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는 울부짖고 아비는 흐느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식
호흡 곤란으로 119에 실려가기도
대통령 진심어린 사과, 진상 규명 촉구
권성동의 ‘횡령 막말’ 성토도 쏟아져
어미는 울부짖고, 아비는 흐느꼈다.
아들과 딸의 이름을 부르며 목이 메고,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목이 갈라졌다. 호흡이 가빠져 119에 실려가는 유족도 있었다.
10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컨퍼런스홀 달개비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선언 기자회견장은 눈물과 절규 속에서 진행됐다.
고 이주영 씨의 아버지 이정민 협의회 부대표가 창립 선언문을 읽어 나갔다.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과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에 분노와 슬픔을 표하며,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온전한 추모, 철저하고 분명한 진상 및 책임 규명을 위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를 결성한다.”
협의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 △성역 없는 엄격한 책임 규명 △참사 피해자들 간 소통 보장과 인도적 조치 △2차 가해 방지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기자 회견은 유가족들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함께 준비했다. 참사 희생자 158명의 유가족들 가운데 97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유가족들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망언을 규탄하기도 했다.
권 의원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유가족협의회를 언급하며 “일부 시민단체는 세월호 추모사업을 한다며 세금을 받아가서 놀러 다니고 종북 교육에 사용했다”는 글을 올렸다. 또 “이러한 횡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한편 유가족협의회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참사 희생자들의 49재인 오는 16일 오후 이태원역에서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이름의 추모제를 진행한다.
유가족 협의회 창립선언문 전문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과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에 분노와 슬픔을 표하며,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온전한 추모, 철저하고 분명한 진상 및 책임규명을 위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를 결성하며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1. 우리는 일상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길을 가다가 예기치 못한 위험을 맞닥뜨리고 허망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할 것을 선언한다. 정부는 당시 많은 인파가 예상되었음에도 어떠한 사전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구조요청을 하는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였으며, 참사 이후 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시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
2. 우리는 정부에게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해 모든 행정적 역할을 다할 것을 촉구하고, 정쟁을 배제한 철저한 국정조사, 성역 없는 수사 등 모든 수단을 통해 그 날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엄중함을 물어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통해 향후에는 그 자리의 책임과 무거움을 느껴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3. 우리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소통공간 마련과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기억해 줄 추모공간의 설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촉구하며, 유가족 협의회 구성에 불순한 의도로 그 활동을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추모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우리 유가족들의 권리이며, 진정한 추모는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함께 되어야 한다.
4. 우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에게 덧씌워지는 말도 안 되는 오명에 분노하며, 이후 행해지는 모든 2차 가해에 대해 조금의 선처 없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에 책임이 따를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5. 우리는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을 기억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어떠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 깊이 새기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이 땅에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유가족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며 행동할 것을 약속한다.
2022년 12월 10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유가족들의 편지와 말
“사과받지 않으면, 저는 (희생된 아들과) 같이 가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도와주십시오. 제발 저희들 좀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같이 가지 않게, 길거리로 나서지 않게, 미친년처럼 그렇게 살지 않게, 좀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 말씀을 안 드리려고 그랬어요. 제가 우리 아들 49재 끝날 때까지만 기도만 하고 조용히 보내려고 했는데, 오늘 (권성동 의원의) ‘정쟁’이라는 얘기를 듣고 보니까 이건 아니었어요. 정쟁 그 뜻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잘못한 건 잘못한 거 아닙니까. 잘못한 거 사죄하는 게 뭐가 어렵습니까.” (이날 오전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재난의 정쟁화’라는 말을 써가며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된다”고 썼다. 편집자주)
“(권성동 의원이 말하는) 세월호가 가는 길이 대체 어떤 길입니까. 어떤 길인데 거기로 가면 안 된다는 겁니까. 저희는 모르겠습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세월호 유가족들이 반정부세력입니까. 저희가 반정부세력입니까. 세월호 유가족들도 자식을 잃고 그 슬픔과 비통함 때문에 정부에 수많은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었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저희한테 손을 내밀어줬습니까. 왜 벌써부터 갈라치기를 하고, 국민들한테 진실을 호도하는 것입니까. 이게 정부가 할 일이고 여당 책임자가 해야 할 얘기입니까. 세월호 때 어떻게 했는지 한 번 더 자신들을 돌아보고 저희한테 말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참사로 자식·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쟁을 하겠습니까. 왜 하겠습니까?”
“갑작스레 길거리를 지나가다 그 비좁은 골목에서 숨조차 쉴 수 없이 너무나도 참혹하고 비통하게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얼마나 한이 맺혀서 눈도 못 감았을까.”
“어른들의 무관심과 수수방관으로 인해 너희들 158명 꽃다운 20대 청춘들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엄마 아빠 유가족분들이 기운을 내고 힘을 내서 억울함과 한을 풀어주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게.”
“윤석열 대통령님 애들한테 사과하세요. 진심으로 사과하시라고요. 잘못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시고, 빨리빨리 사과하세요. 억울하지 않게. (아들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진심으로 사과나 하세요. 부탁입니다.”
“베란다에 키우고 있는 당근이 혹시 추워죽을까 비닐로 감싸준다. 그 당근이 추워 얼어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까 봐 그 식물에 지한이를 키우듯 내 온 정성을 다한다. 좁은 골목에서 흥겹게 흘러나오는 큰 음악 소리에 나도 모르게 커다란 눈물이 흐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도로로 두 팔을 벌려 눈을 감고 걸어 들어가면 잊혀질까 계획도 세워본다. 몸을 씻은 기억이 안 나 한 달이 지나 씻으며 통곡하며 타월로 내 몸을 얼마나 밀었는지 피가 흐른다. 이 피가 내 아들의 죽음의 순간보다 아픈 느낌일까.”
“어제 조카가 '이모, 언니 꿈을 꿨다'라고 얘길 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나왔니?' 했더니, 하얀 원피스에 머리를 묶고 나왔는데,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지저분한 신발을 신고 나왔다고 합니다. (유가족들 모두 흐느낌) 그러면서 '언니, 어디 있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라고 물어보니까,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그저 땅만 바라보면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 '엄마 아빠', '엄마 아빠' 그렇게 외치더랍니다. 저희 남편이 저희 딸을 소중하게 들어 올리며 한없이 오열했고 저 또한 의자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울어댔다고 합니다.”
권성동 의원의 페이스북 글 전문
“이태원 압사 사고 유가족들이 모인 유가족협의회가 10일을 기해 출범한다고 합니다. 유가족협의회는 지난달 15일 민변을 통해 첫발을 뗀 뒤 준비모임의 형태로 활동해왔습니다.
한편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도 출범을 알렸습니다. 참여연대와 민노총 등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시민대책위는 이태원 참사 기억과 희생자 추모, 지원 대책 마련, 추모기록 보존 등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에 여러 요구사항도 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태원 사고 직후 정부는 추모주간을 발표하고 유가족에게 장례비 지원 등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한 현재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차후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정부와 유가족은 논의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결합해서 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부 시민단체는 세월호 추모사업을 한다며 세금을 받아가서, 놀러 다니고 종북 교육에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횡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신중 검토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시민대책회의에 속한 시민단체는 유가족 옆에서 정부를 압박하기 전에, 세월호를 악용한 시민단체의 방만한 폐습부터 어떻게 보완할지 먼저 밝혀야 합니다.
민변의 이태원 참사 TF 소속 모 변호사는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 일원으로, 10여년 넘게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앞장서는 등 극단적 정치성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분 때문에 ‘재난의 정쟁화’라는 국민적 의구심이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수많은 추모사업과 추모공간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난사고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시민단체가 정치적, 금전적으로 사고를 이용하는 사례까지 속출했습니다.
우리는 재난 앞에서 성숙해야 합니다. 추모를 넘어 예방으로, 정쟁을 넘어 시스템개선으로 가야 합니다.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됩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
“민주당은 유가족협의회와 그 길을 함께 하겠다. 국민의힘은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단체의 연대 움직임에 벌써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권 의원의 ‘종북’, ‘횡령’ 발언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마저 욕보이고 있다. 재난을 막지 못한 책임에 대해 반성은 못할망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단체를 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 그렇게 두렵나. 참사의 진상인가 아니면 참사에 책임을 지라는 국민의 명령인가. 국민의힘의 비상식적 모습에 윤석열 정부가 참사 유가족을 개별적-선별적으로 만나고자 했던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으라. 유체이탈로 세월호 참사 책임을 외면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