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딜레마'에 조선일보 갈팡질팡
보수 기득권 세력의 방향타 역할 표류하는 듯
윤 계속 밀어줄지 사실상 포기할지 혼란 노출
스스로 자초한 위기 앞에 상반되는 보도 보여
조선일보의 ‘윤석열 딜레마’에 대한 갈팡질팡이 더욱 어지러워지고 있다. 계속 밀어줘야 할지 사실상 포기를 해야 할지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압박하면서 한편으로는 엄호하는 보도들을 내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야단을 치지만 한편으로는 어르고 달래는 식이다. 보수 정권에 대해 진로를 제시했던 조선일보지만 최근의 보도들은 한국사회 보수 및 기득권 세력의 방향타로 군림해온 조선일보의 좌초와 표류를 드러낸다.
이는 총선 대참패의 충격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윤석열이라는 권력자 중심으로 구축돼 온 보수 지배층의 지형에 큰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롯되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임기가 채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권력의 중심이며 원천인 윤 대통령이 문제의 해결자이기는커녕 문제 자체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기인하는 혼돈과 표류다. 특히 조선일보 자신이 지금의 윤석열과 윤석열 정권을 있게 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윤석열과 함께 보수기득권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과 윤석열을 지켜야 그 자신들도 산다는 판단이 엇갈리며 교차하는 국면인 것이다.
마치 섬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치며 살고 있던 19세의 강화도령 철종을 왕위에 올렸던 안동 김씨 세력이 놓였던 상황과도 비슷하다. 조선일보 자신이 기득권 세력과 함께 호출해 대통령직에 올렸던 윤석열이라는 인물의 자질과 역량 결핍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황에서 안동 김씨 세력처럼 스스로 자초한 자신들의 위기 앞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25일자에 실린 주필(양상훈)의 칼럼 <‘채·김 특검 수용 결단’은 몽상인가>는 채 상병 사건 특검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개입 여부 특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을 ‘결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칼럼은 “만약 국민의힘에서 특검 찬성표(대통령 거부권 행사 뒤 재의결 이탈표)가 여럿 나와 특검안이 통과되면 윤 대통령은 어쩌면 총선 참패보다 더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면서 “반대로 국민의힘에서 특검 찬성이 나오지 않아 특검이 무산되면 정권 전체가 깊은 내상을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위기에 빠지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양 주필은 “이 딜레마를 벗어날 방법이 없지 않다. 윤 대통령이 결정적 순간에 두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결단하면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훈수를 두고 있다. 특검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윤 대통령을 엄호하는 데 열심이다. 그럼으로써 윤석열의 근본적인 변화를 막고 있다. '윤석열의 오만과 독선과 불통'을 지적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만과 불통을 부추긴다.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 때에도 “아무리 경륜과 능력을 갖춘 인사를 참모로 둬도 대통령이 독선과 불통에 갇히면 소용이 없다”면서도 <하루 2번 브리핑룸 찾은 대통령>이라는 1면 머릿기사까지 써 가며 “소통과 설득으로 국정이 변화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참모 “정무수석 발표 땐 질문 안 받아도...” 尹 “아니다, 받겠다”>에서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1층 브리핑룸에 내려올 때 한 참모가 ‘기자들 질문을 2개 이상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느냐’라고 하자 ‘그러지 뭐’라고 했다고 한다”며 “정무수석 인선 발표 때도 ‘오전에 질문을 받았으니 굳이 안 받아도 될 것 같다’고 하자 ‘아니다. 질문을 받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한겨레가 <윤 대통령, 두 차례 브리핑 ‘소통 공세’…국정기조는 ‘유지’>에서 “‘소통’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국정기조 변화는 없음을 재확인했다”고 한 것은 물론 동아일보가 <돌고 돌아 비서실장에 정진석… 野 “협치 부적합”>에서 부정적으로 보도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친윤계로 꼽히는 인물(이철규 의원)의 원내대표 선출 움직임에 대해서도 다수의 언론들이 국민의힘이 총선 참패 이후 변화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 의원의 원내대표 선출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논지로 읽힐 수 있는 보도를 내놨다.
동아일보는 이철규 의원에 대해 사실상 부적격 판정을 내리는 사설을 냈다. “이 의원은 윤 대통령과 잘 통하는 핵심으로 꼽힌다…그런 이가 원내 사령탑을 맡는 국민의힘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면서 “자성과 변화의 노력은커녕 다시 친윤 원내대표를 통해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도로 친윤당’으로 돌아가려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與 차기 원내대표 이철규 출마설에 당내부 시끌시끌>에서 “현재 이 의원 말고 원내대표 선거와 관련해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사는 관찰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차기 원내대표가 ‘독이 든 성배가 아니라, 그냥 독배’라는 당내의 평가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압도적인 의석수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마땅치 않고, ‘채 상병 특검법’ 등에서 이탈표를 방지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고 보도했다.
TV조선 저녁 뉴스 앵커는 정진석 비서실장에 대해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이 강점이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격의없이 민심을 전하리라는 기대와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엇갈린다고 우려했다. 이 앵커는 "결국 성공과 실패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뀌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윤 대통령이 최근 소통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이를 등불에 비유,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 앵커는 윤 대통령이 지난 22일 브리핑룸에 거듭 찾아온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나희덕의 ‘산속에서’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길 잃은 나그네가 멀리 불빛을 본다고 했다. 길 잃은 나그네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유한 듯하다. 그러나 윤석열에게 불빛이 돼야 할 조선일보 자신이 길을 잃고 있다. ‘윤석열 문제’는 곧 '조선일보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