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마구 풀면서 물가 잡겠다? 이러니 “경제 바보 정부!”

농산물·외식·공공요금…서민물가 고공행진

미국·유럽은 통화량 줄었는데 한국만 증가

총선용 돈 풀기와 무분별한 부자 감세 결과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고통은 서민들 몫"

2024-03-08     장박원 에디터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7일(현지시간) 또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이날 상원 청문회에 참석해 금리 인하를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게 호재가 됐다. 그는 “인플레이션(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이 2%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 확신이 더 들기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그 지점에서 멀지 않았다”고 했다.

이처럼 미국이 물가 목표치에 접근하며 금리 인하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불안을 겪고 있다. 농산물과 외식, 공공요금 등 서민 생활과 직결된 물가는 모두 큰 폭으로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 안팎이지만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다. 고공 행진하는 물가 탓에 직장인의 실질 임금과 대다수 국민의 처분 가능 소득은 확 줄었다.

 

지난해 소득은 1.2% 증가에 그친 반면 먹거리 물가는 6.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2024. 1. 1. 연합뉴스

이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 차이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2022년 이후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과감한 양적 긴축을 단행하며 시중 통화량을 축소한 데 반해 윤석열 정부는 어정쩡한 수준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경기 부양과 감세로 시중에 돈을 풀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산출하는 시중 유동성 지표인 광의통화(M2) 지수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OECD는 2015년 통화량을 100으로 놓고 각국의 광의통화 지수를 매월 산출해 공개한다.

광의통화는 협의의 통화(M1)인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외에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금과 적금, 수익증권,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2년 미만 금융채, 2년 미만 금전신탁 등을 포함한다. 통상 광의통화는 시중에 풀린 자금의 유동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OECD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광의통화 지수는 2022년 11월 171.2까지 오르며 OECD 회원국 평균인 171.0과 역전됐다. 그 이후 한국의 광의통화 지수는 계속 상승했고 OECD 회원국 평균은 하락했다. 그 결과 가장 최근 수치인 지난해 7월 한국의 광의통화 지수는 173.4까지 올랐고 OECD 회원국 평균은 169.2로 떨어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지난해 9월 기준 미국의 광의통화 지수도 172.3으로 한국보다 낮았다.

선진국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한국의 시중 유동성 흐름은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통화 및 유동성’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평균 광의통화량은 3925조 4000억 원으로 11월보다 0.8%(29조 7000억 원) 늘었다. 작년 6월 이후 7개월 연속 증가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1.4%에 그쳤다. 성장률이 둔화하면 시중 유동성도 축소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통화량이 증가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자료 : OECD, 한국은행. 광의통화 지수. OECD 광의통화 지수는 M3 기준으로 협의통화와 만기 2년 미만 예적금, RP, MMF 등을 포함(한국은 M2기준). 유로지역은 크로아티아 편입 전 유로 19개국 기준

이렇게 된 것은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와 경기 부양책을 편 탓이 크다. 한국은행은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2%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도 1년 넘게 기준금리를 3.5%로 묶어뒀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부실화할 수 있고 경기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어정쩡한 수준으로 금리를 동결하는 바람에 민간 부채는 더 늘고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도 폭증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경제 위기를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으로 만든 셈이다.

정부는 더 한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폭등하자 건전 재정을 들먹이며 돈 풀기를 자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자 감세와 대출 완화 등 돈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법인세를 낮추고 부동산 관련 세금을 깎아주는가 하면 지난해 말에는 주식 부자의 세금 부담까지 완화했다. 올해 들어서도 부자 감세의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철회와 투자세액공제 연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례보금자리론 등 각종 정책금융을 통한 돈 풀기도 시중 유동성을 늘린 요인이다. 신혼부부와 청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 취약층 지원을 명분으로 내걸었으나 세부 내용을 보면 중산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고물가를 잡으려면 시중 통화량을 줄여야 하는데도 대출을 늘리다 보니 기업부채와 가계부채 모두 증가했다. 고금리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눈덩이처럼 쌓인 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경제 뇌관과 같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막대한 돈을 풀어야 하는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신선식품(사과, 귤, 배, 토마토) 물가 상승률

사과와 귤 등 농산물뿐 아니라 외식과 공공요금 등 물가가 크게 올라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는 여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못난이 과일을 많이 풀겠다느니 일시적으로 농산물 수입을 늘리겠다느니 식품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규제하겠다느니 당분간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겠다느니 많은 대응 방안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 유동성을 줄이지 않으면 모두 땜질 처방일 뿐이다. 물이 끓어 넘치는데 불은 끄지 않고 뚜껑만 닫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듯이 윤석열 정부 2년의 경제 성적표는 평가하기 민망할 만큼 초라하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과감한 긴축 정책을 통해 물가를 잡고 이제 금리를 내리려는 판에 물가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 현실은 윤석열 정부의 여러 경제 실책 중 하나일 뿐이다.

성장률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특별한 시기를 빼고 가장 낮고, 수출과 내수 지표도 역대 정부와 비교하면 최하위 수준이다. 직장인들의 실질 임금이 줄고 국민의 처분 가능 소득도 감소했다. 집값 띄우기와 감세 혜택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쏠리면서 양극화도 심해졌다. ‘경제 바보 정부’의 정책 실패는 고스란히 서민들 고통으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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