 대선 때문에라도 확전으로 이어질 이란-이스라엘의 충돌을 바라지 않을 미국 바이든 정부와 이스라엘이 이란 대통령을 사고사로 위장해 ‘암살’해서 얻을 이익이 위험이나 손실에 비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런 식의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다.
만일 정치적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 네타냐후 이 연합세력인 극우정파들의 요구에 따라 문제를 외부(외환) 탓으로 돌리면서 이란을 공격함으로써 정권 유지를 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이란의 보수강경파 일부가 비슷한 정치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책임을 외부 탓으로 돌리면서 이스라엘에 맞대응을 하고 나설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리고 두 나라 강경파들이 각자의 정치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서로 내통하면서 ‘외환’을 적당한 수준으로 조성하고 관리하자고 담합할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한국 보수 집권세력의 ‘북풍’ 공작처럼 서로 살려주기식 ‘적대적 공생’을 꾀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이란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는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