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의 '종북론 파묘(破墓)' 막을 방법 없나
신문윤리위, "야권비례는 종북" 보도 제재 결정
"명확한 근거 없이 종북 인사로 단정은 잘못"
선거 앞두고 진보인사 인권활동까지 '종북' 덧칠
강제성·징벌성 없는 '자율’ 제재, 실효성 없어
망국적 색깔론 퇴출되도록 자율 제재 강화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들을 ‘반미·종북 인사’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문화일보 기사에 대해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지난달 심의를 통해 ‘주의’ 결정을 내렸다. 시대착오적이며 악의적인 ‘색깔론’을 꺼내 들어 선거를 오염시키고 주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 언론에 대한 제재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제재가 솜방망이인데다 강제성도 없어 거의 실효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신문(인터넷 신문 포함) 보도를 자율적으로 심의하고 제재하는 신문윤리위는 지난 4월 심의에서 문화일보 4월13일자 4면에 게재된 “반미·종북인사, 야(野)숙주로 ‘금배지’ 초읽기” 기사의 제목에 대해 ‘주의’ 조처했다. 신문윤리위는 “야권의 비례대표를 명확한 근거 없이 ‘종북인사’로 단정한 제목은 편견이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사실관계가 과장, 왜곡됐다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다”면서 “이러한 제목 달기는 보도의 정확성과 객관성, 신문의 신뢰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문화일보는 이 기사에서 야권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 10명의 사진과 이름을 게재하고 이들의 이력을 표로 그려 보도했다. 주 제목을 “반미·종북 인사…”로 붙이고 부제목에는 후보이름과 함께 “한미훈련 반대주도”“사드배치 반대시위” “국보법 위반 전력” “‘겨레하나’ 심사·후보 동시참여” 등의 이력을 전했다.
선거철만 되면 극우·수구세력들이 진보진영과 민주당 인사들에게 뒤집어씌우고 낙인찍는 저열한 ‘종북 프레임’ 혹은 ‘색깔론’이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고 낡은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극우·수구세력이 벌여온 행태다.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한동훈 씨가 유세장에서 던지고 문화일보·조선일보·TV조선·중앙일보·한국경제신문 등 수구언론들이 받아 크게 보도하는 식의 협잡질을 벌였다. 다행히 국민들은 한물간 이런 ‘빨갱이 몰이’에 넘어가지 않았다.
문화일보 기사는 큰 제목에 “반미·종북 인사…”를 달아놓았지만, 실제 기사 본문에는 이념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후보들의 이력까지 거론해 놓았다.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임태훈)나 의과대 교수이면서 이재명 캠프 활동(김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최혁진), 심지어 부부 비례대표 이력(임미애)과 기본소득당 대표(용혜인) 경력까지 끌어와 마치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대부분이 ‘반미·종북주의자’인 것처럼 마구 색깔론을 덧씌워놓은 것이다. 신문윤리위는 “(기사) 본문에는 ‘종북인사’로 볼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다”면서 “(이들에게) ‘반미·종북인사 딱지를 붙이는 것이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일보는 그동안 윤석열 정권을 열렬히 지지하는 정치편향성을 감추지 않아온 대표적 극우성향 매체다. 공영방송 KBS를 ‘친윤’ 어용방송으로 전락시킨 박민 사장이 이 신문 편집국장·논설위원 출신이다. 문화일보는 극단적 편향성 때문에 국민 신뢰도가 낮은데다 발행부수도 적고 석간발행이어서 종이신문으로서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기사가 누구나 볼 수 있는 포털에 게재되면 여론을 왜곡·호도할 수 있다.
다행히 국민들은 선거에서 이런 ‘색깔론’ ‘종북론’에 거의 흔들리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극우·수구성향의 매체들은 이를 선거에 이용해 왔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망국적 색깔론·종북론은 언론 보도에서 퇴출될 때가 됐다. 20세기에 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을 이뤄냈고 이제 21세기 들어 인구소멸·기후위기·인공지능 시대를 앞에 두고 있는 국민들에게 ‘반공 귀신’을 불러내는 ‘파묘(破墓)’ 보도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망국적 색깔론·종북론 보도에 대해 신문윤리위에서 이번에 제재를 내렸지만 선거가 끝난 뒤라 별 소용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자율심의기구인 신문윤리위의 제재가 언제나 아무런 강제성·징벌성이 없는 ‘주의’ 단계의 낮은 수준이라 효능감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보도로 클릭수를 높이고 정치적 이득까지 볼 수 있다고 믿는 신문사들은 신문윤리위 제재에 코웃음을 칠 것이다.
신문윤리위가 신문업계의 ‘자율’ 기구라 강제성·징벌성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 않다. 신문윤리위의 제재 단계를 높이고 그 결과를 더 많은 독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해 최소한의 자율정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자율적’ 기구의 심의·제재인 만큼, 언론윤리를 위반했을 경우 언론사들이 ‘자율적으로’ 책임자에게 인사·근무·금전 상의 불이익을 주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언론윤리 준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일이니 이를 정부광고나 포털 입·퇴출 조건에 좀 더 긴밀히 연계시킬 수도 있다. ‘자율적’ 기구의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찾아보면 실효성을 높일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텐데,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이는 게 문제다.
우리 언론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이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것으로 곡해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언론자유 탄압의 트라우마 때문일지도 모른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면서 언론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신문윤리위가 ‘자율’ 기구라는 점은 신문윤리위의 제재 실효성을 높이는 데에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치나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정(自淨) 활동을 펼치면 소중한 언론자유도 지키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도 기여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