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수 백화사전] ㉝도쿄에 내리는 OOO 눈

일본 작가들이 핵과 원전 쓰는 이유는

핵재앙에 대한 문학적 경고이자 기록

2024-01-20     이승호 에디터

미국이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뒤로 일본 작가들은 소설 등 작품으로 핵의 위험을 알리는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온 전통이 있다. 이런 작품들은 원폭문학, 원전문학으로 부른다. 두 개념을 묶어 핵문학으로 부르자는 사람도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이후 작가들은 다시 핵문학에 눈을 돌렸다. <풀하우스> 등의 작품으로 한국에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재일 한국인 작가 유미리도 그런 작가들 가운데 하나다. [편집자주]

 

1945년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  U.S. National Archives

(2) 유미리의 <우에노역 공원 출구>

유미리는 2012년부터 6년간 후쿠시마현에 있는 재난방송 ‘미나미소마 재해FM’에 출연, 600여 이재민의 사연과 마주했다. 방송을 계기로 그는 2015년 후쿠시마 원전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했다. 자신만 ‘안전 지대’에 피해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유미리는 방송을 통해 접한 숱한 사연과 이사한 곳의 주민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소설로 써냈다. 바로 <우에노역 공원 출구>다. 주인공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노숙자다.

유미리는 작품 발표 당시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충격적인 진실을 알리기도 했다. “결국 방사능 오염제거 작업에 투입되는 건 최저임금이 싼 오키나와 지역에서 데려온 노숙인들입니다. 당뇨병, 알코올 중독, 간경변 등을 앓다가 죽어도 실제 이름이 달라서 본인 확인도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족을 찾지 못해서, 마을의 절에서 유골을 맡아두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21.3.12 중앙일보)

‘일본 핵피아’의 음모 그려낸 소설도

와카스기 레쓰의 소설 <원전 화이트아웃>은 일본 핵피아를 고발한다. 정치인, 관료, 전력회사 고위층 등으로 구성된 핵피아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재가동을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민다. 음모는 성공할까. 작가는 뒷얘기를 <도쿄 블랙아웃>에서 풀어 놓는다. 원전은 결국 재가동된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도쿄에 시커먼 방사능 눈이 내린다.

이노우에 미쓰루의 소설 <플루토늄의 가을>의 주인공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는 어느날 자신이 피폭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권력은 그의 피폭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서해원자력발전소>에도 피폭 노동자가 등장한다. 규슈 지방의 한 지역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된 원전이 건설된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서로 갈등하고 반목한다. 와중에 노동자들은 피폭 희생자가 된다.

다카시마 데쓰오의 <스피커 원전 점거>는 줄거리가 특이하다. 어느날 테러리스트가 거대 원전을 점거한다. 테러리스트의 손아귀에 들어간 원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더 불안한 것은 테러리스트가 베일 속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원전이 터진다면 일본은 어떻게 될까. 일본은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즈카미 쓰토무의 <고향>은 먹먹하다. 뉴욕에 둥지를 튼 일본인 부부가 음식점을 열어 먹고 살만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노년에 이른 부부는 인생의 남은 시간을 고향 일본에서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노부부가 찾은 고향 땅은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원자력발전소라는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가쓰야 마사히코의 <디아스포라>는 지옥도를 보여준다. 그 섬은 지옥이 됐다. 원전 사고 때문이다. 일본은 더 이상 사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난민이 되어 세상의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논픽션과 시도 있다

소설만 있는 게 아니다. 가도타 류쇼의 <죽음의 끝을 본 남자-요시다 마사오(1955-2013)>와 <후쿠시마 제1원전>은 논픽션 작품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2019년 <후쿠시마 50>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와카마쓰 조타로는 수십년간 핵피아의 악행을 고발해온 ‘후쿠시마의 시인’이다. 그가 쓴 <행방불명된 마을>은 1994년 8월 체르노빌 원전사고 현장에서 직접 본 참상을 알리는 시다. 시의 내용은 17년 뒤 일본 후쿠시마에서 재현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시를 ‘예견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의 또 다른 시 <부조리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디스토피아가 된 일본을 절망적으로 노래한 초혼가라 할만하다. 시인은 원전 사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희생자들을 불러낸다.

우문현답을 해보자. 왜 일본 작가들은 핵과 원전사고 등을 문학의 주제로 삼을까. 이 우문에 대한 현답은 ‘거대한 재앙에 대한 문학적 경고이자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 ‘핵오염수 백화사전’ 마지막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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