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 문장을 바꿔야 공직사회가 바뀐다

[관료의 나라 17] ~함, ~음, ~임 등 끝맺음은 일제 잔재

2024-01-03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각종 보고서를 작성할 때 거의 100% ‘~함’이나 ‘~음’ 또는 ‘~임’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형태를 취한다. ‘~다’로 문장을 끝맺는 일반적인 서술식 문장이 아니라 이른바 ‘개조식’ 문장이다.

이러한 ‘개조식’ 문장 방식은 일반적으로 문장을 짧게 끝내고 요점만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고 이해되면서 공직 사회의 공문서는 물론 기업의 보고서에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개조식’ 문장 구조가 우리 사회 관료 집단의 권위주의와 무책임성을 증폭시키는 데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작동되어 왔다고 판단한다.

글이란 어떤 형식과 틀에 의하여 쓰느냐에 따라 그 내용 또한 상이하게 되며, 동시에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 역시 달라지게 된다. 관행화된 특정의 문장 형태는 그에 따른 관행화된 특정의 문화와 의식구조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것을 어떤 집단에서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특수한 집단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자체로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의 의식도 총체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즉, 문장의 형식은 내용을 규정하며 나아가 글쓴이와 읽는 사람의 생각마저 규정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이 ‘개조식’ 문장은 결국 관료 집단 및 기업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 문화와 무책임성의 의식구조를 형성시키는 데 중요한 토대로 작동해왔다.

 

‘~함’, ‘~음’ 문장은 일제 잔재

그런데 ‘~함’, ‘~음’, ‘~임’으로 문장을 끝맺는 형태의 문장은 일제 강점기를 전후로 하여 우리나라에 이식되어 강요되었다.

을사늑약, 모두 ‘ᄒᆞᆷ’으로 끝나는 ‘개조식’ 문장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양 제국을 결합ᄒᆞᄂᆞᆫ 이해공통의 주의를 확고ᄒᆞ게 ᄒᆞᆷ을 원ᄒᆞ여 한국의 富强之實을 인정ᄒᆞᆯ 시에 이를 때까지 此 목적으로써 左個 조관을 약정ᄒᆞᆷ.

제1조 일본국정부는 재동경 외무성에 由ᄒᆞ여 금후에 한국이 외국에 대ᄒᆞᄂᆞᆫ 관계와 사무를 감리지휘ᄒᆞᆷ이 可ᄒᆞ고 일본국의 외교 대표자와 영사는 외국에 재ᄒᆞᄂᆞᆫ 한국의 신민과 이익을 보호ᄒᆞᆷ이 可ᄒᆞᆷ.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간에 현존ᄒᆞᄂᆞᆫ 조약의 실행을 완전히 ᄒᆞᄂᆞᆫ 任에 當ᄒᆞ고 한국 정부는 금후에 일본 정부의 중개에 由치 아니하고 국제적 성질의 갖는 하등 조약이나 또한 약속을 아니ᄒᆞᆷ을 約ᄒᆞᆷ.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 한국 황제폐하의 闕下에 1명의 統監을 두되 통감은 專혀 외교에 관ᄒᆞᄂᆞᆫ 사항을 관리ᄒᆞᆷ을 위ᄒᆞ여 경성에 주재ᄒᆞ고 친히 한국 황제폐하에게 내알ᄒᆞᄂᆞᆫ 권리를 가짐. 일본국 정부는 또한 한국의 각 개항장과 기타 일본국 정부가 필요로 인정ᄒᆞᄂᆞᆫ 곳에 이사관을 두는 권리를 갖되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하에 종래 재한국 일본 영사에게 속ᄒᆞ던 일체 직권을 집행ᄒᆞ고 아울러 본 협약의 조관을 완전히 실행ᄒᆞᆷ을 위ᄒᆞ야 필요로 ᄒᆞᄂᆞᆫ 일체사무를 掌理ᄒᆞᆷ이 가ᄒᆞᆷ.

제4조 일본국과 한국 간에 현존ᄒᆞᄂᆞᆫ 조약과 약속은 본 협약 조관에 저촉ᄒᆞᄂᆞᆫ 者를 除ᄒᆞᄂᆞᆫ 외에 모두 그 효력을 계속ᄒᆞᄂᆞᆫ 者로 ᄒᆞᆷ.

제5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ᄒᆞᆷ을 보증ᄒᆞᆷ.

右 증거로 ᄒᆞ여 下名은 각 본국 정부에서 상당ᄒᆞᆫ 위임을 받아 본 협약에 기명 조인ᄒᆞᆷ.

光武 9년 11월 17일 외부대신 朴齊純

明治 38년 11월 17일 특명전권공사 林權助

비극적인 <을사늑약>의 전문이다.

모든 문장이 ‘ᄒᆞᆷ’으로 끝나고 있다. 이른바 ‘개조식(個條式)’ 문장이다.

일제 강점기의 ‘의식’을 그대로 계승하는 관료집단

오늘날 우리 공직 사회에서는 모든 보고서가 이런 ‘~함’이나 ‘~음’ 그리고 ‘~임’으로 끝맺음을 하는 개조식 문장이다. 그 누구도 고등학교 교육 때까지 이런 문장 방식을 교육받지 않았지만, 공직 사회에 진입하면 천편일률적으로 이런 개조식 문장이 강제된다. 그리고 공직사회의 영향으로 일반 사회에서도 상당히 널리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제는 1894년 발발한 동학농민혁명을 빌미로 하여 조선에 무단 진출하여 군대를 동원, 경복궁을 습격하여 점령하고 고종을 감금하면서 이른바 <내정개혁방안 강령 5개조>를 강요하였다. 당시 설치된 군국기무처가 주도하여 일본식 관료제도인 <의정부 관제안>이 시행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공문서를 근대적으로 개편한다는 명분 하에 칙령 제1호로 이른바 ‘공문식(公文式)’을 제정하였다. 이 <공문식>에 의하여 칙령과 의정부령, 각부령(各部令) 등 근대적 법령이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 모든 문서사무 방식은 일본의 방식을 철두철미 모방하도록 하였다. 내각을 비롯한 각급 기관에서 공문서를 작성할 때 일본인 고문이 모든 문서를 검토하고 결재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그 일본인 고문 중에는 일본 포병 소좌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기안문(起案文)을 비롯한 모든 공문서에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대일본제국 헌법」을 비롯하여 ‘강력한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체를 강제로 적용시켜 문장의 끝은 ‘~ᄒᆞᆷ’으로 끝나게 된 것이다.

구한말 당시 우리 전통 문장엔 ‘~함’ 방식이 없었다

본래 우리나라 문장은 “~ᄒᆞᆷ”으로 끝나는 방식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구한말 시기의 문서를 살펴보면, 순한문 문장의 시기를 지나 한글이 사용되던 초기의 거의 모든 글들은 ‘~ᄒᆞ니라’ 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일제 침략을 개탄하며 자결했던 민영환 등이 1902년에 기초한 <육군법률부제규정(陸軍法律附諸規定)>의 제1조를 보면, “본 법률은 현역군인의 범죄 자에게 시용(施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명칠(李命七)이 저자인 『산학통편(算學通編)』도 모두 “~니라”, 혹은 “ᄒᆞ니라”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리고 대신들이 왕에게 보고하는 상주문은 ‘~다’의 형식으로 되어있었다.

반면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대일본제국 헌법」을 비롯하여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문어’ 문장들은 이를테면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함(天皇ハ陸海軍ヲ統帥ス, 「대일본제국헌법」 제11조)”나 “규정에 따라 청원을 행할 수 있음(規程ニ従ヒ請願ヲ為スコトヲ得, 「대일본제국헌법」제30조)” 등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다’를 생략하고 ‘~함’, ‘~음’으로 문장을 맺는 형태였다.

한편,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효율적 식민통치를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강행하였다. 다음은 당시 토지신고 방법을 규정한 <토지신고심득(土地申告心得)>의 내용이다. 국한문을 사용하였다.

제1조 토지조사법시행세칙 제2조의 신고서ᄂᆞᆫ 본 심득에 의ᄒᆞ야 조제ᄒᆞᆷ이 가ᄒᆞᆷ.

제2조 사단, 재단 급 공공단체 우ᄂᆞᆫ 묘, 사, 단, 전, 사, 원 등의 소유에 계ᄂᆞᆫ 토지의 신고서ᄂᆞᆫ 기관리인으로부터 차를 제출ᄒᆞᆷ이 가ᄒᆞᆷ.

제3조 이해관계인으로부터 신고ᄒᆞᄂᆞᆫ 경우에ᄂᆞᆫ 기관계 급 신고의 사유를 구ᄂᆞᆫ 서명 병 기토지에 관 증빙서류를 첨부ᄒᆞᆷ이 가ᄒᆞᆷ. 단 이해관계인이 수인 되는 시ᄂᆞᆫ 모조록 연서ᄒᆞ야 신고ᄒᆞᆷ을 요ᄒᆞᆷ.

제4조 소유권에 관ᄒᆞ야 분쟁이 유 토지의 신고서에ᄂᆞᆫ 기요령을 기ᄒᆞᆫ 진술서 관계지의 약도 급 증빙서류를 첨부ᄒᆞᆷ이 가ᄒᆞᆷ. 단 소송계속중에 계(한의 고어) 자ᄂᆞᆫ 기요점 기소번호 급 기소연월일을 진술서에 기재ᄒᆞᆷ을 요ᄒᆞᆷ.

제5조 신고서ᄂᆞᆫ 1동리를 통ᄒᆞ야 1도에 조제ᄒᆞ고 연속(한의 고어) 토지ᄂᆞᆫ 차를 1구역으로 ᄒᆞ야 기재ᄒᆞᆷ이 가ᄒᆞᆷ.

역시 모두 “~ᄒᆞᆷ”으로 문장을 끝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공직사회는 이러한 ‘개조식’의 문장 형태를 일제가 물러난 후에도 일제 강점기 시대와 전혀 변함없이 계속 계승해 사용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지휘계통란 결국 문서로서 표현되는 것이다. 문서의 형식은 그 조직의 ‘정신’과 ‘의식’ 그리고 ‘문화’가 직접적으로 투영된다는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왜 일제가 ‘~ᄒᆞᆷ’의 ‘문어체’ 혹은 ‘개조식’ 형태를 강요했겠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신성불가침한 존재로서의 권력의 표현으로서 강력한 권위주의의 형식으로써 민족과 창의의 정신과 의식을 억압, 강압하고 상명하복과 관존민비의 복종을 강요하고자 했던 까닭에서다. 결국 우리 공직사회는 여전히 상명하복, 관존민비의 권위주의 문화를 전혀 단절하지 않고 계속 재생산해온 것이다.

일제 잔재로서 전근대적 권위주의의 상징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도 ‘~함’, ‘~음’으로 끝맺음하는 이러한 문장 방식은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법률만이 아니라 공문서에서도 완전히 폐지되어 현재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식민통치를 위해 시행되었던 ‘~ᄒᆞᆷ’의 ‘개조식’ 권위주의 문장 형태와 ‘이사관’, ‘서기관’ 등의 ‘조선 통치관’ 명칭을 이 나라의 공직사회가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받아 재생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공직사회의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부끄러운 행위이자 전근대적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이 나라를 내일로 전진시키는 데 큰 장애물이다. 이제 정말 우리 공직사회는 ‘일본’으로부터 진정 벗어나야 한다. 개조식 보고서에서 탈피하고, ‘이사관’과 ‘서기관’과 같은 치욕의 명칭을 폐기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함’, ‘~음’으로 끝맺는 공직사회 보고서 문화, 권위주의와 책임소재 실종 초래

‘~함’ ‘~음’ ‘~임’ 등으로 끝맺는 문장 방식은 우선 우리 국어의 온전한 문장 구성을 저해하고 기형화시킴으로써 우리 국어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조식 문장은 작위적으로 글을 ‘강제’ 완료시키면서 오히려 글이 번잡해지거나 비문(非文)이 출현하고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본래 명사화소(명사형 어미) ‘~(으)ㅁ’은 ‘확정성’이나 ‘결정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문장 마지막에서 ‘~함’이나 ‘~음’으로 끝내는 문장의 경우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강화된다. 특히 ‘~함’이나 ‘~음’ 혹은 ‘~임’으로 끝나는 문장 방식은 정상적으로 글을 완료하지 않고 스스로 서둘러 결론을 내려 끝을 맺음으로써 읽는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을 지향하는 대신 일방적으로 명령자 혹은 규정자 입장의 권위주의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한다.

또한 이러한 개조식 문장은 대부분의 경우 주어가 생략된 채 전개됨으로써 글의 내용이 과연 글쓴이의 주장인지 아니면 타인의 주장을 인용한 것인지 애매하게 얼버무리기에 부합하는 문장 구성이기 때문에 결국 보고서 작성자의 책임 소재가 실종된다.

마지막으로 이 개조식 문장은 정식으로 주석을 표시하지 않은 채 타인의 주장과 논리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표절에 둔감한 사회를 조장하게 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한 언론사 기고문을 통하여 정부 등 국가기관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개조식 문장이 주어가 분명치 않으며, 문장의 기능이 명료하지 않고, 문장 간 논리적 연관성이 명료치 않으며 무엇보다 격조가 없다고 논파한 바 있다.

문체(文體) 개혁 운동이 필요하다

이제 문장 혹은 문체(文體) 분야의 개혁이 실천되어야 한다. 이 역시 국가 기본의 재구축을 위한 일환이다. 일제 잔재로서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권위주의와 무책임성을 초래하는 ‘~함’과 ‘~음’ 방식의 개조식 문장을 지양하고 ‘~다’로 끝나는 서술식 문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공직사회의 ‘개조식 보고서’ 형식은 하루바삐 바뀌어야 한다.

모르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바로 알면서도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 회 기술한 봉황 휘장에 관련해 현재와 거의 흡사한 봉황 문양이 그대로 사용된 일제 강점기의 상장을 증거로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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