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박정희의 '마약과의 전쟁' 공통점

과거와 현재, 두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닮은꼴

박, 유신독재 연장 위해 '연예인 대마초 사건' 기획

윤, 수십만 명 촛불시위에 놀라 '마약과의 전쟁'?

2023-11-09     이승호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1년 7월 2일 ‘전 검찰총장’ 신분으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 기념재단을 방문했다. 2021.7.2. 윤석열 캠프

박(정희) 대통령은 2일 법무부 순시에서 “연예인들은 물론 학생사회에도 대마초가 상당히 흘러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다른 사건보다 이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대마초 흡연을 근절하라고 지시. 박 대통령은 또 “반사회적, 반시국적 범죄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되 현행법으로 단속하기 곤란한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이런 행위를 어떤 방법으로 단속할 수 있을 것인지도 연구해보라”고 당부. (경향신문 1976.2.3)

윤 대통령은 이어 ‘마약과의 전쟁’을 언급하며 “우리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새 우리 주변으로 깊이 침투하고 있는 마약 범죄 역시 마약사범이 연소화되고, 초범 비율이 증가하는 상황인 만큼 유관기관은 물론,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22.10.21)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가 지난해 10월 21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77주년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 유지 수단으로 마약 동원 ‘의혹’

앞글은 박정희 대통령의 동정을 알리는 기사, 뒷글은 윤석열 대통령의 경찰의날 축사를 전하는 기사다. 과거와 현재의 두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독려하고 있다. 두 기사의 시차는 반세기에 가깝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두 대통령 모두 초강경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현행법으로 단속하기 곤란한 경우’에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단속하라고 지시한다. 법 위반을 해도 좋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실제 ‘전쟁’이라는 말을 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두 대통령 모두 정권 유지 수단으로 마약을 동원했다는 의혹이다. 박 정권은 1970년대 중반 ‘연예인 대마초 사건’을 일으켜 침소봉대하거나 확대과장했다. 윤 정권은 요즘 배우 이선균 씨와 가수 권지용 씨(지드래곤) 등 연예인 마약 사건을 정권 유지를 위해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에게는 이미 마약으로 연예인 때려잡던 박정희 정권과 ‘범죄와의 전쟁’을 이용해 공안정국을 만들었던 노태우 정권이라는 모범이 있다. 윤석열 정권은 집권 초부터 문재인 종북몰이, 이재명 흙 묻히기, 범죄/마약과의 전쟁을 3대 기조로 잡은 것으로 보였다. 나아가 ‘대장동 범죄자 이재명, 불법폭력 집단 민주노총, 마약유통과 조직폭력’을 싸잡아 묶으며 “범죄와의 전쟁”(국민의힘 권성동)을 말하는 노골성을 보이기도 했다.

시민언론 민들레의 전지윤 편집위원이 지난 7일 쓴 <이선균·지드래곤…무엇을 위한 ‘마약과의 전쟁’인가>의 한 부분이다.

 

인혁당재건위사건 관련자 8명의 사형이 확정되자 울부짖는 가족들…1974년 4월 9일,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인혁당재건위 혐의로 구속된 여정남 등 8명이 사형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 집행을 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1959년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진보당 조봉암 사형 집행과 더불어 2대 사법살인으로 남아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예인 때려잡던 박정희 정권’ 

전 위원의 안내에 따라 먼저 ‘연예인 때려잡던 박정희 정권’ 시절로 가보자.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유신정권은 집권 연장을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박 정권은 1975년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박정희 입장에서는 명운을 걸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투표였다. 그것도 압도적 표차로 이겨야 했다.

박 정권은 불법적인 ‘유신헌법 찬성 캠페인’을 벌였다. ‘국민투표법’을 어겨가며 문화공보부를 통해 ‘국민투표 지도 계몽용 책자’를 만들어 살포했다. 유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어 퍼트렸다. 어용언론과 어용방송을 동원했다. 그 엄혹한 시절에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정부가 방송망을 통해 찬성운동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불순하고 부당한 것”이라는 항의 성명을 내놓을 정도였다. 1970년대 중반의 정권 기획 작품인 ‘연예인 대마초 사건’은 이런 와중에 터졌다.

 

박정희 정권 시절 충남 대전에서 열린 ‘국민투표 지도 계몽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당시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참고해 통계를 살펴보자. 1975년 11월 12일부터 한달간 검찰 단속으로 검거한 사람은 모두 71명이었으며 이중 구속된 사람은 44명이었다. 구속자들의 직업을 보면 가수와 악사(19명), 판매책(9명), 유흥업소 종업원(10명, 여성 8명 / 남성 2명), 대학생(2명), 무직(2명), 배우(1명), 다방 DJ(1명) 등이었다. 1975년 11월 26일부터 1976년 1월 20일까지 대마 사범으로 단속 대상이 된 사람 가운데 ‘연예인’은 모두 54명이었다.

박 정권은 밤무대에 서는 무명의 악사나 가수까지 연예인에 포함시켰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통상적 의미의 대중 연예인이 아닌 사람까지 ‘연예인’ 범주에 넣은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도 뻔하니 설명은 생략하자.

박 정권은 ‘연예인’ 등 대마 사범이 ‘사회의 공적’이므로 마약 척결은 ‘사회정의 구현의 길’이라고 홍보했다. 당시 박정희의 동정기사에도 나오 듯 정권은 ‘연예인’들에게 ‘반국가 사범’ ‘반시국 사범’ ‘반사회 사범’ 등의 프레임을 씌웠다. 언론과 방송은 나팔수 노릇을 했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대부분 벌금 10만∼20만 원의 가벼운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다.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은 사람도 징역 1년에 집형유예 2∼3년 정도였다. ‘연예인 대마초 사건’은 용두사미였다. 침소봉대와 확대과장에 따른 사필귀정이었다.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는 ‘대마관리법’이 발효된 것은 1976년 4월이었다.

 

 와이티엔 뉴스 화면 갈무리

윤석열 ‘마약과의 전쟁’ 발언 다음날 촛불시위 참가자 30만 명

다시 시계를 앞으로 돌려 2022년 5월 10일로 가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날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얼마 뒤부터 정권을 비판하는 각종 시위와 맞닥뜨렸다. 처음에는 시위의 규모가 작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커졌다. 시위 빈도도 잦아졌다.

윤 대통령 취임 약 3개월 뒤인 8월 6일부터는 시위 양상이 달라졌다. 촛불행동 주최의 촛불대행진이 서울 청계광장 일대에서 토요일마다 열리기 시작했다. 시위 참가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늘어났다. 윤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발언 바로 다음날인 10월 22일에는 전국 단위의 11차 촛불대행진이 열렸다. 시위 참가자는 주최측 추산 기준 30만 명이었다.

국민적 저항에 윤 정부는 큰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윤 정부가 돌파구로 삼은 것은, 다시 전지윤 위원의 말을 빌면 윤석열 정권에게는 이미 마약으로 연예인 때려잡던 박정희 정권이라는 모범이 있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