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 받드는 정신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했나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앞장선 특위 위원 넷
알고보니 욱일기 공공장소 허용 조례안 찬성
국힘 소속 김혜영, 박상혁, 이상욱, 이희원
“이 조례는 일본 제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우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시의회가 2020년 통과시킨 ‘서울특별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 제1조(목적) 내용이다. 일제의 욱일승천기 게양을 공공장소에서 불허하는 조례인 것이다.
욱일기 허용 조례안은 실패,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은 성공
“이 조례는 ‘대한민국헌법’, ‘교육기본법’ 제12조 및 제13조,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 및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시의회가 2012년에 통과시킨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1조(목적) 내용이다.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 만 2년된 2024년 4월.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들 조례를 폐지시키기 위한 두 개의 ‘폐지 조례안’ 집행 작업에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는 실패했고, 하나는 성공했다. 실패한 것은 지난 4월 3일 발의된 ‘서울특별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 폐지 조례안’(욱일기 허용 조례안)이다. 이 조례안 발의자 1명과 찬성자 19명은 모두 국민의힘 시의원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발의자= 김길영.
찬성자= 김경훈, 김동욱, 김영철, 김재진, 김춘곤, 김형재, 김혜영, 박상혁, 서상열, 송경택, 신동원, 옥재은, 이민석, 이병윤, 이봉준, 이상욱, 이희원, 최민규, 최유희.
성공한 다른 하나는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 인권·권익향상특위가 의결, 제안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다. 이 특위 또한 모두 국민의힘 시의원 10명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김혜영, 곽향기, 박상혁, 서호연(위원장), 윤영희, 이상욱, 이종배, 이희원, 정지웅, 황철규.
욱일기 허용 조례안은 공공장소에서도 욱일기 게양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까지 나서 “해당 조례안을 발의한 시의원들에 대해서는 당 차원의 조사 후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총선을 앞둔 시기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이 조례안은 발의 하루 만인 지난 4월 4일 철회됐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은 지난 4월 26일 인권·권익향상특위 제안 3시간 만에 열린 본회의에 곧바로 상정됐다. 이어 국민의힘 시의원 6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짜고 친 고스톱’ 수준이었다. 소수인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은 항의의 표시로 표결에 불참했다.
학생 ‘입틀막’ 의원들이 욱일기 허용 조례에는 ‘찬성’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앞장 선 인권·권익향상특위 위원 4명이 욱일기 허용 조례안 찬성자였다는 것이다. 그 국민의힘 시의원 이름은 김혜영, 박상혁, 이상욱, 이희원이다.
일제 욱일기 권리까지 생각하던 ‘광폭’ 시의원들이 한국 학생의 권리 빼앗기에 나선 셈이다. 이에 대해 박유진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대변인은 “역사는 지난 4월 26일을 일제 욱일기를 내걸 수 있는 권익은 보장해주고자 했던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한국 학생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는 조례는 폐지시킨 날로 기록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경고다. 요새 유행어로 얘기하면 학생 ‘입특막’(입 틀어막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입틀막’을 옹호하는 의견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바로 학생인권조례의 ‘교권침해 부채질론’이다. 일부 교원단체도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부터 줄곧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도한 김혜영 시의원은 지난 26일 서울시의회 본회의 찬성 발언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교권보호 필요성 목소리는 교사들을 옥죄는 손톱 밑 가시로 거론됐던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져 왔다...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애써주신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님, 최호정 (국민의힘) 원내대표님께 감사드린다.”
위와 비슷한 말은 이주호 교육부장관도 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교에서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우선시되면서 교권은 땅에 떨어졌다.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는 지난 2023년 7월 21일 발언이 그것이다.
‘교권침해 부채질론’이 허구임을 가리키는 통계자료
하지만 통계는 위와 같은 말을 정확히 뒤집고 있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경기(2010), 광주(2012), 서울(2012), 전북(2013), 충남(2020), 제주(2021) 등 6개 시도다(괄호 안은 제정 년도). 이 장관 말이 맞으려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6개 시도의 교권침해 사례가 그렇지 않은 시도에 견줘 늘어나는 추세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현재 공개된 가장 최신 자료는 지난 2020년 7월 27일 국회 김병욱 의원(국민의힘)이 발표한 '2016~2019 시도별 교권침해 현황'이다. 이 자료는 교육부가 만든 것이다.
해당 조사 기간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던 곳은 경기, 광주, 서울, 전북 등 4곳이다. 이 4곳 가운데 2016년과 2019년 4년 사이 추이를 살펴보니 서울(585→442), 광주(92→73), 전북(88→86) 등 3곳은 오히려 교권침해가 줄어들었다. 경기 지역(500→663)만 늘어났다.
학생인권조례 유무에 따른 시도별 차이를 판단하기 위해 6개 광역시를 비교해봤다. 6개 광역시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곳은 서울, 광주 2곳이고, 없는 곳은 부산, 대구, 인천, 울산이다.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던 서울, 광주는 모두 교권침해 사건이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지 않던 대구(129→156), 인천(66→148), 울산(78→79) 등 3개 광역시는 오히려 교권침해가 늘어났다. 조례가 없던 부산(204→95건)은 교권침해 사례가 줄어들었지만 이 시기 부산 교육감은 학생인권을 강조하던 김석준 전 부산대 교수였다.
지난 4월 29일 한 집회에서 서울 H중 1학년인 장 아무개 학생은 다음처럼 힘주어 말했다. 교복을 그대로 입고서다.
“제 인권과 선생님의 인권을 대립항에 두며 싸움을 붙이는 행위를 당장 철회하십시오. 그리고 제 인권 앞에 좌익편향이니 공산주의니 동성애 조장이니 그런 단어를 써 가며 이 제도를 오염시키는 짓을 중단하길 바랍니다.”
중1의 외침 “제 인권과 선생님 인권 놓고 싸움 붙이지 말라”
이 학생은 “제도가 잘 작동되기까지 오랜 갈등과 경험이 필요하고 그걸 교정하고 합의하는 절차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이 제도는 문제니까 없어져야 해’ 하는 식으로 일방적 폐지로 몰아간 어른들은 전혀 성숙하지 않다고 본다”고 꼬집기도 했다.
공공장소에 욱일기를 내걸 권리는 보장하면서, 학생 권리는 빼앗으려는 정치인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일방적으로 몰아간 어른들은 전혀 성숙하지 않다”는 중1 학생의 외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확 ‘입틀막’을 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