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개를 무는 비상식'과 언론의 몰상식

[12월 셋째주 키워드] 갑자기 폭증한 한동훈 보도

여당 비대위원장 직행한 한동훈 장관 '비상식'에

주류언론 대부분 '미화'…엉터리 여론조사도 인용

낯부끄런 권력 찬양…권력 감시 '상식'은 어디로?

2023-12-25     김성재 에디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언론은 희귀하고 예상치 못했던 일을 좋아한다. 상식적이고 뻔히 예상되는 사건은 뉴스가치가 떨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기자들은 개가 사람을 무는 것보다는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사를 쓴다. 한국 사회가 ‘역동적’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렇게 사람이 개를 무는, 비상식적이고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비상식적 사건이 화제의 뉴스가 되려면, 적어도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과 뉴스를 읽는 독자가 상식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언론과 독자가 똑같이 비상식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이 개를 무는 비상식적 사건이 무슨 대단한 뉴스가 되겠는가?

지난 한 주 언론이 주목한 인물을 꼽으라면 이론의 여지없이 한동훈이었다. ‘일개 장관’인지 ‘일국의 장관’인지 그 무게를 알 수 없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총선을 앞두고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은 임기 1년 6개월여만에 여당 대표를 두 번씩이나 ‘날려버렸고,’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그의 최측근 검사 후배는 하루아침에 스스로 장관직을 ‘날려버리고’ 여당 비대위원장에 앉았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에서 상식적인 일일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를 쓰는 언론은 이 비상식적인 정치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2월16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간 기사 검색서비스인 ‘빅카인즈’에서 ‘한동훈’ 검색어로 13개 전국단위 주요 일간지(10개 종합지+3개 경제지)를 검색한 결과, 915개 기사가 쏟아졌다. 같은 조건으로 검색한 한 주 전 기사량(296개)에 비해 3배 정도 늘었다.

‘한동훈’ 키워드 언급량 순위도 언론 뉴스 분아에서는 167단계나 뛰어 3위에 올랐다.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이보다 더 큰 폭으로 언급량이 증가해,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한동훈’ 키워드가 언급량 1위까지 치솟았다. (아래 표) 

 

언론에서 ‘한동훈’ 관련 기사와 키워드 언급량이 ‘크게’ 늘어난 이유와 디지털 플랫폼에서 ‘더 크게’ 늘어난 이유는 조금 다르다. 언론은 한동훈의 여당 비대위원장 직행이라는 비상식적 사건을 ‘비상식적’이라고 보고 전달하기보다는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나아가 대단히 잘된 일인 것처럼 미화해 보도했다. 한동훈의 언행이 ‘비상식(상식이 아님)’이라면, 언론의 보도는 이 ‘비상식’을 비상식으로 보지 않는 ‘몰상식(상식이 전혀 없음)’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이런 ‘몰상식적’ 보도에 시민들은 '사람이 개를 물기라도 한 것'처럼 기가 막혔을 것이다. SNS와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서 언급량이 치솟은 것은 바로 이런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언론이 한동훈의 여당 비대위원장 직행을 극진히 미화하면서 마치 그가 정치적으로 큰 일을 맡아 해낼 것처럼 보도한 사례를 보자. 12월22일 주요 신문의 사설 제목은 다음과 같다.

“한동훈 비대위, 중도 아우르는 혁신 면모 보이길”(서울신문)/ “한동훈 비대위, 광폭 쇄신과 당정관계 재정립으로 외연 넓혀라”(서울경제)/ “한동훈, 기성 정치꾼 흉내말고 보수 정체성 확립해야”(한국경제)/ “한동훈 비대위, 대통령과 관계에 성패 달렸다”(조선일보)/ “한동훈 비대위원장, 대통령에게 할 말 하고 혁신 속도내야”(세계일보)

여러 언론들의 찬양 기사는 부끄러울 정도다.  ‘비정상적’인 정치검찰 한동훈을 '팬덤 몰고다니는 아이돌' '보수의 미래' '보수의 메시아' '구원투수' 등으로 찬양했다. 왕조시대나 독재치하에서나 볼 수 있는 찬양가사들이다.  

“한동훈, 데뷔 전부터 ‘팬덤’ 몰고 다녀..벼랑끝 국힘 아이돌 될까”(매일경제), “50세 한동훈에 보수 미래 맡겼다”(조선일보)/ “보수의 메시아가 된 ‘조선 제일검’ 한동훈은 누구”(머니투데이)/ “‘조선 제일검’ 불렸던 한동훈...이젠 국민의 힘 구원투수 등판”(국민일보)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를 비롯해 매일경제, 세계일보, 헤럴드경제, 조선비즈, 이데일리, MBN 등은 ‘한동훈=이순신’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 “한동훈 국힘당 비대위원장 지명자가 법무부장관 재직 마지막 날 한 고교생에게 ‘모비딕’이라는 책을 선물했다”는 미담 기사를 전하면서 한동훈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관한 ‘비상식적’인 여론조사도 발표됐다. 여러 언론은 이를 ‘상식적’인 것처럼 태연히 인용·보도했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 보도의 제목은 “차기 대권주자 첫 양자대결...한동훈 45%·이재명 41%”였다. 단박에 야당의 이재명 대표를 앞선 것이다. 

이 여론조사는 비상식적이며, 이를 보도한 언론도 몰상식적이다.  여론조사를 수행한 회사는 이름도 생소할 뿐 아니라 그간 주요 고객이 극우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인 ‘고성국TV’와 ‘뉴데일리’이며, 업체 대표가 국힘당 소속 출마자였다는 사실은 언론에 나타나있지 않다. 오마이뉴스 임병도 시민기자가 23일 "한동훈 띄워주기? 이상한 여론조사 결과보도" 제목의 기사에서 이런 비상식적 보도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여론평판연구소’의 조사결과를 인용보도했던 언론사가 소수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번 한동훈 전 장관 지지율 보도는 매우 이례적이다. 언론이 한동훈 전 장관에 우호적인 여론조사 결과만 선택적으로 보도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전했다.

임병도 기자는 또 TV조선이 ‘한국갤럽 조사결과 한동훈 장관의 2030세대 선호도가 1년전 5%에서 올해 12월 18%로 올랐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한동훈을 띄워주기 위해 그래프를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18%’는 20대와 30대 지지율을 합산해서 계산한 것인데 일반적인 여론조사에서 연령대 지지율을 합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동훈의 ‘비정상적’인 언동을 언론이 ‘비정상적’이라고 제대로 보고 기사를 썼다면, 이런 억지보도와 엉터리보도는 나올 수 없다. 여야를 떠나 정치인에 대해 늘 거리를 두고 냉정을 지켜야 할 기자들이 쓴 찬양기사는 낯부끄럽다. 이런 억지보도, 엉터리보도, 찬양 기사는 모두 여론을 호도하고 조작하기 위한 언론의 못된 행태들이다. 요즘 1천만 관객 기록을 달성한 '서울의 봄'의 주인공 '전두광'을 찬양한 조선일보의 1980년 ‘인간 전두환’ 기사가 과거 대표적 사례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중앙일보 정도가 사설에서 정치검사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의힘 혁신 끝이 ‘검사 대통령·검사 비대위원장’인가”(경향신문)/ “한동훈 비대위로 용산 직할체제 구축한 윤 대통령”(한겨레)/ “한동훈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 비대위원장 잘 할 수 있을까”(중앙일보)

‘일개 검사’로 일하다가 갑자기 ‘일국의 장관’이 되고, 다시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한동훈에 대해 뉴스를 다루는 상식적인 언론의 보도 태도는 어때야 할까? 언론은 먼저 문제가 되어온 그의 말과 태도부터 따져봐야 했다. 기자의 정당한 질문에 '민주당이 이런 질문하라고 시켰나요?'라고 답변하는 이런 무례함, 몰상식, 비정상에 대해 비판했어야 한다. 법무장관 재임시절의 무능과 과오, 정치인으로서 그의 기본적인 자질 등에 대해서도 평가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누가 봐도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언론의 할 일, 즉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 아닌가?

시민의 상식은 ‘언론이 비상식적인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한동훈 전 장관 또는 현 국힘당 비대위원장의 ‘비상식’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것은 ‘몰상식’한 것이다. 정치와 정치인들의 비상식적 언행뿐만 아니라 이를 보도하는 이 나라 주류언론들의 몰상식 때문에 '원칙과 상식'을 지키며 살고싶어하는 시민들의 걱정과 분노는 더욱 커진다. 요즘 SNS를 보면 ‘일부 정치인들처럼 언론도 시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거친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빅데이터 여론분석 전문기업인 <스피치로그>의 ‘주간 키워드 분석’을 매주 게재합니다. ‘주간 키워드 분석’은 한 주 동안 보도된 뉴스, SNS, 커뮤니티, 유튜브 등 언론과 디지털 공간에서 나타나는 전체 여론의 동향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시민들이 개인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이고 활발히 소통하며 새로운 공론의 장을 만들어 가는 시대에 SNS, 커뮤니티, 유튜브에서 나타나는 키워드 분석은 민심의 동향을 보다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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