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두 개 국가론과 윤석열의 책임
2개 국가론 출발점은 남측 6.23 선언
국가 개조 진행 중…체제 안정이 목적
'후계구도 제도화' 추진할 것으로 예상
윤석열 정부 대북강경론이 빌미 제공
새해 벽두에 김정은 위원장의 핵폭탄 선언이 공개되었다. 김정은은 당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 국경선 획정 방침과 북방한계선(NLL) 불인정, 핵전쟁 시 한국 전영토 평정 등 대남노선을 근본적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속조치로 조평통, 민족경제협력국(옛 민경협),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통일추진기구를 폐지했고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범민련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등 남북민간교류에 관여해 온 단체들을 모두 정리했다.
김정은의 핵폭탄 선언에 대해 미국 전문가들은 한반도전쟁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국내외 언론들도 이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고 있다. 미국 측 시각에서 본다면, 남북한은 국제법적으로 이미 2개 국가관계이니, 한반도 전쟁이 미·중 전략경쟁이나 향후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 미칠 영향만이 그들의 관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김정은의 ‘통일, 화해, 동족’ 부정과 2개 국가론이 한민족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김일성 "2개 조선 조작 책동" 비난
사실 2개 국가론을 제일 먼저 제기한 것은 남측이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6.23선언)을 발표하면서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면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제조건이 붙긴 했지만 명백한 2개 국가론이었다. 이에 대해 김일성 주석은 ‘2개 조선 조작 책동’이라면서 비난을 퍼부으며 ‘고려연방공화국’이란 단일국호로 유엔에 가입하자고 주장했다.
유엔 회원국 자격이 독립된 주권국가라는 점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국제법적으로 두 개의 국가로 인정받게 됨을 의미한다. 한국은 1949년 1월부터 8번이나 유엔 가입을 시도했지만, 소련의 거부권 행사와 안보리의 무관심으로 무산됐다. 결국 1990년 9월 한·소 수교와 10월 한·중 무역대표부 개설 합의로 위기감을 느낀 북한이 1991년 5월에 유엔 가입 의사를 밝혔고, 1991년 8월 유엔안보리 15개국 전원이 남북한의 회원 가입 권고결의안을 통과시켜 9월 17일 같은 날 유엔총회에서 회원국이 되었다.
그럼에도 남북한은 분단극복과 민족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며 1개 국가론을 고수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남북한은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평화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각종 회담과 교류협력을 진행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관리해 왔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냉전이 해체되고 남북의 국력 격차가 커지자, 체제 위기를 느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사태는 복잡하게 흘러갔다. 북한은 체제보장을 위해 핵 포기를 카드로 삼아 협상에 나왔고, 마침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회의 창’이 열렸다. 하지만 끝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이후 남측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은 닫힌 ‘창’을 아예 시멘트로 봉해 버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남북관계 패러다임 전환의 적기로 판단한 듯
민족이나 통일은 북한 노동당과 정권을 지탱해 온 정체성의 핵심이다. 북한의 대남노선 전면 전환이 한국에 대한 열패감 때문이냐 자신감의 발로냐를 둘러싸고 국내 북한 전문가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평가할 일은 아니다. 북한 정권의 대남노선 목표가 김일성의 체제경쟁에서 김정일의 체제수호, 그리고 김정은의 체제안정 순서로 변화해 온 것이라는 점에서, 북측은 지금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김정은은 2017년 11월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2018년에 들어와 단계적 비핵화 카드를 들고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회담이 결렬되면서 두 개 국가관계로 남북관계 패러다임 전환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한층 구체화했다. 그는 당대회 결정문에서 “통일이라는 꿈은 더 아득히 멀어졌다”고 말한 뒤 당규약을 개정하며 ‘남조선해방’ ‘통일’이라는 단어를 없앴고 당원의 의무에서도 ‘통일을 앞당기는 투쟁’을 삭제했다.
김정은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각종 첨단미사일에다가 군사정찰위성을 보유하게 되면서 외부의 안보 위협은 억제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2018년 신년사에서 북한이 ‘세계 공인의 전략국가 지위’에 올라섰다고 말한 데 이어, 2019년 8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국군은 북한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2019년 12월 당 전원회의와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도 ‘전략적 지위 확대 강화’를 강조했고, 이번 당 전원회의에서도 ‘전략적 지위를 최상의 높이“에 올려놓았다고 자평했다.
김정은은 현 국제정세도 북한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과 다극화 추세 속에서 북한은 북·러 밀착, 더 나아가 북·중·러 북방 3각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우호적인 국제환경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올해로 수교 75주년 ‘친선의 해’를 맞이하는 북·중관계는 2023년 북·중 교역액이 전년 대비 123% 증가한 20억 달러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82% 수준으로 복구되었다. 동병상련의 북·러 관계도 러시아의 연해주 농업기지 제공과 단체관광 개시, 그리고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전면적인 협력관계로 발전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국제사회 제재 속 자력갱생 성과
지금 북한에서는 대남노선의 전면 전환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 걸쳐 국가 개조가 진행 중이다. 북한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발전의 추진이다. 김정은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와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 흉년으로 인한 식량난에 의한 경제위기 속에서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고 말했다. 2020년에 비해 국내총생산(GDP)이 1.4배 늘어났고, 알곡 생산이 103%를 달성, 목표치를 넘기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속에서 자력갱생을 통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국내정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역 간 격차 해소를 내세운 점이다. 중앙-지방 격차 해소를 위해 매년 20개 군(郡)에 현대식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10년 동안 지방 전체로 확대해 인민의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높이겠다는 ‘지방발전 20×10정책’을 내놓았다. 이 정책의 추진을 위해 비상설 중앙추진위원회를 정식 발족하고 최측근 조용원 당 조직비서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지방공장의 건설·운영에 필요한 재정과 설비, 자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정치변화의 특징은 정권의 인민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보다 민주주의적으로 개선한다는 명분 아래 대의원 선거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작년 8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가 개정한 대의원선거법에 따라, 11월 26일에 실시된 도·시·군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2명의 복수 후보를 내세우고 선거자 회의에서 다수를 얻은 후보자를 선출하는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향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도 확대 적용될 것인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제 북한에 남은 과제는 어떻게 체제안정을 제도화할 것인가이다. 실제로 체제안정을 좌우하는 것은 후계 구도의 제도화이다. 유일지도체제의 지도자였던 스탈린이나 모택동 사후 소련과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됐지만, 최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2022년 10월 당대회에서 연임제한을 철폐하고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를 무력화하면서 영구집권을 꾀하고 있다. 중국과 달리 북한은 김일성 사후에도 3대 세습을 하면서 유일지도 체제를 이끌어 왔다.
2026년 제9차 당대회가 주목되는 까닭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여 있고, 한국과 첨예하게 적대하고 있으며, 국가 규모가 작고 중앙집권제 전통이 강한 북한에서 집단지도체제가 성공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유일지도체제를 현실적 대안으로 삼는 것 같다. 하지만 유일지도체제 하에서 권력 계승은 자칫 내부 권력투쟁을 촉발하고 체제 공멸을 가져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후계자 문제를 중요한 정치과제로 삼고 있다.
북한 핵심 엘리트들은 체제안정을 위해 유일지도체제뿐 아니라 그 자리에 김씨 가문의 인물이 앉을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1973년 이후 김정일 후계구도가 확립된 뒤 김일성-김정일 이중권력체제가 존속되다가 김일성 사후에야 김정일 유일영도체제가 되었다. 김정일은 제대로 후계체제를 마련해 놓지 않고 있다가 와병 이후에야 졸속으로 김정은을 후계자로 옹립하면서 체제 위기를 겪었다.
2011년 4월 김정은 정권이 공식 출범하고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후견정치가 이뤄졌지만, 결국 권력투쟁에 밀려 장성택은 2013년 12월에 전격 처형되었다. 아무리 김정은의 고모부이지만 김씨 가문이 아닌 인물이 권력의 중심에 서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아직 김정은의 나이가 젊을 때 후계체제를 제도화해 놓지 않으면,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언제라도 권력투쟁이 벌어질 수 있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이미 제도화된 수령제, 유일영도체제에서 형태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김씨 일가의 권력을 영구히 보장하는 방식으로 정치체제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원수이자 당 총비서가 주권과 안전을 책임지며 내각이 국정 전반을 담당하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나 태국이나 전쟁 전의 일본식 입헌군주제가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은 세습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대안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북한이 정치체제의 전환을 추진한다면 제9차 당대회가 열리는 2026년이 목표가 될 것이다.
적대적인 남쪽 정부가 환경 제공
김정은의 두 개 국가론은 이미 2017년 11월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내세웠을 때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전면화했고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두 개 국가관계를 본격적으로 검토하다가 마침내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계속되자 최종적으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으로서는 두 개 국가론을 공식화하고 김씨 가문 중심의 후계구도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와 같은 적대적인 정부가 필요했다. 화해와 평화를 내건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두 개의 국가 관계, 교전국 관계’를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가 아닌 독립된 주권국가 관계이고,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해 화살을 남쪽에 돌라는 것이 후계구도의 제도화를 위한 정치체제 전환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김정은이 부담 없이 두 개의 국가관계, 교전국가 관계를 말할 수 있었던 데는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크다.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며 ‘힘에 의한 평화’를 내걸고 한미일 안보협력에 시동을 건 윤석열 정부의 진영외교와 대북 강경정책은 오히려 북·중·러 3각 공조의 형성을 가능케 하고 ‘두 개의 국가 관계’ 구상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내걸었다. 하지만 신정부 출범 뒤 1년 8개월이 지난 현재 상황을 볼 때 북한의 각종 ‘도발’을 억제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핵미사일 개발을 단념시키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그나마 위기관리체제로 기능해 온 ‘9.19 남북군사합의’마저 파기하면서 한반도 평화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김정은이 비록 적대적 2국가 관계를 선언했지만, 우리가 2국가론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평화통일을 장기적 과제로 두더라도 현 단계에서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공존의 남북관계로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화적 관리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할 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힘에 의한 평화를 내건 ‘담대한 구상’의 실패를 자인하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