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시대와 노동 혐오, 그리고 경제비상사태

2022-12-05     최배근의 통찰
최배근 건국대 교수

대통령과 여당은 민주주의가 못마땅하다. 모든 국민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 불편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조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로, 파업 중인 화물운송 노동자의 헌법적 기본권을 무시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정도로 노동을 혐오한다. 지난 수백 년의 산업문명 역사를 돌아보면 노동권의 확장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공진화를 가져다주었다. 노동권 확장의 역사는 민주주의 발전 과정과 동의어였고,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퇴보를 막아주는 생명수 역할을 하였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정치체제, 즉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체제이다. 민주주의도 초기에는 재산과 인종과 성별의 차이나 문맹 수준 등에 따라 국민의 권리 행사에 차별을 두었다. 그런데 산업문명 사회에서 대다수 국민은 노동자이다 보니 국민 간 차별은 (강제노동, 아동노동, 장시간 노동, 노동 현장에서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 등) 노동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났다. 즉 부당하고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노동의 권리를 시정하는 과정이 민주주의 발전 과정이었다. (보통선거를 바탕으로 의회민주주의 실시를 요구한) 차티스트운동을 노동자계급이 주도한 이유이다.

둘째, 역사적으로 노동의 권리 확장은 시장경제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실제로 아동노동 착취나 장시간 노동 등이 만연하였던 19세기 시장경제는 오늘날 시장경제와 비교해 야만적(후진적)이었고, 19세기의 시장경제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의 경제발전은 상상조차 어렵다. 시장경제는 효율성을 지향하고, 효율성 달성은 공평한 경쟁을 전제로 하는 반면, 초기의 시장은 돈의 힘이 지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노동의 권리 확장에 비례해 기울어진 운동장은 공평한 경쟁의 장으로 진보했다는 점에서 노동권 확장과 민주주의 발전은 시장경제의 진보에 기여하였다. 오늘날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실질적 대등성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로 노동3권을 헌법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이유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 및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교육기회의 확대에 따라) 기술진보와 생산성 향상, 그리고 경제성장 등을 달성할 수 있었듯이 시장경제는 노동권의 확대와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진보해왔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공진화는 양자가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산업화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의 원칙 위에서 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신분제적 특권 및 억압에 기초한 봉건제적 농촌경제에서 자유의 공기가 흘렀던 도시경제로의 주도권 교체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도시경제의 자본이 필요로 하는 임금노동자 확보를 위해서는 (당시 이주가 자유롭지 못한 신분적 예속민이었던) 농민을 신분적으로 해방시켜야만 했다. 자본의 자유는 노동의 자유를 전제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의 생명력은 노동과 자본의 균형 있는 공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간 견제와 균형에서 나온다. 견제받지 않는 자본의 독재는 자본주의 체제의 활력을 고갈시키고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런 점에서 화물연대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은 자본의 법적 권리가 노동의 헌법적 기본권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고다. 노조를 혐오하고 파업을 범죄행위로 보는 ‘한국형’ 보수집단을, 서구 보수집단과 달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존재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동 혐오 정부가 불확실성 시대를 만날 때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권력은 위기관리의 취약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심지어 위기를 조장한다. 위기관리는 사회 구성원의 협력과 연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만, 민주주의 혐오 권력은 특권층에는 친화적이지만, 노동에 적대적이기에 필연적으로 사회를 파편화시킨다. 그 결과 위기 대응 능력은 떨어지고, 위기가 심화하며 노동자 등 서민의 불안이 증대하지만, 권력은 특권층에게만 지원을 집중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는 가속화하고 사회경제는 파국을 향한다.

10월 23일 이후 자금(돈)은 정부에 의해 배분되고 있고, 자금 가격인 금리를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정부 개입과 통제가 사라지는 순간 자금시장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기재부가 10월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가진 이후 한 달 만인 11월 28일 또다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 정도로 정부 스스로 현재의 경제와 금융을 비상 상황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 비상사태를 정부가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정부에서 수출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미 무역적자(426억 달러)는 외환위기 직전 규모(206억 달러)의 두 배를 넘어섰다. 외환위기 이후 수출이 감소했던 연도가 여섯 번이 있었지만, 수출이 감소해도 무역수지는 흑자였다. 그런데 최근 수출 감소는 대규모 무역적자를 수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악성이다. 게다가 부동산시장 경착륙과 건설업계 줄도산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경제와 금융의 비상 상황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황당한 점은 11월 24일부터 시작한 화물연대 파업을 비상사태에 대한 핑곗거리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1월 20일까지 올해 무역적자의 75%가 넘는 301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최근 파업을 시작한 화물연대에게 수출 위기를 떠넘길 정도로 파렴치하다.

이처럼 경제와 금융의 비상 상황은 노동과 민주주의 혐오 정권에서 예견된 일이었다. 사실 문재인 정부 금감원은 올해 2월 14일 새해(2022년도) ‘업무계획 보고’에서 부동산 등 자산시장 충격과 취약차주 부실화, 그리고 대내외 자금조달 여건 악화 우려 등, 실제로 올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주요 사안들을 대비해야 할 핵심 과제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반문재인을 ‘사실상의 국정목표’(?)로 표방한 윤석열 정권은 업무 인수조차 하지 않다 보니 한전 사태를 해결하기보다 민영화 기회로 삼았고, ‘잘못 낀 첫 단추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첫째, 문재인 정부에서 유가(WTI 기준)는 한국경제에 바람직한 가격(?)이라는 60달러대가 지속하였다. 전기료가 2017년과 2019년 연속 후퇴한 배경이다. 팬더믹 충격에서 벗어나 경제활동이 정상화로 돌아가며 지난해 6월부터 유가가 추세선을 벗어난 이후에도 (팬더믹 상황의 경제적 어려움과 대선 국면으로) 전기료 인상을 미루었고, 그 결과 한전의 영업손실이 표면화하였다. 정부 재정이 투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금 차입은 불가피했고, 지난해 6월부터 시장에는 대규모 한전채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6월부터 윤석열 정부 출범 전까지 16조6,604억 원의 한전채가 발행된 이유다. 올해 4월, 전기료의 소폭 조정은 영업손실을 막기에는 언발에 오줌누기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다시 16조8,500억 원의 한전채가 발행된 배경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전기료 현실화와 더불어 한전 적자 보전 및 취약계층 지원 등을 위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했으나 민영화와 공공기관 자산 매각 등에 정신이 팔려 한전 문제를 방치한 것이다. 문제는 한전채의 대규모 발행이 회사채에 대한 구축효과로 작용하는 등 자금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5월 26일부터 회사채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로 전환한 이유다.

둘째, 5월부터 부동산시장의 냉각도 본격화하면서 부동산PF 대출에 대한 우려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금감원은 한참 후인 7월부터 2금융권 대상으로 점검을 시작하였고, 그것조차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손을 놓았다.

셋째, 5월부터 30여년 만에 대중 무역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하면서 무역적자에 대한 우려가 부상하였다. 외교 참사의 후폭풍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무역흑자 기조의 정착에 효자 역할을 해온 대중 무역흑자가 적자로 전환되며 무역적자 시대의 도래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넷째, 수출(물류) 및 부동산PF 대출 사업 등과 깊은 관련이 있는 화물연대가 6월 7일부터 파업을 시작하였다. 2020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안전운임제가 올해 말로 만료되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국토부와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파업은 8일 만에 종료하였다. 그러나 연말이 다가오는데도 정부의 외면으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간 압박에 몰린 화물연대는 11월 24일 다시 파업으로 자신들의 절박한 상황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였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위기 방치와 위기 조장 속에서 위기의 싹은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9월 28일 김진태가 폭탄을 투하하면서 자금시장은 사실상 붕괴하고, 신용위기 상태로 급진전한 것이다. 여기에 금감원이 사실상 합작(?)한 흥국생명 사태는 해외자금 조달도 어렵게 만들었다.

노동 혐오 프레임은 부메랑

사회경제적 위기는 윗목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뒤늦게 자금 배분에 개입하고 자금거래의 가격인 금리에 개입한 것은 (김진태 사태 이후) 위기가 아랫목으로 확산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행의 지원 속에 은행과 금융회사가 대기업 위주로 자금 지원을 해주는 배경이다. 미국 금융위기 과정에서 리먼 파산 이후 연준 개입의 초기 모습이다. 차이라면 ‘한국형’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한국형’은 미국은 모든 자금시장과 주택시장이 살아날 때까지 연준이 거의 6년간 달러를 투입할 수 있었던 반면 한국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차이를 의미한다. 그만큼 지원 대상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원 범위 밖에 있는 중소기업의 도산이 확산하고 있는 배경이다.

3분기 실질 국민총소득도 지난해 12월 말에 비해 14조 원이 줄어들었다. 3분기 전체 가계의 실질소득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배경이다. 한국은행이 대기업 지원에만 골몰할 뿐 물가안정을 포기한 결과다. 한은 물가 목표치의 기준인 핵심 인플레율의 상승세가 멈춰지지 않고 있다. 향후에도 가계 실질소득 감소는 불가피함을 말한다. 문제는 은행 자금도 조만간 소진된다는 점이다. 2020년 이후 지난주까지 은행이 은행채로 조달한 자금(순발행액)은 79조 원인 반면, 이번 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은행이 상환해야 할 채권 잔액은 126조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절대 잊지 마시라!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에게 지원한 공적자금 169조 원 중 아직도(6월 30일 기준) 50조 원이 회수되지 않고 있지만, 취약계층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이나 (기껏해야 집 한 채 가진 것으로 자신이 자산가인 양 착각하는) 쁘띠부르주아 등은 노동과 민주주의 혐오 정부에게 지원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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