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2기 '조용한 혁명'으로 7공화국 열어야
[대담] 김영호 이사장-임진철 마을공화국 의장
"촛불 2기, 근본개혁으로 87년-98년 체제 극복"
권력구조 개편 넘는 실질적 민주화 위한 개헌 돼야
대의제-직접민주, 중앙-지역 '두발 민주주의' 절실
'한국 기업-소비자 동맹' 위한 상법 개정 등 필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22대 총선 결과는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넘어서 한국 사회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새로운 과제와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당장의 정치사회적 과제를 넘어서 촛불민주주의혁명과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제7공화국, 이를 위한 개헌에 대한 논의도 다양한 경로로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범야권에서는 대통령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4년 중임제와 대통령거부권 제한, 5·18 헌법 수록 등을 위한 개헌안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서서 실질적 민주화를 이루는 선진국형 민주주의체제로서의 제7공화국 개막을 제시하는 개헌 주장도 커지고 있다.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전 산업자원장관·유한대 총장)은 그동안 한국의 촛불민주주의 혁명이 세계사적인 큰 의의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어버렸다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서 촛불혁명을 되살려내고 완수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직접민주주의 개헌운동과 자치분권운동을 벌이고 있고 지난해 출간한 <담대한 혁신사회플랜>에서 '마을로 간 촛불민주주의혁명'의 과제를 제시한 임진철 직접민주마을자치전국민회마을공화국 상임의장이 김 이사장에게 새로운 정치지형에서 촛불혁명의 올바른 길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대담을 가졌다.
이 대담에서 김영호 이사장은 "이번의 국민분노선거가 어떤 의미에서는 촛불 2기 혁명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시민사회는 새로운 만민공동회를, 22대 국회는 ‘조용한 혁명을 위한 입법활동’에 전력집중해주기를 기대한다"면서 "이제 한국사회에 요구되는 각 분야의 개혁을 전부 다 연결시키는 총체적인 '조용한 혁명'을 통해 표류해 온 촛불 시민혁명의 2기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담 기록은 지난 5월 초 김 이사장의 성남 분당구 연구실에서의 대담과 추가 서면 답변이 종합된 것이다.
'진보 재구성'의 길 찾아야
사회(이명재 민들레 에디터): 이번 총선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여당의 참패이지만 야당의 승리라고 볼 수 있는지, 또 22대 국회에 어떤 과제를 제기한다고 보는가?
김영호: 나는 이번 선거는 국민적 분노의 선거였다고 생각한다. 불과 2년 전 집권준비도 안 된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결과로 탄생했듯이 이번에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무능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결과로 야당에 표를 몰아 주었을 뿐이다. 그 증거로 민주당 지지율이 대단히 낮은 사실을 들 수 있다. 집권당과 거의 같거나 오히려 낮은 편이다. 사실 선거기간 중에 정책의 쟁점화 혹은 정책대결은 사실상 없었다는 사실도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소위 민주진보라고 불리우는 세력은 너무 기득권화되었고 혁신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도덕적 타락과 범법의 홍수현상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다만 국민은 야당에 대하여 이미 정권교체라는 징벌을 내린 후이고 또 지난 지자체 보궐선거에서 분노를 표출한 후라 이번에는 분노가 일차적으로 집권 보수당으로 집중되었을 뿐이다.
야당도 국가정책의 이슈화보다 '이채양명주'(이태원 채상병 양평땅문제 명품빽 주식농단 등)를 들고나와 국민적 분노에 불을 지피는 선거전략을 썼다. 분노전략을 가장 잘 쓴 쪽은 조국신당이었다. 말하자면 야당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정부여당이 워낙 잘못하여 이긴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착각하면 길을 잃는다. 정치적 분노에 불을 지른것이 야당에 대한 도덕적 법적 면피 내지 면죄는 결코 아니다. 나는 국민적 분노의 마그마가 일차적으로 정부와 집권여당이라는 일차적 고리를 향해 분출하였지만 야당에 대해서도 내재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선거결과에 자만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느끼고 진보재구성의 길을 찾아야 한다. 구한말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그리고 동학세력이 분열 대립을 일삼았는데, 지금 보면 식민지화의 위기 앞에 연대 협동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통탄스러운가. 지금 큰 위기 앞에 타협하지 못하면 큰일 난다는 사정을 알면 알수록 대타협 협치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가 보수 나름대로 재구성되야 되고 진보가 진보 나름대로 재구성되어 협치를 해야 한다는 명령이 주어졌다. 대통령 야당 대표간의 협치회담은 희망적이다 .그 확대강화를 기대하고 싶다. 국민적 분노는 재출발하라는 국민적 명령이다.
임진철: 대부분 사람들이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 소멸 등의 문제가 이번 총선에서 거론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인구대응부를 만들어야 된다, 이런 정도에 그쳤을 뿐 총선 공론장에서 거의 얘기가 안 됐다. 어찌 됐든 윤석열 정부를 끌어내려야 된다는 데 너무 화력을 집중하다 보니까 정책 공약이나 분들 담론은 거의 얘기가 안 되는 그런 상황으로 끝났다.
사회: 정책이 실종되고 장기적인 과제에 대한 의제 제시가 안 됐다 하는 점들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번 선거가 한국 사회의 거대한 퇴행과 폭주 권력을 어떻게 저지하느냐가 필사적인 과제로 제기됐던 상황에서 불가피했다고 보는데.
김영호: 선거 책략적인 측면, 민생 측면, 그리고 좀 대국적인 국가 전략의 측면 세 가지 차원이 있다. 그중에서 첫 번째 정략적 측면이 메인 이슈가 됐고, 민생 문제가 약간 가미가 됐지만 국가적인 큰 전략과 같은 기본 문제는 거의 제기가 안 됐다.
세 가지 차원 가운데서 첫째 차원에만 머물러서 시종하기에는 한국이 놓인 현실이 너무나 위중하다. 권력의 퇴행과 폭주를 저지히는것이 중요한 것은 시실이지만 국가위기대응의 핵심과제를 이성적으로 잡느냐 감성적으로 잡느냐가 중요한데 이번선거에서는 감성적으로 시종한 것도 사실이다. 큰 위기를 외면하고 정략적인 문제만 얘기하는 차원을 넘어가야 된다. 더구나 선거가 끝난 이 마당에서는 그 점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우리가 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은 미중 대립 와중에 길을 잃고 유라시아대륙 전쟁 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대만해협 위기 남북한 긴장의 연동국면에서 길을 잃고 있다. 기후위기 와중에 길을 잃고, 공급망 재편 과정에 길을 잃고, AI기술혁명 와중에 길을 잃은 국가이다.
여기에서 정치는 포퓰리즘에 갇혀 있고 경제는 재벌체제와 금융자본주의, 세계 최고의 가계부채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 국가부채증가율 그리고 중국산업의 대공세 앞에 산업붕괴의 절벽 앞에 서있다. 안보는 미국 군산복합체제와 북핵에 갇혀 있고, 교육은 일류대 중심의 입시경쟁체제에 갇혀 있고, 복지는 세계최고의 자살율률 세계최저의 출생율에 갇혀 있다. 그리고 국토는 세계최고의 수도권집중율에 갇혀 있고, 관료는 세계최대의 복지부동 태세와 규제제일주의에 안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산층은 소멸해 가고 있고, 청년은 과거가 미래를 식민지배하는 희망 없는 절벽 앞에서 5포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양승훈 교수의 <울산 디스토피아>를 읽었는데 산업중심 울산의 붕괴실태가 충격적이었다. 문제는 울산이 한국산업 전체의 디스토피아의 상징이라는 데 있다. 사방이 온통절벽이다. 여야 정쟁은 사방절벽 위에서 소경들이 벌이는 잔치 같다. 여기서 일련의 개혁연쇄로 출구를 열어나가야 할 것 아닌가. 정말 정략싸움 할 시간이 없다. 큰 국가전략의 차원에서 민생문제 차원으로, 다시 정략 차원으로 하산만 하지 말고 꺼꾸로 위로 험산준령을 기어올라야 한다. 구한말 갑오경장 광무개혁은 너무 늦은 개혁이었다. 정말 지금을 놓치면 너무 늦다. 10년만 일찍 여러 세력이 합심하여 갑오경장이 이루어졌더라면, 3.1운동에서 이루어진 거족적 통합이 구한말에 일어났더라면 하는 회한으로 말하는 것이다.
사회: 그것에 이 대담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선거전 때는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가 끝난 시점에서는 미처 제기하지 못했던 장기적이고 국가적인 비전과 전략에 대해서 논의가 돼야 될 텐데 그런 논의가 너무나 아직 미흡하다. 민들레를 포함해 언론들이 반성해야 될 점이다.
임진철: 촛불혁명 때도 비슷했다. 2017년 4월에 140개 단체가 모여서 촛불혁명 대헌장 제정 범국민협의회를 구성했다. 촛불혁명은 일종의 시민권력이기 때문에 촛불혁명이라는 시민권력을 구조화시키고 대의제 권력과 협치 구조를 만들어서 촛불혁명의 대의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 정당들이 거부했고, 유야무야 끝나버렸다. 그 후로 촛불 혁명이 길을 잃었다라는 비판이 나왔고, 다급한 목전의 문제 해결에만 그쳤다.
그래서 이번도 마찬가지로 야당이 180석 이상을 얻었지만 그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범국민운동본부를 구성해서 시민사회가 직접민주주의 시민권력을 만들어가면서 정치권을 압박하고 추동하는 방식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행방불명 된 촛불혁명
김영호: 촛불 혁명이 어디로 갔느냐? 지금 어쩌다가 가끔 촛불 혁명이 나오면은 ‘그래 그런 게 있었지’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촛불 혁명의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생각한다. 지식인 사회에서 촛불혁명의 개념을 백낙청 교수와 최장집 교수가 규정한 것이 주류처럼 됐는데 그분들은 촛불 혁명을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언이라는 차원에서만 좁게 해석했다.그런 해석은 박근혜정부 탄핵으로 촛불혁명이 끝났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것은 촛불혁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아니었던가. 촛불혁명의 결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라고 했는데 촛불혁명을 이용만 했지 전혀 구현하지 못했다. 부동산정책을 망쳐 청년을 절망속에, 그리고 국가 재정을 파탄 속에 몰아넣어 국가부채를 약 400조나 추가증가시켰다. 지식인 사회와 정치계 양측에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철 의장이 쓴 책에서 촛불혁명을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의의를 설명한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촛불혁명을 마을 운동, 마을 공화국으로 연결시킨 점이 조금 너무 먼 길을 제시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도 들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의외로 핵심을 찔렀다고 본다. 결국 노자 이래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비전이 정다산의 전론(田論)으로 발전했고 간디로 가고, <자본론> 이후의 칼 맑스로 갔고, 그것이 임의장의 '마을로 간 촛불 혁명'이라는 비전 속에 크게 되살아난 것 같다.
임진철: 촛불혁명이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 점을 정다산부터 시작해서 동학혁명, 3.1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게 감명 깊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우리 지성사회가 이해하는 게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호: 나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진보 계열에서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역사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NL-PD로 논의되고 결국은 모택동주의나 김일성주의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학의 개벽사관, 생명평화론을 중심에 놓고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동학농민혁명의 배경이 됐을 뿐만 아니라 3.1운동의 원천, 즉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라는 외적 요인보다 더 본질적 내적 요인이었다고 본다. 외적 요인이 세계에 던져졌을 때, 다른 나라는 그것이 일차대전 전승국가의 패전국가 식민지분할 전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외적 요인을 활용하려는 내적 요인이 컸기 때문에 먼저 움직였다.
생명평화론, 혹은 개벽사상이 3.1운동을 일으킨 내적 요인이고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결합해서 3.1운동이 일어났고 그리고 그것이 중국의 5.4운동으로 파급되고, 다시 그것이 필리핀 베트남을 거쳐서 인도 이집트의 독립운동까지 파급되었다. 독립은 제국주의 국가가 은혜롭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당연히 획득해야 할 천리(天理)요 권리라는 비전에서 비폭력 운동방식까지 세계로 수출되었다. 20세기 세계평화의 핵심은 식민지해방 문제였고, 그런 점에서 나는 20세기의 세계평화운동의 원점은 파리강화회의가 아니라 3.1운동이었다고 본다.
3.1운동이 6.10 만세운동으로 그것이 4.19로 연결되고 4.19는 서구의 6.8혁명으로 파급되고 그 모태에서 다시 5·18로, 6월항쟁으로, 그래서 한국의 87년체제를 만들어 동아시아 민주화의 물결로 이어졌다. 그것이 다시 촛불혁명까지 진화하여 세계사의 의회민주주의에 직접민주주의를 통합시키는 비전을 던졌다. 3.1운동 이래의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의 혁명의 지속적 내지 계기적 재생산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성장의 한류에 이은 민주주의의 한류이며 다시 문화적 한류로 이어지는 희망의 강물이다. 희망의 강물은 크게 살리고 죽음의 강물의 물줄기를 돌려내야 한다.
촛불혁명은 단발성 아닌 역사적 연속성 갖는 운동
임진철: 구한말에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만 있었던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당시에 우리 민족 내부에서 생성발전해온 개벽적 근대를 추진해온 개벽파가 있었다. 그런데 개벽파가 워낙 동학혁명으로 인하여 처절하게 깨지면서 거의 멸절되다시피 하는 바람에 수면 위로 등장하지 못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 오늘날 생명평화 사상으로 다시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역사적인 운동들의 맥을 이어나가며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촛불혁명운동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나온 단발적인 운동이 아니라 역사적인 연속성을 갖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김영호: 촛불혁명을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보자. 87년 체제는 대통령직선과 의회민주주의, 여기에 재벌경제의 타협체제였다.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도달점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여기에 다시 촛불혁명의 직접민주주의가 가미되면 세계정상급의 '(직접-대의) 두발 민주주의'가 된다.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에서 세계의 3050클럽(1인당소득 3만$ 인구 5천만 이상 국가들) 중에서 한국을 1위로 꼽았는데, 2024년에는 미끄러져서 47위로 평가되었다 .그렇게 미끄러진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재벌과의 타협체제였기 때문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아담 세보르스키는 민주화한 나라에서 경제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을 때, 민주주의가 공고해진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 견해를 보완이라도 해 주는 듯이 202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크리디아 골든 교수가 <조용한 혁명>이란 역저를 내었다. 이 책에서 골든 교수는 1970년대 미국의 전반적인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일과 삶의 균형이 개선되었으며, 여성인권의 큰 진전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요란한 유혈혁명이 아니라는 뜻에서 조용한 혁명이란 개념을 사용했다.
나는 이 개념을 일반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영국도 전후 노동당 집권하에 복지국가로 진입하였고, 북유럽국가들도 거의 시회민주주의로 이행하였다. 일본도 미군정하에 재벌개혁이 단행되고 전후 민주주의 성장 속에 노동조건의 진전이 착실하게 이루어졌다. 아베 정권하에서 후생연금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연금운용의 정치적 의혹의 안개를 걷어내고 스튜어드쉽(Stewardship)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했다. 그 결과 장기투자자본의 대량유입이 이루어졌다.
일본 보수는 한국의 보수가 못한 것을 해냈다. 그런데 한국은 87년 체제 이후는 물론이고 촛불혁명 이후 이러한 조용한 혁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벌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의료개혁 연금개혁 의료개혁 정부개혁 에너지전환 등의 '조용한 혁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로 아담 세보르스키의 지적처럼 되어버린 것이 민주주의의 후퇴 정부, 즉 윤석열 정부의 탄생이다. 국민분노 선거 이후 87년 체제를 뛰어넘을 '조용한 혁명' 시대를 열어야 한다.
임진철: 전적으로 동감한다. 87년 체제가 세계의 3050클럽에서는 세계 민주주의 국가 1순위까지 갔다가 지금 47위로 전락했는데, 그 당시에는 매우 진보적인 체제였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헬조선 신양반 사회'를 만들어내는 구체제로 변질됐다. 생명력을 소진하여 영혼 없는 산송장 같은 ‘좀비민주주의체제'로까지 갔다고 규정하고 싶다.
그 좀비민주주의체제 증후군이 87년 체제의 기득권인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 체제, 팬덤 정치, 재벌과 언론들의 야합에 의한 선거의 정치경마장화다. 이런 상황이 몰아치면 이로 인해 대중들은 정책공약을 꼼꼼히 살펴볼 겨를이 없이 진영정치의 동원세력 아니면 구경꾼 민주주의대중이 되어버린다. 제대로 된 국가비전이나 정책공약이 나오지 않은 채 경마장 몰이 하듯이 진영간 패싸움하듯이 진행된 이번 4.10 총선이야말로 좀비민주주의정치의 깊은 증상을 드러냈다고 볼수 있다.
현재 한국의 경제와 문화 부분 등은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체제로 진입하였으나 유독 정치만 급기야 좀비민주주의체제로까지 전락했을까? 그렇게 된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개발도상 중진국체제인 외발민주주의체제, 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통치제제에 발목을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는 통치(統治)만 있고 민치(民治)는 없는 체제이다. 통치는 관치(官治)와 대의정치(代議政治)를 통칭하는 말이고 민치는 직접민주주의 시민정치와 읍면동 풀뿌리 단위에서의 주민자치, 그리고 숙의토론민주주의에 기반한 공론정치(시민의회나 국가공공성토론위원회등을 통한)를 통칭하는 말이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95% 이상이 문맹이고 국가의 영토가 너무 넓어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가 없어 고안된 정치제도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대학진학률이 80%를 넘고 블록체인기술과 디지털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에 국민투표 한 번 하는 데 900억이나 든다 했는데 오늘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불과 2, 3억 원으로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제도를 시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대의정치인들의 직무유기이며 어쩌면 대국민 사기행각에 가깝다.
그러기에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자크 낭시에르는 그의 저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에서 대의민주주의 ‘통치’는 ‘치안행위’에 다름아니고 ‘정치’는 직접민주주의 ‘민치’일 때 진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대의민주주의는 가짜민주주의라고까지 급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호: 87년 체제를 거론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98년 체제 문제이다. 97년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 단기투기자본을 마구 끌어다가 급한 불을 끄다 보니, 그 결과 지금도 한국경제는 단기투기자본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단기투기자본의 상징적인 인물이 조지 소로스였는데, 그가 말레이시아에 입국하려 할 때 당시 마하티르 수상이 아시아 금융위기의 주범이 어떻게 말레이시아에 들어오려 하느냐고 호통을 쳐 입국을 막았다.
그런 그가 한국에 들어오는데 막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이 크게 환영하였다. 그 후 헤지펀드를 비릇한 단기투기자본의 세례 속에 외환위기에서 벗어났으나 단기투기자본의 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당시 우리는 ‘김대중과 마하티르의 악수’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대구라운드를 열어 투기자본 규탄 운동을 했다. 투기자본에 잡힌 한국의 기업경영은 지속가능경영이 아니라 외국투기자본의 비위 맞추기 경영을 하는 형편이 되었다. 한국기업이 외자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사내유보금으로 잠자고 있는 돈이 600조쯤 된다고 한다. 재벌과 국제투기자본의 독점체제 안에서 중소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은 거의 질식상태다.
나는 촛불 2기 정부보다 촛불 2기 시민혁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촛불 2기 혁명은 “조용한 혁명”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앞서 말한 10년 앞서 일어난 만민공동회와 동학농민혁명 10년 앞서 시행한 갑오경장 같은 거다. 사실 이번의 국민분노선거가 어떤 의미에서는 촛불 2기 혁명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시민사회는 새로운 만민공동회를, 22대 국회는 ‘조용한 혁명을 위한 입법활동’에 전력집중해주기를 기대하고 싶다. 촛불혁명의 촛불권리선언에서의 “촛불은 부패와 특권을 만드는 일체의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정당한 항의다” 등과 같은 강령의 실천이기도 하다.
임진철: 그 말씀 들으면서 아래로부터의, 마을로부터의 상향식 민주공화국 건설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마을로부터,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위로부터의 조용한 혁명이 같이 맞물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조용한 혁명은 개발도상 중진국정치체제인 87년체제를 넘어서는 선진국형 정치체제를 만들어가는 데서 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형 정치체제가 지향해야 할 정치시스템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두발민주주의체제이다. 엘리트카르텔 부패가 서식하기 좋은 외발민주주의체제(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 통치체제)에서 국민의 직접민주주의정치로 엘리트카르텔을 통제할 수 있는 직접민주제-대의제 융합의 두발민주주의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을연방민주공화국체제인 스위스모델이나 대의민주주의 중앙집권체제와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체제의 혼합체제인 프랑스모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정치만족도 50점과 정치효능률 50%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 통치체제’를 넘어, 직접민주주의 민치(民治)가 국정의 50%, 그리고 대의민주주의통치가 국정의 50%를 맡는 국정분담운영체계를 통해 정치만족도와 정치효능감 75%대의 선진정치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제대로 된 공화정이다. 제대로 된 공화정이 되려면 첫째로 계급계층간(다당제), 둘째로 제도시스템간(3권분립 시스템), 셋째로는 대의민주주의통치세력(제도권력)과 직접민주주의민치세력(시민권력)간 그리고 넷째로 중앙과 지방간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한국은 다당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계급계층간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1%와 10%의 핵심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양당이 국민전체를 대변한다는 듯이 과다대표하고 있다. 한국의 3권분립시스템이 많이 정착되었다고 볼수 있으나 엘리트카르텔세력이 3권과 재벌 언론의 상층에 포진하여 조직적으로 국민들을 등쳐먹으며 농락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현재 한국은 대의정치와 관치(官治)일변도의 대의민주주의통치권력구조만 존재할 뿐 시민정치와 주민자치, 그리고 공론정치 기반의 직접민주주의민치권력구조가 거의 없어 공화정 또한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더욱더 우려스러운 것은 중앙(수도권)이 지방(지역)을 배제하는 수도권일극 중앙집권체제가 저출산 지역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지금 깨인 한국인들은 현재의 외발민주주의 87년 체제에 대한 불만이 목에 차 있으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우리 안에 갇힌 사자처럼 경로의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대의민주주의 신화에 세뇌되어 대의정치인들의 팬덤정치의 좋은 먹이감이 되어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오너자본주의 졸업해야
김영호: 미국 자본주의는 유럽의 이해관계자자본주의와는 다른 주주자본주의였다. 그런데 수년 전 대표적인 기업가 181명이 비지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스스로 오랜 전통인 주주자본주의를 졸업하고 주주 이외 노동자 소비자 등을 포용한 이해관계자자본주의로 간다고 합의 발표하였다. 다보스포럼은 전세계 기업의 주주자본주의 졸업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해관계자자본주의는 물론 주주자본주의도 아닌 ‘오너자본주의’이다.
얼마 전 재계인사가 노동이사제는 미국의 주주자본주의와는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는데, 미국이 이미 주주자본주의를 졸업하고 노동이사를 포용하는 생산관계자 자본주의로 바뀐 사실도 모르는, 20세기 전반기의 수준이다. 그러니 중대재해처벌법 정도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 재벌 중심의 오너자본주의에서는 회사이익의 대부분을 오너가 가져가 주주환원율이 지난 10년(2013-2022) 평균 세계최저수준인 29%로 중국 32% 선진국 일반 68% 미국 92% 등에 비하여 턱없이 낮다. 주주환원율이 이리 낮으니 한국주식에 돈이 몰리지 않고 부동산 코인에 돈이 몰린다.
오너가 보유주식을 확대하기 위해 오히려 주가하락을 유도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 결과가 글로벌 왕따 코리아 디스카운터이다. 요즘 세계 각국 주식폭등 속에 한국주식 홀로 정체되고 있어 소위 벼락 깡통 신세다. 그래서 정부도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는데 오너의 회사 이익 독점시스템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다. 회사 이익의 오너 독점을 막아 주주환원율만 높여도 한국 주가가 두 배 세 배쯤 오를 것이다. 여기에 연금개혁을 잘하면 ‘조용한 혁명’으로 대박이 터진다.
임진철: 그렇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한국의 정치는 좀비민주주의체제로 전락되었고 경제는 엘리트카르텔 부패체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부패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엘리트카르텔 부패 유형에 대해 설명하기를, 한 국가의 정치권, 사법부, 재벌, 언론 등에 포진한 엘리트들이 조직적으로 뭉쳐서 국민들을 등쳐먹는 행태라고 이야기하면서 한국이 대표적인 국가라고 규정했다.
성남시 대장동 사건에서 보았듯이 김만배라는 일개 신문기자가 어떻게 수천 억을 주무르며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검사로 알려진 곽상도 전 의원의 나이 어린 아들의 퇴직금이 어떻게 50억이나 되는지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국민들의 직접적인 통제력이 없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외발민주주의체제야말로 엘리트카르텔 부패가 서식하기 아주 좋은 체제이다.
이걸 극복할 방법이 외발민주주의체제인 87년 체제 내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해서 국민이 직접 나서서 대의민주주의 통치체제를 감시 견제하고 압박하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23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정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나 근대의 사회계약론자인 루소는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일찍이 설파했다. “대의민주주의 선거제하의 인민은 투표 당일 하루만 주인이고 그 외의 날은 대의정치인의 노예로 살게 된다”라고.
스위스는 보충성의 원리와 연방제 원리를 통해서 아래로부터 읍면동 단위의 꼬뮨과 칸톤(지방정부), 그리고 연방정부라는 3중 연방 체제와 직접민주제와 대의민주제의 협치체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재정분권도 잘 되어 있어 국가예산의 30%를 꼬뮨이 쓰고 칸톤이 40%를, 그리고 연방정부가 30%를 쓴다. 스위스야말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기적의 나라로 여겨진다. 인구가 천 만밖에 안 되니까 그게 가능한 것 아니냐라고 얘기들 한다. 그러면 인구가 우리보다 많은 프랑스는 어떤가? 프랑스는 골머리 앓던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소멸 문제를 2003년도에 읍면동 단위의 꼬뮨을 기초자치단체로 헌법에 못 박으면서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 통치체제와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민치체제 투트랙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이를 극복했다.
한국정치가 87년 6월민주화대항쟁 이후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발민주주의에 기대고 있는 동안 87년체제는 좀비민주주의체제로 전락되었다. 민주주의에 생명력이 약동케 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와 자치분권이다. 직접민주주의와 자치분권시스템이 부재한 87년체제는 좀비민주주의체제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이미 좀비민주주의체제의 늪에 빠진 87년체제로부터 벗어나려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협치하는 양발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장동같은 엘리트카르텔 부패사건은 계속될 것이고 윤석열 검찰독재정권 같은 것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김영호: 한국의 의회민주주의에서 시민사회의 다양성이 배제되어 있고, 정부에서도 관료주의와 규제에 대하여 시민사회의 다이나미즘이 배제되어 있다.그리고 재벌체제에서도 중소기업이 배제되어 있고, 기업오너체제에서도 시티즌십이 배제되어 있다.
세계최고의 자살률, 세계최저의 출생률, 세계최고의 부채율, 세계최대의 규제율, 세계최고의 불평등도, 세계최고의 시민배제와 동전의 양면 관계다. 조용한 혁명에 실패한 값비싼 댓가들이다. 부의 불평등문제는 소득 대비 자산비율을 가리키는 피케티의 베타지수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베타지수가 선진국은 평균 5-6 수준인데, 한국은 위험수준인 7-8 수준이다. 혹자는 9 수준이라 한다.
미국도 부의 불평등도가 높지만 기술혁신에 따른 빅테크기업이 새로 등장하는데, 한국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때의 재벌 그대로이다. 결국 피케티의 지적처럼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는 사회이다. 과거의 금수저가 미래의 금수저가 되고, 과거의 금사다리가 미래의 금사다리가 되는 죽음의 강 물줄기를 당장 돌려놓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난다. 내일이면 너무 늦다.
임진철: 그 말씀에 부연해서 불평등문제와 연동된 저출산초고령화 지역소멸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한국인들은 8.8을 오르내리는 세계최고의 피케티지수(불평등 지수)를 자랑하는 헬조선신양반제사회(토지자산지표상으로는 1:9:90%, 소득지표상으로는 1:19:80%의 나쁜 불평등사회)를 살아내고 있다.
게다가 0.65대의 세계 최고의 출산율과 초고령화율이 함께 닥쳐 북한의 군사적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핵폭탄을 맞은 위기상황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불평등문제와 저출산초고령화 지역소멸 문제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문제라고 본다.
한국사회는 헬조선신양반제사회를 시급히 극복하고 1:39:60%의 자유안정성 공평사회(좋은 불평등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지구 재야생화프로젝트(제레미 리프킨)에 기반한 탈성장 탈중앙 성숙사회인 초록문명생명사회(Eco-dream Society)를 예비하려면, 농산어촌에 대한 특별한 통찰이 필요하고 국가적인 농산어촌 유토피아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저출산 극복이 초미의 국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뾰족한 저출산 극복 해법이 없다고들 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저출산 극복 해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그 근본해법을 뻔히 알면서도 꿀단지와도 같은 수도권 부동산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수도권 일극체제를 탈피할 생각이 없고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을 할 생각이 없기에 그런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대국민 사기를 치는 행위에 가깝다.
생각해보자! 동물들도 경쟁이 치열해지면 새끼를 낳지 않고 생존경쟁에 몰입한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을 몰아넣고 승자독식 무한경쟁을 시키니 모든 육아와 보육단계마다 돈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독박육아를 감당할 수 있는 금은수저 집안 출신 아니고는 어느 젊은이가 결혼하고 애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얼마 전 가임기의 젊은이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기사를 보니 1위는 보육환경이고 2위는 주거안정, 3위는 일자리, 4위는 사교육 부담 없는 세상이었다. 여기서 보육환경이란 공동체육아를 의미하는 것이고 주거안정은 50년 장기임대주택 같은 것일 것이다. 농산어촌 주민기본소득제가 실시된다면 이것이 곧바로 쉽게 가능한 곳이 농산어촌지역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대신하고 로봇이 인간의 팔다리 근육을 대신함으로써 일자리가 없어지는 인공지능로봇 기반 사회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일자리문제는 도시나 농촌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교육 부담 없는 세상은 대학무상교육과 평준화정책을 쓰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 극복의 백미는 농산어촌지역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선상에서 이제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는 발상을 전환하고 각자의 기득권 혁파에 나서며 새로운 혁신과 창조의 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하는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1970년대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민족대이동 물결을 이제는 역류시키는 정책이다. 수도권인구 500여만 명이 농산어촌과 지방도시에 분산되고 1000여만 명의 도농교류인구가 생기도록 하는 '이도향촌(離都向村)'의 민족대이동정책(농산어촌 청년유토피아, 귀농귀촌, 듀얼라이프정책 등)을 실행하고 이 정책이 잘 안착되도록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악마의 맷돌이 작동되는 삭막한 각자도생 모래알 사회를 넘어서는 사회적 우정과 연대의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20여 년 일찍 저출산초고령화 지역소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이제는 저출산 극복 모범국가가 되었을 뿐만아니라 저출산초고령화지역소멸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우선 저출산문제부터 살펴보면, 2020년 OECD 38개 국의 평균 출산율이 1.59인데, 프랑스는 1.8의 적정 출산율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가 저출산 극복 모범국가가 된 요인은 무엇일까?
➀가족수당이라는 이름의 다단계 출산 보육 수당 정책 ➁아이 많이 낳는 문화권(아프리카ᆞ 중동 등) 출신의 이민자수용정책 ➂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제도 기반 비혼 동거 자녀 차별 철폐 (프랑스는 비혼 출산율 62%이고 한국은 2.4%) ➃영유아부터 대학까지의 무상에 가까운 교육시스템 ➄가족주의 공동체 문화와 지역 꼬뮨자치 시스템의 융합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성공 요인을 보면 위의 ➀ ➁ ➂ ➃요인은 저출산 극복의 직접적 효과를 가져오게 한 요인이고, ➄요인은 저출산 극복의 간접적 효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다섯 번째 '가족주의 공동체 문화'와 '지역 꼬뮨자치시스템의 융합' 요인은 프랑스의 중앙집권 국가 행정체제와 풀뿌리 직접민주주의 꼬뮨(마을공화국) 체제가 결합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은 ➀ ➁ ➂ ➃의 정책이 성공할 수 있게 하는 요람이자 뒷받침의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의 시의적절한 분권자치체제 구축이야말로 저출산 관련 제반 정책의 수용성과 효과성을 매우 높여주었다. 프랑스는 저출산 극복의 직접적 정책과 간접적 정책을 종합적으로 잘 배합하여 추진한 것이 성공의 핵심요인이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소멸 극복의 핵심은 아이 기르기 좋은 동네와 고독사 공포 없는 노인안심 행복마을 건설이었다. 이어서 이를 초점으로 하는 읍면동 단위 꼬뮨(마을공화국) 기반의 자치분권체제 구축과 듀얼라이프 제도(도시농촌 두 지역 살기 지원제도)와 같은 도농 상생 시스템을 통하여 지역소멸문제까지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출산과 초고령화 지역소멸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농촌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한국이 헬조선 신양반제사회라는 깊은 중병에 들고 ‘지방소멸’ 증후군이 나오게 한 핵심원인은 농산어촌 붕괴와 공동체의 해체이다. 그러면 농촌 붕괴를 기반으로 몸집을 키운 초과밀화된 수도권은 행복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또한 부동산 문제 등 수도권 도시안에서의 문제해결의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농촌을 살리지 않고는 도시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농촌을 살려내야만 도시의 문제는 물론 농촌의 문제도 해결된다. 한국의 헬조선사회 극복은 농촌과 '사회적 자궁'인 마을공동체의 부활, 이와 연계된 지역자립의 마을 공화국체제구축, 그리고 이에 기반한 수도권 도시의 재구조화와 리모델링에 있을 것이다.
3500개의 읍면동 자치정부 건설
이러한 지역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읍면동장 선출제를 기반으로 한 3500여 개 읍면동 마을 자치정부 건설과 국가예산의 읍면동 마을 자치정부로의 분권재정, 농촌과 대도시를 넘나들며 살 수 있는 듀얼 라이프(Dual Life)정책, 그리고 서울대 등 국립대와 공무원의 100% 지역균형 선발제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양로원화해가는 농산어촌을 살리기 위하여 농산어촌 거주민 기본소득제, 농산어촌 자녀들의 대학까지 무상교육 우선 실시, 농산어촌 군병역 대체복무제 등을 조속히 실시해야 할 것이다.
김영호: 나는 지금 정부여당 절대다수당이 된 야당, 재계, 그리고 시민사회가 “조용한 혁명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을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라운드 테이블에서 현안의 연금개혁에서 기업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 의료개혁, 정부개혁, 에너지전환 중에서 전략적으로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한 헌법개정과 재벌기업개혁 그리고 현안의 연금개혁부터 감동적으로 해내면 개혁대박이 터질 것이라 본다. 그러려면 먼저 대타협이 필요하다.
조국 대표가 대통령 임기 3년은 너무 기니 윤 대통령이 앞장서 4년 연임 대통령제 개헌을 하라고 한다. 이 위협과도 같은 제안을 역으로 받을 수도 있는 발상의 전환으로 제7공화국을 여는, 성공한 대통령의 길을 필사적으로 열어 탄핵압력과 식물대통령 신세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권력 사유화 스캔들은 스스로 말끔히 씻어버려야 한다. 윤 대통령의 깃발이 연금개혁이었는데, 이재명 대표가 정부안을 받을 테니 21대 국회에서 매듭짓자고 했을 때 여당이 연금개혁의 주도권이 야당으로 넘어갈까 하는 소인적 소심으로 반대했는데, 실로 웃으며 받는 배짱이 아쉬웠다. 그러한 형태로 ‘조용한 혁명의 장정’을 이끌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도 탄핵정국을 몰아붙여 역풍을 살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하고 협치를 통한 개혁을 성공시킨 공로로 대통령의 길이 더욱 훤히 열리게 되지 않을까? 국민들 입장에서도 힘든 탄핵정국을 보지 않아도 되고, 국가적으로 제2의 갑오경장에 성공하게 된다. 발상을 바꾸면 모두가 받을 수 있는 대타협의 역사적 기회가 된다.
사회: 헌법에는 어떤 식으로 담아내면 좋을까?
김영호: 촛불혁명 때 “촛불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의정치를 개혁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주권자 행동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미 여야가 5.18을 헌법정신으로 하자고 이미 합의했으니 헌법에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통합정신을 명시해야 한다. TV의 트롯음악 경연조차 마스터들 투표와 청중 직접투표의 통합으로 뽑는 세상 아닌가? 지금은 직접민주제를 실현할 수 있는 웹3.0 기술혁명이 이룩된 시대이다. 그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지와 4년제 중임제도 시실상 합의했다. 87년 헌법에 표방했던 경제민주화를 구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실행할 때가 왔다.
사회: 경제민주화는 어떻게 실현하는가.
김영호: 촛불혁명 때의 촛불권리선언 속에 “촛불은 재벌이 누려온 특권과 부당한 부의 대물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행동선언이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벌경제는 한동안 위력을 발휘하였는데, 이미 10여년 전부터 한계에 도달했다. 그 한계는 각종 지표로 확인된다. 이제 재벌의 내부거래와 하청기업과의 전속거래는 시장장벽이 되고, 공정경쟁의 기회를 빼앗아 혁신을 막고 있다. 재벌기업이 중화학공업 중심이라 기후변화 적응도 어렵게 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최고의 자살률과 세계최저의 출생율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조용히 재벌체제를 졸업해야 한다. 삼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스웨덴 재벌 발렌베리그룹 개혁 사례를 벤치마킹해왔고, 이재용 회장도 자녀에게 경영승계를 안 하겠다고 공언했다. 지금 재벌체제의 한계가 드러난 지 오래되었는데, 아무도 재벌졸업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삼성위기설은 최근 AI시대 HBM(고대역 메모리) 사태 이전부터 수직계열전략의 한계를 노정해 왔다. 세계는 주주자본주의 졸업을 하고 있는데, 한국은 재벌들의 오너자본주의로 낮잠을 자고 있다. 국회는 상법 개정 하나 못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이사들은 거의가 교수 검사 관료 출신이고 오너에게 충성하는 오너 자본주의의 들러리들이다.
우리에게 재벌체제 졸업 능력이 있을까? 여야협치로도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서는 상법에 이사는 주주에게 충성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회사에 충성하라고 돼 있는데 사실상 오너에게 충성하는 구조이다. 하루빨리 주주는 물론 소비자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충성하는, 요즘 말로 ESG충성이사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소수주주 동의제(Majority of minority) 즉 오너들의 이해관계자를 제외한 소수 주주의 과반동의제를 도입해야 한다. 장기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더블 보팅시스템(Double Voting System)도 도입해야 한다. 상속 증여시에 시가를 기준으로 하면 오너가 주가상승을 억제한다. 오너 천국을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의 천국으로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민배제기업을 국민포용기업으로 바꾸는 상법개정이 경제민주화의 첩경이다.
국민연금개혁을 성공하여 한국경제의 팔자를 고치자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 기금고갈문제에 초점을 맞추고들 있는데, 여기에 복지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고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교원연금 등의 통합도 고려해야 하지만 모수개혁과 구조개혁도 병행해야 한다. 국민연금 1,000조 사내유보금 600조 외화보유고의 일부 전용 등을 합쳐 2,000조 규모의 사회책임투자펀드를 만들어보라!
이 펀드를 기업에 집중투자하여 연금 소유 국민들의 이해를 연금 투입 기업의 이해와 직결시키면, 기업과 소비자의 내적 동맹이 강화되어 소비자는 그 기업 제품을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정부조달시장이 국민연금투자기업에 우선권을 주고 조세 금융상의 특혜를 주면 기업이익은 커지고 주주환원율은 높아진다. 그러면 기업은 해외단기투기자본의 속박에서 벗어나 투기자본 눈치 보기 경영에서 지속가능경영으로 갈 수 있다. 여기에 주주환원율이 높아지면, 연금수익의 안전성과 수익성이 확실하게 담보된다.
단 정치의 개입여지와 의혹을 철저히 차단하여 시장신뢰를 확보해야 스튜어드쉽 코드(Stewardship code)가 저항없이 안착할 수 있다. 캐나다 일본도 그렇게 성공했다.이렇게 하면 해외 투자 러시도 뒤따른다. 그러면 기업지배구조 개혁으로 주가가 두 배 오르고, 국민연금투입으로 또 두 배 올라 국민은 획기적 대박시대를 맞게 된다. 큰 위기 속에 큰 기회가 잠자고 있는 것이다.
사회;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김영호; 나는 정다산이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제(齊)를 기(棄,버릴기) 로 해석한 것을 상기하고 싶다. 윤대통령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한다거나 이재명대표가 당권을 사유화한다거나 기업을 오너가 사유화한다거나 관료가 행정을 사유화 하는, 사유화의 벽이 문제이다. 공공성의 회복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된다. 다산이 제가(齊家)의 제(齊)는 기가(棄家)를, 출가(出家)를 의미한다는 이 발상은 도산 안창호의 대공주의(大公主義)와 함께 우리가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하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