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공동체를 말살하는 ‘학폭 조사관제’

학내 갈등과 괴롭힘을 사법 영역으로 외주화

교육 포기하고 비전문가에게 수술 맡기는 꼴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겠다는 것인가

2024-02-09     이동갑 한국교원대 교육정책대학원 겸임교수

학교폭력을 사법의 영역으로

‘학교폭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과잉 명명(over naming) 되었다.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갈등과 괴롭힘(bullying)이 정확한 용어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준하는 폭력은 이미 소년법 등의 관련 법에 의해 해결 과정이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청소년들의 다양한 갈등을 사법의 영역으로 외주화하려는 이른바 ‘학교폭력 조사관제’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자 한다. 학교폭력에는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고 심각하다.

망치를 손에 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힘껏 내려칠 못이다. 학교폭력 조사관 2700여 명이 교육지원청 교육장에 의해 선발된다. 이들이 학교에 들어와 그 동안 교사들이 맡아온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조사업무를 담당한다고 한다. 평생 범죄를 수사하던 경찰관들은 학생들의 변명과 조사과정을 자신도 모르게 수사를 하게 될 것이다. 화해와 중재, 상담을 하는 것이 우선될 수가 없다. 퇴직교사들 역시 그 분들이 살아온 학교와 현재의 학교 즉 학생들이 같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매뉴얼에 충실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고 적절한 점수를 부과하여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넘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조사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역동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얼마나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학교폭력을 '외주화'하려는 위험을 교육자라면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 전담 경찰관 역할 강화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12.7 연합뉴스

 

비전문가에게 수술을 맡겨서는 안 된다

미성년자인 청소년들은 발달과정에 따라 다양한 문제행동을 한다. 다수의 학생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갈등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고 바람직한 행동과 태도를 배우는 것이 교육 과정이다. 이 과정은 사실상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도 우리나라는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명칭의 법을 제정하여 인성교육마저 가정에서 학교로 외주화했다. 학원에서 친구들과 싸워도 학교폭력이고, 집에서 언니가 동생을 때려도 학교폭력이다. 이러한 학교폭력은 소녀들의 폭력이 다르고 소년들의 폭력이 다르며, 특수아 혹은 이주민 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다르다. 학생들의 성장과정과 환경에 따라 가해자의 폭력양상이 다르고 피해자의 대처 방식도 다르다. 이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교사의 양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교육적으로 해결하고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제를 함께 다루는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외과수술처럼 정교해야 하고 정신과 진료처럼 정확한 심리진단과 처방이 필요한 전문영역이다. 이를 일주일간 교육을 받은 조사관들이 학교에 배치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일주일간 훈련을 받은 의사를 수술실에 들어가게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교원단체의 환영과 그 본질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교원단체가 학교폭력 조사과정에서 아동학대 신고 등의 우려를 외주화하는 이 제도에 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교육의 존재 이유와 교사로서의 보람과 사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교폭력 조사 과정에서의 아동학대 논란이나 교내 학교폭력 전담교사 혹은 상담교사를 배치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교사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려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으로 보완해야 할 일이다.

이제 많은 교사들이 친구들과의 크고 작은 갈등을 겪는 학생들의 사례를 마주하고 너무나 쉽고 간편하게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화해와 용서를 들먹이며 교육적 해결을 시도하려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제거되었다. 교사의 감정노동이 하늘 위의 승무원처럼 학생과 학부모의 모든 형태의 갑질을 예방하려는 매뉴얼로 무장될 수 있게 되었다. 의료사고를 예방하려는 의료진처럼 교육에서 오는 모든 형태의 법적 위험을 방어하려는 일부 교원단체의 그림자가 안타깝다. 교권을 강화하는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교사의 가르침과 태도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퇴계 선생은 교육의 목표를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며 남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을 살펴 사회의 공동선에 기꺼이 기여하는 군자(선비)가 되는 것이라 하였다. 오늘날 우리 교육의 목표는 명문대학교 입시 외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학교폭력 조사를 받은 학생들의 공포

친구들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학교폭력 조사관에 의해 조사받은 학생들은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연약한 토끼처럼 애처로울 것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건당 18만 원을 받는 조사관들은 보고서를 쓰는 데 특화되어 있을 것이다. 해결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자 혹은 변호사를 소개해 줄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윤리적으로 혹은 제한된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사가 아닌 이른바 조사관이라는 어른한테 상담이라기보다는 취조에 가까운 조사를 받고 나면 학생들을 무엇을 경험할까? 그 경험이 부모에게 전달되면 그 부모는 어떻게 대응할까? 학생들은 경직된 분위기의 조사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정성이 가득한 거짓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왜곡된 기억(필자는 이를 '기억의 소용돌이'라고 부른다)으로 조작할 수 있다. 기억은 단계마다 증폭되고 왜곡되어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분노는 에스컬레이트되어 부모의 개입을 부른다. 학교폭력 조사관제의 뒷문에는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 혹은 로펌들이 학교 주변에 집중적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학교에는 이제 두 종류의 학생들이 존재하게 된다. 학교폭력 조사과정을 거친 자기방어가 가능한 학생들과 그 부모들, 아직도 어린이다운 정직함과 용서와 화해의 가치를 믿는 문화지체급의 아이들 그룹이다. 자녀들의 갈등과 싸움에 화해와 용서의 가치를 믿는 소수의 학부모들이 화석처럼 존재할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 정치 지도자들이 매일 매스컴에서 되풀이 하고 있는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거나 상대방의 음해에 대해 고소를 하는 것을 조기교육 받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법정전염병인 말라리아가 있다. 모기에 의해 전염되며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일 년에 수십만 명이 죽는다. 말라리아의 해결을 위해 더 독한 모기약을 개발하여 집집마다 매주 월요일 보급하고, 그립감 넘치는 전기 모기채를 나누어 준다. 심지어 모기 잡기 대회를 하고 원터치 모기장을 개발한다. 너무 애쓰지 마라.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가 서식할 수 있는 더러운 물웅덩이를 없애면 될 일이다.

학교폭력이 일어난 다음의 처리를 위해 이토록 많은 노력을 하게 된 것은 현 교육부장관이 2012년 첫 번째 장관을 하면서 도입한 학교폭력 엄벌제가 그 시작이다. 그때부터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교육할 전문가를 양성할,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돈들지 않고 생색낼 수 있는 강력한 한방 “자그마한 폭력도 범죄로 보고 관용을 허락하지 않겠다”라는 태도로 교육을 외면한 대가가 아닌가?

학교에서 학교폭력 업무는 기피업무, 3D 업무가 되어 신규 아니면 전입교사가 담당하고, 교육청에서는 신규장학사가 담당하며 1년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는 비전문가 대량생산의 문화를 만들어 온 것을 외면하지 마라. 본질은 이것이다. 공감하는 학생들을 길러야 한다. 친구들과 자신의 고민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시간을 수업시간을 통해 배워야 한다. 이러한 공감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정확하게 사과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작은 잘못을 사과하고 큰 잘못은 용서를 구하며 매우 큰 잘못은 사죄를 하여야 마땅하다. 이를 통해 잘못은 회복되고 성장의 또 다른 기회가 된다. 학교폭력을 넘어 성장의 에너지를 전환하게 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해결책 제안

학교폭력법은 가장 폭력적인 법이다. 폭력은 가장 손 쉬운 해결방법이다. 크고 작은 갈등을 모두 법의 잣대로 재어 고소인과 피의자를 만드는 법이다. 학교폭력예방법에는 예방이 없다. 오직 대처 및 처벌에 관한 규정만 넘쳐난다. 학교폭력 예방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의무나 노력이 이 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필자는 학교폭력예방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커리큐럼을 제안(이동갑·유경희, 학교폭력을 넘어:외상후성장으로, 2021, pp. 120~125)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두 명씩 6개월간 학교폭력예방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게 하는 전문가를 양성하여야 한다. 한시적으로 3년이면 각 시·도마다 12명의 전문가가 양성되고 이들이 교육지원청의 전문가를 양성하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6개월 학교폭력과 관련한 다양한 이론과 실무, 예방과 대처방안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지원청에 소속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에 대한 제대로 된 연수와 실습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판도라 상자를 열었으니 ‘학교폭력조사관제’가 그것이다. 독이 가득한 복어 요리를 위해 전문자격 없는 요리사들이 칼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다.

지금이라도 학교에 배치될 학교폭력전담조사관의 선정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자질향상을 위한 충분한 연수와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활동 수당이 건당 18만 원이라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임시적인 방식이다. 학교폭력 사안 한 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및 그 부모에 대한 상담은 물론 담임교사 등과 면담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보고서 작성 시간은 별도이다. 적어도 제대로 한 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5~10시간이 필요하다. 건당 18만 원, 참 쉽게 간다. 책상 위에서 행정을 하다 보니 이런 용감한 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인다.

걱정도 아깝지만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왕에 정책을 시행하였다면 투명하게 시행하고 무엇보다 이들을 전문가로 양성할 방안을 함께 시행하라. 이를 담당할 예산과 인력을 추가로 배치하라. 생각만 하지 말고 실행하라. 말은 물 위에 쓴 글씨지만 실행은 바위에 새긴 조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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