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값 치솟아도 정부는 “물가 잡혔다” “사과 내렸다”

통계청 발표, 3월 사과·배 가격 90% 역대급 상승

전체 물가 두 달 연속 3%대…2년 누적으로는 심각

최 경제부총리 별다른 근거없이 "물가 고삐 잡혔다"

송 농림은 아예 "할인 감안하면 과일값 내려" 강변

전문가 "정부 지원 한계…수요 자극 부작용 우려"

2024-04-02     유상규 에디터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전달에 이어 다시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먹거리 관련된 농축수산물 물가가 두 자릿수로 급등해 전체 물가상승을 주도했다. 특히 과일류 가격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사과와 배 90% 가까운 상승률로 역대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하지만 소비자들을 정작 당혹스럽게 하는 건 높은 상승률이 아니다. 정부 당국의 물가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인식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할인 지원을 감안하면 사과 등 과일 가격이 전달보다 하락했다"고 주장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예 "연간 물가는 3월로 정점을 찍고 하반기에는 빠르게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두 이날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대회의실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른쪽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24.4.2. 연합뉴스

최 부총리의 물가 전망 근거는 고작 ‘모든 경제 주체들의 동참과 정책 노력 등에 힘입어 물가 상승의 고삐는 조였다’ 뿐이다. 송 장관의 과일 가격 인식은 할인가를 일시적으로 적용하는 대형 마트에 국한된 것으로 통계청의 조사결과와 크게 상반된다. 이들 주무 장관들의 이날 발언은 할인에 할인을 더해 875원으로 매겨진 대파 단을 들고 "합리적"이라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앞뒤 설명없이 "의대 정원 확대 2000명은 과학적으로 나온 수치"라고 강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대파 875원 합리적" "의대 2000명 과학적" 윤 대통령 연상

통계청이 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4(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3.1% 올랐다. 전달인 2월과 같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8월 이후 3%대 상승률을 보이다 올해 1월 2.8%로 낮아졌지만, 한 달만에 다시 3%대로 복귀해 두 달 연속 이어졌다.

품목별로 보면 먹거리와 밀접한 농축수산물이 11.7% 올라 2021년 4월(13.2%)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 상승하면서 전체 물가 오름세를 주도했다. 특히 농산물이 20.5% 올라 두 달 연속 20%대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소비자물가 추이, 주요 농축수산물 물가 (2024년 3월)

단일 품목으로는 사과가 전년 동월 대비 88.2%나 올라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역대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과 소비자가격 상승률은 전월에도 71%를 기록해 오름폭이 커지는 양상이다. 배도 87.8% 올라 조사가 시작된 1975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대체 과일 쪽으로 수요가 옮겨가면서 귤(68.4%) 등도 크게 올라 과실 물가지수는 40.3% 올랐다. 2월(40.6%)에 이어 두 달째 40%대 상승률을 보였다. 토마토(36.1%)와 파(23.4%) 등이 급등하면서 채소류도 10.9% 올랐다.

신선식품지수는 19.5% 올라 6개월째 두 자릿수 상승률을 이어갔다. 기상 등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품목으로 구성된 신선식품지수 상승률이 6개월 이상 10%를 넘긴 것은 2010년 2월∼2011년 3월 이후 처음이다. 특히 신선과실(과일) 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40.9% 올랐다. 작년 8월(14.3%)을 기점으로 뛰기 시작해 지난해 9월∼올해 1월 20%대, 지난 2월과 3월은 40%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3.8% 상승했다.

 

24일 사과 3~4개에 1만원 가격표가 붙어 진열돼 있는 서울 경동시장의 과일가게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2024.3.24. 연합뉴스

이처럼 과일을 비롯한 먹거리 관련 생활물가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이날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나온 장관들의 물가 진단과 전망은 아무리 총선이 코 앞에 닥친 상황이라고 해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아무리 총선이 코 앞이라지만...

회의를 주재한 최 부총리는 "세계 주요국 물가 흐름을 보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마지막 단계에서 굴곡 있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4월부터 기상여건이 개선되고 정책효과가 본격화되면서 물가가 빠르게 안정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역대급 상승률을 기록한 먹거리 관련 물가를 대하는 경제 수장의 진단으로는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평가다. 기재부는 먹거리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가격안정자금을 계속 투입하겠다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 농축수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하겠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대책에 전문가들은 되레 부작용을 우려한다. 정부의 농산물에 대한 지원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지원이 수요를 부추기면서 경제학적으로는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며 "원래 사과 가격보다 덜 오른 것 같은 '착시효과'가 발생해 사과를 더 사 먹게 된다"고 했다. 특정 과일 가격이 아니라 전체 물가 상승세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이맘때 소비자물가 지수가 높았는데 올해도 3%대 상승률이면 2년 누적으로 볼 때 물가가 엄청나게 오른 것"이라며 "정부가 상반기에 재정 조기 집행하고 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총수요가 센 상황이라 물가 상방 압력이 높다"고 염려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31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을 찾아 농축산물 유통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2024.3.31. 연합뉴스

송 장관은 나아가 통계청 물가지수 발표에 정부의 할인 지원이 반영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장 소비자는 체감물가가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고 강변했다. 송 장관은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통계를 인용해 지난달 하순 사과 소매가격은 10개 기준 2만 4726원으로 중순보다 8.8% 내렸고, 배도 10개당 3만 9810원으로 7.0% 하락했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와 하늘과 땅 차이다.

"역대급 상승" - "오히려 내려" 엇갈려 정책 신뢰 바닥에 떨어져

통계청은 aT의 통계가 정부와 유통업체의 ‘할인’이 반영돼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aT의 집계에는 정부 할인 지원이 반영되지만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통계에는 반영되는 않는다는 얘기다. 농산물 할인은 해당 마트 회원이나 특정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에 한정돼 통계청 조사에 할인 가격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조사 표본도 크게 다르다. 통계청의 조사 대상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외에 슈퍼마켓, 백화점 등을 포함 모두 포함하는 반면, aT는 전국 23개 도시 50개소의 대형마트 34곳과 전통시장 16곳만을 조사한다. 정부 부처간 필요에 따라 조사 방법과 범위가 다를 수 있지만 어디는 역대급 상승을 했다고 하고, 어디는 오히려 하락했다고 하면서 정책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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