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금리 급등에도 가계대출은 증가하는 부조리

대출금리 상단 7%대로 9개월 만에 최고

은행들 수신 경쟁으로 예금금리도 4%대

정부 집값 띄우기와 장기간 금리동결로

주택담보대출 이달에만 1조8700억 늘어

한은 “금리 0~2%로 낮아질 가능성 없어”

2023-09-24     장박원 에디터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지난해 말 이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일부 은행에서는 대출금리 상단이 7%를 넘어섰다. 미국의 통화 긴축 기조가 길어지고 한국도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 은행의 대출과 예금 금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8월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3.8.24.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그런데도 가계대출은 계속 증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4일 기자 간담회에서 빚을 내 부동산에 투자하는 위험에 대해 “금융 비용이 지난 10년처럼 0~2%로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통화정책의 수장인 한국은행 총재가 강한 어조로 ‘빚투’를 경고했는데도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지 않는 이유는 정부가 내년 총선을 의식해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집값 띄우기 정책을 펼친 패착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 21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3.900~6.469%에 달한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지난달 말에 비해 이달 들어 상단이 0.219%포인트, 하단이 0.070%포인트 높아졌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만기 1년)도 연 4.560~6.560%로 상·하단이 각각 0.140%포인트씩 올랐다. 은행채 금리 역시 최근 미국과 한국 긴축 장기화 전망과 은행채 발행 물량 증가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시중은행 대출, 채권 금리. 연합뉴스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도 4%대로 진입하고 있다. 시장금리가 오르고 있는 데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 경색이 심할 때 5%대 금리로 유치했던 정기예금 만기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은행연합회 소비자 포털에 따르면 현재 19개 은행의 정기예금 상품 중 최고 우대금리가 연 4.00%를 넘는 것은 10개에 달한다. 4%에 육박하는 정기예금도 적지 않다.

고금리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금융 당국이 현장 점검에 나서는 등 무분별한 대출을 줄이기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으나 별로 효과는 없다. 한쪽에서는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고 다른 쪽에서는 가계대출을 조이는 정부의 이율배반적 행태 탓이 크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1일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4539억 원으로 지난달 말 680조8120억 원보다 1조6419억 원 늘었다. 8월 증가 폭(1조5912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 5월 이후 5개월 연속 증가세다. 주택담보대출이 1조8759억 원(514조9997억 원→516조8756억 원) 늘며 전체 가계대출 규모를 키웠다. 이달 들어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연령 제한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기준 조정을 통한 한도 축소에 나섰지만 주택 관련 대출 수요가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주택담보대출 추이. 연합뉴스 

시장금리 상승으로 서민들은 이자를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은행들은 이자 장사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지난 21일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고금리 예금 만기 도래에 따른 수신 경쟁에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예금 금리를 높이면 전체 시장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정부가 예금 금리를 억눌러도 내부적으로 가산금리를 상향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려 예대마진을 늘릴 수 있다. 예전에도 이런 사태가 반복됐다.

고금리 상황에서도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부조리를 없애고 은행들이 제 배만 채우는 이자 장사를 감시할 대책이 시급하다. 정부는 인위적인 부동산 부양 등 긴축 기조와 상반되는 정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은행들이 금리 상승기를 틈타 과도한 예대마진을 챙기지 못하도록 미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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