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과잉이라고? 윤석열의 정치 부재가 문제다
대통령이야말로 '정치'의 가장 큰 주체인데
자신의 일과 역할 부정하는 말 …정치혐오 편승
전날 야당과의 협치 기대 하룻만에 뒤집는 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국민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한 많은 말은 그의 평소의 발언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 투성이라는 것, 또 국민의 말을 경청한다고 하고서는 대개 대통령의 일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리가 돼 온 그간의 전례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다만 이날의 대화에서 무엇보다 특징적이었던 것은 ‘정치 과잉’을 되풀이해서 얘기했다는 것인데, 비상경제민생회의라는 이름의 이 만남에서 그는 예산 구조조정의 어려움으로 정치과잉 탓을 들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지지도의 하락 등 정치적 곤경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을 여기에서 찾기라도 한 듯이 정치과잉을 거듭 지적하고 비판했다.
"(예산을) 불요불급한 걸 좀 줄이고 정말 어려운, 서민이 절규하는 분야에다가 재배치를 시켜야 되는데 이에 죽기살기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퇴진 운동을 한다"면서 이런 현실을 '정치과잉 시대'라고 개탄했다.
그는 이 같은 애로를 하소연하면서 ‘정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이런 정치과잉 시대에 유불리를 안 따지고,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 그리고 어려운 분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자신과 서민들이 ‘정치 과잉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처지가 비슷하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듯하다.
지난 1년 반 동안 그가 이끄는 정부가 일관되게 보여준 '반 서민, 친 부유층' 정책들을 떠올릴 때 그의 입에서 민생이니 서민이니 ‘서민들의 절규’라는 말들이 발설되는 것이 불러 일으키는 당혹감은 차치하기로 한다. 다만 그가 새롭게 발견해 낸 용어인 듯 정치과잉이라는 말을 반복해 쓰는 것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말은 그의 ‘정치’에 대한 시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대통령의 일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대통령인 그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적잖게 드러내는 것이어서 그의 정치에 대해, 앞으로 그가 펼쳐보일 국정 운영의 방향에 대해 상당한 '이해’의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의 과잉을 탓하고 비판했는데,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의 큰 문제, 그 문제들의 많은 원인은 정치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부재에 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정치 부재, 정치 실종에 있다. 그리고 그같은 정치 부재의 상황을 만들어온 것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이가 바로 대통령인 그 자신이다. 그가 지난 1년 반 동안 해 왔던 일들 중에서 ‘정치’인 것이 있었는가. 사실 그가 보였던 행태는 정치 부재 이전에 정치 거부, 정치 억압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대통령은 정치의 가장 큰 주체이자 정치가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그 여건을 조성하는 역할도 주어진 자리다. 사회의 개선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치행위의 기둥이자 조정자이다.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는 최고의 예술(아리스토텔레스)'로서의 정치의 중심에 있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날 정치 과잉이라는 말의 반복으로써 정치에 대해 흔히 취하는 가장 쉬운 태도, 그러나 가장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와 거부감에 편승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조장한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일에 대한 무지, 대통령의 일에 대한 자기부정에 다름아니었다.
그의 정치에 대한 혐오는 정치에 대한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그 무지가 다시 그 혐오를 강화하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정치에 대한 무지와 혐오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적잖은 이들은 그가 정치에 초보여서, 검사 경험밖에 없어서라는 데서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정치 초보여서가 아니다. 정치의 초보여서가 아니라 시민의식의 초보, 공인 자질의 부재 때문이다. 검사의 일은 사실 제대로만 한다면 그것은 또한 정치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 모든 공공의 일이 그렇지만 검찰청법에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로 정의한 것에서도 검찰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에 다름아니다. 그에게서 정치의 부재의 한 이유는 그가 검찰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오히려 검찰의 일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1일의 국민들과의 대화에서의 발언들은 그가 전날 국회에서 야당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손을 건네는 모양새를 취한 것을 '대통령이 달라졌다'고 풀이한 상당수 언론들의 보도가 매우 성급한 기대에 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었다. 31일과 1일 하루 사이에 그가 보인 언동은 왼편에서 한 말을 오른편에서 뒤집고, 어제 한 말을 오늘 부인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었다.
그가 강서구 보궐 선거 후에 내놓은 몇 마디의 말들을 놓고 과연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얼마나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관측과 일부의 기대가 있지만 내내 정치과잉을 탓하는 그의 말은 그 변화가 쉽지 않을 것임을, 최소한 말과 말 간의 충돌과 모순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