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이란? 김정은엔 '고립 탈출'…윤석열엔 '종속'
윤석열 '북방 정책' 폐기…김정은 곁엔 핵과 중-러
문정인 "북-중-러 구도…북한엔 기회의 신대륙"
북-러 협력 촉발의 장본인은 한·미·일 3국 동맹화
'가치 외교' 한계 보여준 조태열의 첫 순방 외교
블링컨, 북-중-러에 맞선 한-미-일 결속 강조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북핵·북-러 협력 규탄만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첫 해외 순방 외교를 마치고 귀국했다.
조 장관은 지난 2월 21~2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했다. 뒤이어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2주년에 즈음해 23일 진행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고위급회의에 참가했다. 그리고 워싱턴D.C.로 이동해 27일 백악관에서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만났다. 28일엔 미 국무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회담했고, 29일 오전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을 지낸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과 조찬 회동을 가졌다. 열흘 남짓 동안 나름 숨 가쁜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가치 외교' 한계 보여준 조태열의 첫 순방 외교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북핵·북-러 협력 규탄만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 한계를 그대로 보여줬다. 일정과 의제 모두에서 말이다. 우선 G20 회의 기간 조 장관의 회담 일정을 보면, 예상대로 서방국 중심, 특히 미국, 일본에 초점을 맞췄다. 21일에는 일본의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과 양자 회담을 했고, 22일에는 블링컨, 요코와 함께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었다.
G20 회의에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도 참석했지만 외면했고, 중국의 마자오쉬 외교부 상무부부장과는 환담하는 데 그쳤다. 수교 이후 30여 년 만에 최악인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할 생각은 없고, 북한과 밀착하는 러시아를 향해선 적의마저 드러냈다.
그러다 보니 조 장관의 순방 외교 전체를 관통하는 의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날로 밀도를 높여가는 북-러 협력에 대한 규탄과 이를 위해 미·일을 비롯한 서방국의 지지 호소다. G20 회의장에서건, 양자 회담이건 다자 회담이건 시간과 장소, 그 적절성 여부를 가리지 않은 채 틈만 나면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과거 냉전 시대 외교로 되돌아간 모양새다.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21일 한·일에 이어 22일 진행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3국 장관은 북러 군사협력이 한반도를 넘어 국제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임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와 공조해 계속 엄정히 대처하기로 했다. 블링컨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도발적 행동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등 지역적 도전이 증가하고, 중국의 공세적 행동이 점증하는 가운데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우리의 협력과 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과 러시아, 중국 등 북방의 세 위협과 도전에 맞서 남방의 한-미-일의 3국 결속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블링컨, 북-중-러에 맞선 한-미-일 결속 강조
한미, 3국 협력 제도화, 후속 조치 이행 합의
브라질의 G20 외교장관회의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다. 조 장관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일련의 도발, 북-러 군사협력, 그리고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등 불법적 행위에 대해 국제사회의 단호하고 단합된 대응이 이루어지도록 G20의 주도적 역할 주문했다. 그중에서도 당면한 북-러 협력에 대한 규탄에 집중했다. G20가 기본적으로 서구 선진국과 주요 신흥시장국들이 함께 국제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협의체라는 점에서 과연 이런 종류의 발언이 적절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안보리 고위급회의에서도 조 장관은 북-러 간 군사협력은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세계 비확산 체제를 훼손하는 것이라면서 안보리 결의 준수를 촉구했다. 특히 조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 무력 침공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면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총 23억 달러(약 3조700억 원) 규모의 다양한 지원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러시아를 계속 자극하는 행동임은 물론이다.
28일 워싱턴D.C.에선 이번 순방 외교의 총결산에 해당하는 블링컨과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이 있었다. 여기서도 조 장관은 북-러 협력 문제를 부각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한·미는 대러 탄약 및 탄도 미사일 수출 등 복수의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북한의 점점 더 도발적인 언행을 규탄하는 데 있어 일치돼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계속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 8월 한·미·일 정상들의 캠프 데이비드 회담 합의에 따라 "3국 협력의 제도화와 분야별 후속 조치들의 착실한 이행"에 의견을 모았다. 점차 실체를 갖춰가는 북-중-러 삼각 구도에 맞선 한-미-일 남방 삼각 구도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와 동북아에는 자연히 점점 더 '신냉전 구도'로 빠져들 위험성이 커진다.
신냉전, 김정은엔 '고립에서 탈출'…윤석열엔 '종속'
윤석열 '북방 정책' 폐기…김정은 곁엔 핵과 중-러
한반도와 남·북한만 따진다면, 이런 '신냉전 구도'는 어느 쪽에 더 득이 되느냐를 떠나 한반도에 사는 8천만 한민족 모두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다. 계속해서 갈등과 대결, 전쟁을 강요하는 분단 구조의 영구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적 득실의 관점에서 보면, 이 구도는 김정은의 북한에는 고립에서 탈출을, 윤석열의 남한에는 자율에서 종속을 뜻하기도 한다.
북한의 고립은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중국의 개혁·개방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특히 오랜 맹방인 소련(1990), 중국(1992년)과의 전격적 수교란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에 치명상을 입었다. 외교적으로 고립돼 생존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당시 북한은 체제 안정과 유지 차원에서 필사적으로 다양한 방안을 동원했다. 1991년 9월에는 남한과 유엔 동시 가입을 통해 '주권 국가' 자격을 얻었고, 남한과 협상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12월 13일)를 맺었다. 상호 체제 인정과 불가침, 교류 협력 확대가 그 핵심 골자다. 북한은 다른 한편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최대 위협인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담보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필요한 카드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북한은 수백만 명이 아사했다는 '고난의 행군'도 겪었고 최고 지도자도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백두혈통'을 따라 이동했다. 지금 김정은은 핵무기와 이를 실어 나를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양옆에는 다시 러시아와 중국이 서 있는 형국이다. 남‧북한이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 관계"(남북기본합의서)에서 다시 "적대적인 두 교전 국가"(김정은)로 복귀했지만, 북한의 대중, 대러 관계는 '호시절'로 복귀했다. 북한의 전략적 지위는 상당히 견고해졌다. 일례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위반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하고 각종 탄도 미사일 실험에다 군사 정찰 위성을 쏘아 올려도 과거완 달리 중국과 러시아가 '방어'하고 있어 한·미·일과 서방의 비판과 제재에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더구나 김정은과의 관계를 지금도 "좋았다"고 평가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에 재집권한다면 김정은에겐 대미 관계 개선의 길도 열릴 수도 있다.
북-러 협력 촉발의 장본인은 한·미·일 3국 동맹화
문정인 "북-중-러 구도…북한엔 기회의 신대륙"
이 신냉전 구도가 윤석열의 한국에는 득일까, 실일까. 남북 대결을 격화시켜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적대적 공생'을 한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적으론 윤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70년 한미 동맹을 주축으로 한·일 밀착을 통해 군사동맹화를 향한 한·미·일 3국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최강의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게 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 외교'와 '글로벌 중추 국가'를 내세우면서 '제 3자'이면서도 대만 문제로 중국을,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로 러시아를 계속 자극함으로써 두 나라를 떠나가게 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근본 반중국 포위망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축 중 하나가 한·미·일 연대라는 점에서 중국의 반발을 충분히 예상됐던 거였다. 미국의 회유와 압박 아래 윤 대통령이 일제 과거사에 통째로 면죄부를 주며 만들어낸 한일 밀착이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점점 구체화하는 북-중-러 구도를 촉발한 장본인은 미국과 일본이고, 한-미-일이며, 방아쇠를 당긴 것은 한국의 윤 대통령인 셈이다. 문제는 제도화하는 한·미·일 3국 협의 틀에서 한국이 의사결정에선 종속 변수, 실행 측면에서 최전선 행동대의 역할로 전락하고 있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경제적 피해도 뒤따르고 있다.
조태열 장관은 23일 안보리 고위급 회의에서 "북한 군수품과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서 목격되고 있다. 북한이 대가로 받는 것이 첨단 군사기술이거나 안보리 결의 한도를 초과하는 석유 거래인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는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능력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북-러 협력을 우려했다. 북한과 러시아, 북한과 중국을 지금처럼 '밀착'하게 만든 게 한-미-일이란 점에서 이런 발언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4일 공개된 외교 전문지 <더디플로매트>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이 지속되면, 동북아에서 두 개의 대립적인 3각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북방 축은 북-중-러, 남방 축은 한-미-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지정학적 구도는 북한에는 기회의 신대륙을 창출하지만, 한국을 압박해 과거의 냉전이란 섬에 다시 가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안보와 외교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