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하고 비장했던 유가족협의회 출범…"투사 되겠다"

정부‧여당 외면에 평범했던 소시민 부모들 벼랑 끝

"자식 잃은 어미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여주겠다"

기자회견 내내 창자를 끊는 참척의 곡소리 가득해

"윤석열 대통령, 유가족 다 죽어야 발 뻗고 자나"

"장제원‧정진석‧김기현‧권성동, 짐승만도 못한 패륜"

"수액으로 살아…사과 없으면 아들과 같이 갈 것"

2022-12-11     김호경 에디터
10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선언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2.12.10. 연합뉴스.

"저에겐 10월 29일 전후로 두 개의 자아가 생겼습니다. 첫 번째는 원래 가지고 있던 나. 현모양처, 부드러운 말투, 나서지 않는 엄마였습니다. 두 번째는 10월 29일 이후의 나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거친 말투의 엄마, 앞에 나서는 엄마. 유가족들과 함께 이 일이 투명하게 끝날 때까지 투사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고 이지한 씨의 어머니 조미은 씨의 이 말에는 유족들의 현재 심경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아끼던 자식들을 창졸간에 잃은 비통함과, 참사 전후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정부‧여당을 지켜보며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결심하는 비장함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10일 오후 서울 중구 컨퍼런스홀에서 창립 선언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부‧여당의 철저한 외면과 집요한 방해 공작을 뚫고 참사 42일 만에 어렵게 마련한 창립식은 평범했던 소시민 부모들이 벼랑에 몰린 끝에 한 맺힌 투사로 나설 수밖에 없었음을 절규하는 현장이었다.

모두 발언에서 조미은 씨가 읽은 서한의 제목은 '나는 분노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였다. 데카르트의 제1 원리를 차용한 이 제목은 바로 유가족협의회의 향후 활동 원리였다.

"몸을 씻은 기억이 안 나 한 달이 지나 씻으며 통곡하며 타월로 내 몸을 얼마나 밀었는지 피가 흐른다. 이 피가 내 아들의 죽음의 순간보다 아픈 느낌일까. 내 슬픔은 이제 분노로 변하고 있다. 용산 대통령을 지키느라 이태원에 정부는 없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잃은 어미들이 분노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제 보여주려 한다."

고 김지현 씨 어머니 김채선 씨는 충남 당진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유족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김 씨도 카메라까지 곳곳에 배치된, 다중이 지켜보는 자리에 나서는 일 자체를 힘겨워했다. 그럼에도 김 씨는 "제가 용기도 안 나고 앞에 나서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이렇게라도 나서게 된 건 어제 조카가 '언니 꿈을 꿨다'고 얘기를 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제가 '어떤 모습으로 나왔니?' 했더니, 하얀 원피스에 머리를 묶고 나왔는데,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지저분한 신발을 신고 나왔다고 합니다. (조카가) '언니, 어디 있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라고 물어보니까,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그저 땅만 바라보면서 '엄마 아빠' '엄마 아빠' 그렇게 외치더랍니다. 그래서 저희 남편이 아기가 되어버린 것 같은 딸을 소중하게 들어 올리며 한없이 오열했고 저 또한 의자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울어댔다고 합니다."

김 씨가 사랑하는 딸에게 못다 했던 말을 전하겠다며 편지를 읽어 내려가자 유족들의 흐느낌은 점점 커지고 곧 창자를 끊는 참척의 곡소리가 장내에 가득했다. 희생자 158명 중 97명의 가족 170명이 협의회에 참여했으며, 기자회견장에는 50여 명이 직접 자리에 나왔다. 김 씨는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다.

"158명 꽃다운 청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엄마 아빠와 유가족분들이 기운을 내서 억울함과 한을 풀어주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게. (…) 그리고 국민의힘 의원님들을 비롯해 이상민 행안부 장관님, 윤희근 경찰청장님, 이임재 용산경찰서장님, 오세훈 서울시장님, 박희영 용산구청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유가족들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제발 눈과 귀를 막지 마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10일 중구 달개비에서 창립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2.10. 연합뉴스

유족들의 통곡 속에 마이크를 잡은 고 송영주 씨의 아버지는 "29일 밤 아들딸들이 그렇게 살려달라고 전화를 했는데도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왜 대응을 안 했는지 정말 분통이 터진다"며 "경찰 몇 명만 보냈어도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살 수 있었을 것을 왜 그날 밤은 다 모른 척하고 무능했느냐. 원통하다. 너무너무 분하다"고 했다.

유족들은 그간 참고 참았던 울분을 앞다퉈 토해냈다. 한 유족은 "그날 밤 9시쯤 경찰들끼리 나눈 무전 내용을 다룬 기사를 봤다. 길이 너무 좁아서 미어터져 차도로 (인파가) 나오는데도 자기들끼리 '차도 확보해, 사람 위로 올려'라고 하더라. 그건 분명히 학살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다른 참석자들도 "맞습니다" "학살입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이 유족은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하다 "윤석열 당신, 대통령님! 당신은 자식이 없어서 이렇게 외면하느냐. 국가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여기에 왜 우리가 모여야 하느냐.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고 뉴스도 일기예보나 보고 다른 건 보지도 않던 사람들"이라고 피를 토하듯 말했다.

협의회 대표를 맡은 고 이지한 씨 아버지 이종철 씨는 호흡 곤란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 성역 없는 엄격한 진상 및 책임 규명, 참사 피해자들의 소통 보장,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는 정부에 사정을 했다. 오늘 처음 만나는 유가족분들이 50여 명 된다. 지난 40여 일간 유족분들 연락처를 확보하려고 여기저기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면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우리 유가족들 서로 위로하고 극단적인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서로 만나서 대화하고 울고 껴안고, 그렇게 해야만 트라우마 치료할 수 있다고 행안부와 서울시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정신과 치료받아라, 정신과 약 먹어라, 상담받아라 (이런 말뿐이고)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지금 현재도 유가족 연락처를 주지 않고 있어요. (…) 윤석열 대통령님께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저희 유가족들이 다 죽어야, 이 대한민국에서 다 없어져야 당신이 발 뻗고 잘 수 있는 겁니까. 저희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십시오."

부대표 이정민 씨가 창립선언문을 발표하는 도중에 한 유가족이 실신해 발표가 중단되고 119구급차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고 조경철 씨 어머니는 "경철아! 보고 싶다!"라고 외치고 한동안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하다 "경철이는 나의 버팀목이고, 나의 등이고, 나의 어깨가 되어줬던 아들"이라고 목놓아 그리워했다.

"아들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윤석열 대통령님, 애들한테 국민들한테 사과하세요. 진심으로 사과하시라구요. 잘못 있는 사람들 빨리 처벌하세요. 우리 경철이 억울하지 않게,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이 기자회견 장면을 TV로, 유튜브로 시청한 많은 시민들은 유족들의 절통한 몸부림에 심장을 찔린 느낌이었다. 자신의 가족이 참사를 당해 흘릴 수도 있었던 피눈물이기 때문이다.

 

10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선언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2.12.10. 연합뉴스.

유족들은 특히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이날 페이스북에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며 '정쟁' '횡령' '종북' '재난 앞에 성숙' 등을 운운한 데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세월호가 가는 길이 대체 어떤 길입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반정부세력입니까. 저희가 반정부세력입니까. 세월호 유가족들도 자식을 잃고 그 슬픔과 비통함 때문에 정부에 수많은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었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벌써부터 갈라치기를 하고, 국민들한테 진실을 호도하는 것입니까.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쟁을 하겠습니까."(이정민 씨)

"정부가 저희들을 왜 자꾸 밖으로 불러내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장제원, 정진석, 김기현, 권성동! 윤석열 대통령한테 그렇게 잘 보이고 싶으십니까? 예? 당신들이 우리한테 패륜이야 패륜. 인간으로서 우리들한테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당신들은 했습니다. 짐승도 그렇게는 안 했을 거예요. 우리가 개돼지입니까." (이종철 씨)

"내 아들과 그 여자친구를 나란히 봉안당에 모시고 돌아온 이후로 저는 한 번도 봉안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 아들을 묻고 온 이런 상황에 정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왜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국민들 세금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습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는 자식하고 같이 가겠습니다. 제 심장 같은 아들을 떠나보내고 수액으로 살고 있어요. 목에 뭐를 넘기지를 못하겠어요. 저는 사과받지 않으면 아들하고 같이 가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저희가 같이 가지 않게, 길거리로 나서지 않게, 미친년처럼 그렇게 살지 않게, 좀 도와주십시오. 제가 우리 아들 49재 끝날 때까지 기도만 하고 조용히 보내려고 했는데, 오늘 '정쟁'이라는 얘기를 듣고 보니까 이건 아니었어요."(고 김현수 씨 어머니)

유족들은 앞에 자리한 각 언론사 취재진에게 "제발 우리를 잊지 않도록 관심 좀 가져달라" "저희들은 아무 힘이 없으니 제발 도와달라"고 여러 번 호소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오는 16일 오후 6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함께 '참사 49일 시민추모제'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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