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루비알레스의 강제 키스와 윤석열의 '날리면'
월드컵 우승 축하 세레모니가 강제 키스?
루비알레스의 반격, 스페인 우파의 '문화전쟁'
여성 축구팀의 파업과 전국민적 응원과 연대
한국도 성차별 심각한데 여성가족부 폐지만
전 국민이 본 '바이든'도 '날리면'이라고 부정
루비알레스 몰아낸 스페인 시민들에게 배워야
스페인 축구연맹(REEF) 루이스 루비알레스 회장이 며칠 전 결국 사퇴했다. 이것은 여성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 운동의 중요한 전진이다. 사태의 출발은 스페인이 여성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시작됐다. 승리의 기쁨 속에서 루비알레스 회장은 축구팀 주전선수이며 주장인 헤니페루 에르모소 선수의 입에 강제로 키스를 했다.
상대방의 어떤 동의도 없는 무례하고 난폭한 이 행동에 당연히 에르모소 선수는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토로했고, 그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사람들도 루비알레스 회장을 비판했다. 사퇴 요구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미안해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곧 반격에 나섰다.
자신은 나쁜 의도가 아니었고, 에르모소는 거짓말을 하고 있고, 지금 자기를 공격하는 이들은 가짜 페미니스트들이고, 불순한 의도의 좌파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가 이런 발언을 할 때 축구연맹의 고위 간부들은 기립박수로 힘을 보탰다. 또 그는 3명의 딸과 어머니까지 병풍처럼 동원해서 자신이 얼마나 여성을 사랑하는 ‘정상적’ 남자인지 입증하려고 했다. 축구연맹은 에르모소 선수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했다.
이것은 사실 단순히 축구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 달 전 스페인 총선에서 드러난 우파 국민당과 신나치 복스(VOX) 당이 주도해 온 ‘문화전쟁’의 연장이었다. 이 ‘문화전쟁’의 논리 중 하나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요와 잘못된 페미니즘 때문에 남성들이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권 진보 연합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고 이런 논리가 호응을 얻으며 총선에서 국민당과 복스가 승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우파의 실패였다.
그리고 총선 몇 달 후에 벌어진 이 사태에서 루비알레스의 ‘반격’도 실패했다. 루비알레스가 축구협회의 돈으로 ‘섹스 파티’를 했다는 의혹, 축구 응원을 하면서 외설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사실, 축구팀 감독도 여성 선수의 가슴을 움켜쥐며 승리를 ‘축하’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SeAcabó(“이제 끝이다”)라는 해시태그를 올리며 성차별적이고 마초적인 문화에 반대하며 여성 선수들을 응원했다.
여자 대표팀의 모든 주전과 예비 선수들은 루비알레스가 사퇴하지 않으면 더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며 파업을 시작했다. 남성 축구 선수들도 #SeAcabó가 쓰인 경기복을 입고 출전해 연대의 뜻을 밝혔다. 루비알레스를 비판하며 성차별적 문화와 사회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집회가 열렸다. 집권 진보 연합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도 루비알레스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민당의 우파 정치인들마저 노골적으로 루비알레스를 편들지 못했고, 일부는 오히려 공개적으로 등을 돌렸다. 축구연맹에서도 이탈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루비알레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퇴하게 됐다. 이것은 스페인에서 올해에만도 벌써 40명 이상의 여성이 죽을 정도로 계속되는 '페미사이드'(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가는 살인 사건들)가 그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소위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최근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과 각종 스토킹 살인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 차별과 페미사이드는 한국에서도 심각한 현안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여성단체 카르텔 때문에 남성들이 모욕과 역차별을 당해 왔다’(국민의힘 허은아 의원)면서 성별 갈라치기를 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도 자신의 임무가 “여성가족부 해체”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기득권 우파가 여성 폭력에 관심을 보일 때는 임옥상 작가의 성추행을 핑계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가 담긴 ‘기억의 터’를 철거할 때뿐이다. 여성단체들은 이것이 ‘위안부 역사 지우기’라며 막아섰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단체는 죽었다”면서 철거를 강행했다. 페미니즘을 공격해 오던 이들에게 여성 차별과 성폭력은 오로지 기득권 우파에게 유리하게 프레임을 전환할 때만 써먹기 좋은 요소인 셈이다.
루비알레스 회장이 결국 사퇴한 것에는 전 국민이 보는 방송에 나온 강제 키스 장면이 중요했다. 그것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덮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 국민이 보는 방송에 뻔히 “바이든”이라고 말하는 게 나왔는데도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우기며 전 국민의 귀를 끝없이 고문하며 듣기평가를 강요할 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최초 보도한 MBC에 대한 보복과 장악을 추진 중이다.
심지어 자기들도 그 장면과 뉴스를 보도해 놓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바꾸며 MBC를 공격하던 족벌언론들이 지금은 <뉴스타파>를 향해서 “가짜뉴스”, “대선 사기”를 말하고 있고 윤석열 정부는 “폐간”을 겁박하고 있다. 이런 장면들을 보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루비알레스처럼 책임을 지는 일은 당분간 매우 어려워 보인다. 루비알레스 회장을 쫓아낸 스페인 여성 축구선수들과 정파, 세대, 성별을 넘어서 연대한 시민들에게서 우리가 더 많이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