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비대위' 성공 바라는 '보수' 언론의 주문

신중론과 함께 성공 바라는 훈수 내놓고 있어

"제2의 노태우가 성공 비결, 윤과 선 긋기 필요"

지난 대선 이상으로 필사적으로 지키려 할 것

'대화법' 모르는데 정치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2023-12-20     이명재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보수’ 언론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사실상 현 윤석열 정권의 2인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여권의 선두주자로 떠올라 있는 그의 상품가치가 궁지에 몰려 있는 여권에 상당한 반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검찰 출신에 '윤석열 대통령의 아바타'라는 이미지가 큰 족쇄가 될 것이라는 염려가 교차하고 있다.

‘보수’언론들이 '한동훈 비대위 불가론'으로 비칠 수도 있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보인다. 조선일보가 지난 18일 사설에서 "정치를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현직 장관 신분인 사람이 곧장 뛰어드는 것이 적합한지는 의문이며, 여당 대표까지 검사 출신이 맡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생각해야 하고, 비대위 구성마저 대통령 눈치를 살핀다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라고 한 것이 이 같은 기류를 대변한다. 동아일보가 15일 사설에서 "집권여당의 비대위 구성에서 어떤 윤심도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긋지 않는 한 위기의 타개는 난망일 것"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논지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2023.12.19 연합뉴스

한동훈 비대위장 신중론은 조선의 18일 사설이 “전도유망한 인재를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 게 보수 진영은 물론 나라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라고 했듯 자칫 유력한 대선 카드가 비대위장을 맡았다가 큰 타격을 받을까봐 염려하는 심경에서도 비롯된다.

'한동훈 비대위'가 언론에 던지는 난제

위기의 여당을 이끌 강력한 선장으로서 필요하나 한편으로는 '윤석열 분신'이라는 낙인하에 실족해버릴 수 있다는 불안의 공존. '한동훈 비대위'가 보수 언론에 던지는 어려운 난제다.

‘보수’ 친윤 언론들은 한동훈 비대위장 등장에 대해 이같이 복합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동훈 비대위장'이 결국 현실화된다면 이를 필사적으로 비호하고 밀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한동훈 비대위가 확정돼 가동에 들어가면 이들 '보수' 언론은 '윤석열 정권 2기'를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라는 점이다. 한동훈 비대위를 지키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위기에 처한 보수 기득권의 공동운명체 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수 언론의 기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칼럼이 중앙일보 19일자 아침에 실렸다. <한동훈식 6·29 선언은 가능한가>라는 이 신문 정치부장의 칼럼은 ‘한동훈판 승부수’를 펼쳐 보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칼럼은 한동훈이야말로 오히려 ‘큰형님’처럼 자신을 품어 주었던 윤 대통령에게 때론 쓴소리하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며, 여권엔 금기어가 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입장 표명도 할 수 있다면서 ‘제2의 6·29 선언’을 하겠다는 각오를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 칼럼에는 ‘한동훈 비대위’의 효능과 기대효과, 그에 대한 보수 언론의 그림이 함께 제시돼 있다.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항쟁에 밀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인 6·29선언을 당시 정권 2인자였던 노태우 민정당 총재가 발표해 차기 대선에서 결정적인 발판이 됐던 것처럼 '제2의 노태우 효과'를 노리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실정(失政)의 핵심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돌파구로 삼으라는 얘기다.

'보수' 언론의 계산은 ‘한동훈 비대위’의 최대 자산은 윤석열 정권의 실정이라는 역설에 가 닿는다. 윤 정권에 대한 성적표와 기대치가 바닥이라는 현실이 오히려 한동훈 비대위에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빠질 것도 없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는 한동훈 비대위가 경미한 개선과 변화로도 상당한 득점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이를 테면 기저효과이며 착시 효과인 셈이다.

중앙일보의 위의 칼럼은 이 같은 훈수이며 주문인 한편 한동훈 비대위에 적극 협력 지원할 것이라는 공언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거의 일관되게 보여왔던 윤석열 정권에 대한 칭송과 지지를 한동훈 비대위에도 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주문과 요구이기도 하다. 노태우-전두환의 관계처럼 한동훈 비대위와 적절히 타협하고 내주는 모양새를 취하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윤석열 꼬리 자르기'도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제2의 노태우'가 되라는 메시지에는 윤석열에게 경우에 따라서는 한동훈에게로 과실이 돌아갈 수 있도록 악역도 맡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잠복돼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윤석열 자신을 보호하는 자구책이라는 메시지다. 기득권력의 유지라는 지상 과제를 위해 ‘윤석열 없는 윤석열 정권 2기’를 감수하기도 해야 한다는 주문인 것이다. 이미 ‘김건희 리스크’ 제거를 위해 김건희 씨에게 사저로 물러나라는 ‘무례한’ 요구까지 하고 나선 이들 ‘보수’ 언론이다. '사전에 합의된 꼬리 자르기' '허가된 도발'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며, 그 계산된 꼬리자르기와 도발을 '보수' 언론은 개혁과 변화로 포장하고 미화할 것이라는 언질이다.

이렇게 옷을 바꿔 입고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것으로써 변화와 개혁으로 포장하는 것이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 성패를 점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한동훈 비대위에 대한 '보수' 언론의 지원이 총력전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내년 총선에 대한 보수 기득권 세력의 위기감은 지난 대선 때를 방불케 할 정도의 전력을 다한 지원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 언론 전폭적으로 후원하겠지만

'보수' 언론의 전폭적인 후원, 이것이 한동훈 비대위의 가장 큰 자산이다. 관건은 그가 그 같은 후원을 받아 안을 준비가 돼 있냐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한동훈 비대위장에 대해 ”선거 실무와 당무 경험과 이해가 부족한 점이 약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19일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그의 장관직 거취를 묻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그것은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될 것 같다”고 답한 것에서 거듭 확인되는 것은 그의 문제는 정치 실무 경험의 부족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정의 안정적인 운영과 예측 가능성 차원에서 장관직의 계속 여부를 국회의원이 질의한 것을 특유의 말재간으로 비아냥거리듯 답변한 것에서 고위공직에 대한 이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당무 경험'이 부족해서 문제인 정도라면 공직에 대한 이해는 아예 결여돼 있는 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 답변이 드러내는 더욱 큰 문제는 공직에 대한 몰이해보다도 '정치'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의 결여에 있다. 정치는 말로 이뤄진다고 할 때의 '대화'를 제대로 하는 법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에 있다.

중앙일보의 칼럼에서 그의 큰 강점인 듯 얘기된 ‘큰 형님의 총애'를 받아 만들어진 그의 지금의 입지는 짧은 시간에 급조된 것이다. 애초에 그의 출발은 스스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었다. 최고권력자의 지원하에 유리한 출발을 했던 그가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되기까지에는 그의 '말'이 큰 요인이 됐다. 전투적이며 싸움질하는 듯한 그의 말재간이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받으며 그를 일약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 '말'의 힘만으로 과연 복잡다단한 정치의 무대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원서로 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전쟁사이자 정치학서이기도 한 이 책에서 페리클레스가 얘기한 '민주주의'와 국가지도자의 조건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을지 모를 일이나 그에게 지금 그 책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헌법 조문에서 민주주의와 고위공직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 그리고 정치의 기본으로서의 '대화법'을 배우는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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