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 할머니 찾아간 박진 "서훈 무산 죄송합니다"
※ 인권위 사무총장, 서훈 거부한 외교장관 아님
그 시각 국감장 외교장관 "정부 해법 종합적 고려"
정부, '3자 변제' 공탁 소송 등 4억2000만 원 편성
시민모임 "혈세로 전범기업 지원…전액 삭감해야"
박진 외교부 장관과 국가인권위원회 박진 사무총장. 같은 이름, 다른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10일 두 사람은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강제징용(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95)에 대한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 무산 문제를 놓고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양금덕 할머니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30년 넘게 앞장서 싸워온 공로를 인정해 작년 11월 2022년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을 행정안전부에 추천했으나, 이례적으로 국무회의 의결이 보류되면서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가 '이견 있음' 의견을 낸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나친 일본 눈치 보기란 비판이 쏟아졌다.
인권위 박진 사무총장은 이날 광주 서구 화정동의 양 할머니 댁을 찾아가 사과하고 위로했다. 박 총장은 "이렇게 불상사가 있어 정말 죄송하다. 노여움이 있으시겠지만 국민들은 다 같은 마음으로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가 시작한 만큼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는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관건을 쥔 외교부를 지목했다. 이에 양 할머니는 "괜찮다. 멀리서 찾아와 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다시 소환된 양금덕 서훈 무산…사뭇 다른 '두 박진'
비슷한 시각 박진 외교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대상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은 양 할머니에게 서훈을 주지 않는 이유를 따지자 '절차상 문제'를 거론했던 종전의 외교부 입장과는 다른 답변을 내놓아 빈축을 샀다.
박 장관은 "양금덕 할머니께서 지난 30여 년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한 점을 잘 안다"면서도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판결에 대한 정부 해법이 이행되는 상황이기에 그런 측면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올해 서훈 추천을 다시 한다면 이렇게 하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외교부는 "특정인에 대한 서훈을 반대한다기보다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이에 김홍걸 의원이 "이전에는 행정 절차상 문제고 외교적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왜 나온 거냐"라고 따지자, "그땐 일본에 강제 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제시하기 전이었고 금년 3월에 일본에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곧바로 김 의원이 "작년 12월 행정 절차상 문제가 보여서 이의제기했고 나중에 강제동원 해법이 나와서 그 이후까지 보태졌다고 말하려는 거냐"고 다시 묻자, 박 장관은 "지금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안 자체를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상황이나 시점 등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게 저희 입장"이라고 되풀이했다.
나아가 박 장관은 "(양 할머니) 이외에도 강제징용 관련 소송에 나선 여타 피해자들이 있기에 그분들과 형평성도 상훈 수여 과정에서 고려돼야 할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강제동원시민모임은 지난 7월 양 할머니의 대한민국 인권상 및 국민훈장 서훈을 재개할 의향 있는지를 묻는 질의를 보냈으나 3개월째 묵묵부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훈 안 주는 이유 왔다갔다…일본 심기 관리만
작년 말엔 정부 관련 부처 간의 사전협의 등 절차적 문제를 들어 이의를 제기했고 지금은 '종합적 고려'를 언급했지만, 그때도 지금도 일본의 심기 관리에만 신경 쓰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양 할머니는 불법 강제동원을 자행한 일본 전범 기업들에 면죄부를 준 윤석열 대통령의 '3자 변제 안'을 거부하는 네 분 중 한 분으로 윤 정부 눈엔 가시 같은 존재다. '3자 변제 안'을 수용하지 않는 한 양 할머니에게 서훈을 줄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전범 기업들에 원고인 징용 피해자에 1인당 1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윤 정부가 개입해 한국 기업들의 돈을 받아 기금을 조성하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판결금을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행안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심규선)이 지급한다는 '3자 변제 안'을 내놓았다. 일본을 배려해 구상권도 포기했다.
이에 양 할머니 등이 일본 기업의 배상 참여 등을 요구하며 판결금을 거부하자, 윤 정부는 이들의 손해배상 위자료 채권을 소멸시키고자 7월 3일 판결금 법원 공탁을 시도했지만 모두 '불수리' 결정이 나고, 이에 불복해 관할 지방법원들에 이의신청했지만 또다시 모두 기각됐다.
'3자 변제' 공탁 소송 등에 4억2000만 원 편성
윤 정부는 전주, 광주지법 등에 항고를 제기했으며 재항고를 거쳐 대법원까지 갈 태세다. 이를 위해 윤 정부는 대법관 출신을 포함한 호화 변호인단까지 꾸렸다. 일본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우리 사법부의 다투고자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 있는 셈이다.
10일 민주당 조정식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내년 예산에 법률 자문료, 소송비 등의 명목으로 4억2000만 원을 편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이날 성명을 통해 "재단이 제3자 변제 법률 대응을 위해 내년도 예산 4억2000만 원을 신청한 것은 징용 피해자들과 법적 다툼을 끝까지 하겠다는 취지"라며 국회에 전액 삭감을 촉구했다.
이어 시민모임은 "일제 전범 기업에 면책을 주는 공탁 관련 지원금을 국민의 세금으로 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재단은 국민에게 사죄하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단 기금 41억 원 가운데 포스코 기부금 40억 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1억원 남짓이 기부된 셈"이라며 "추가 기부 의사를 밝힌 일본 기업도 없지 않으냐. 굴욕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심규선 재단 이사장은 "확보된 금액만으로도 피해자 15명에게 변제금을 주는 데는 문제 없다"며 "이러한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꼭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