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캠프의 유튜버 블랙리스트'라는 뻥튀기
월간조선, 유튜브 '현황' 문건을 '관리'로 말 바꿔
선거 캠프서 시사 유튜브 성향 실무 차원 정리한 듯
조갑제 "선거운동 차원에서 만들었다면 문제 없어"
펜앤드마이크 "성향 분석으로 블랙리스트 단정?"
월간조선이 9월호에 <이재명, “블랙리스트 그 시대,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더니…>라는 선정적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위아래로 붙은 작은 제목은 <이재명 캠프의 유튜버 ‘블랙리스트’>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것은 민주주의 최대의 적”> 등이다. 월간조선은 이 기사를 9월호 표지 맨 위에 굵은 글씨로 중요하게 소개했다.
<이재명, “블랙리스트 그 시대,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더니…>라는 제목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했던 말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2월 23일 ‘후보 방송연설’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블랙리스트 사건’들을 겨냥해 “독재와 억압은 표현의 자유, 노동의 자유를 유린하고 문화예술을 퇴보시키는 칼날”이라며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문화예술활동을 해야 했던 블랙리스트 그 시대,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역설한 바 있다.
월간조선 기사에는 ‘단독 입수’라는 말까지 붙어 있다. 8000자가 넘는 긴 기사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기사의 골자는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캠프가 작성한 정치·시사 유튜버 관리 문건들을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했다. (…)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현황’ 다르고 ‘관리’ 다르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표에는 <‘정치시사 유튜브 현황(보수)>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런데도 이 매체는 ‘유튜버 관리 문건들’이라고 슬쩍 바꿔 놓았다.
구태여 ‘현황’을 ‘관리’로 바꿔 쓴 까닭이 뭘까. ‘관리’하기 위한 문건과 ‘현황’을 보기 위한 문건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관리’라는 말에는 의지를 담은 적극성과 능동성이 담겨 있다. 반면 ‘현황’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정리했다는 뜻이 강하다. 월간조선이 말 바꿔치기로 문건의 성격을 왜곡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 캠프에서 언론의 성향을 분석해 전략을 짜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선거 캠프의 언론팀 등은 선거 운동 차원에서 언론사의 논조를 파악하고 대응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시대임을 감안해 제3의 언론이 된 시사 유튜브 채널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꼴통’ 표현, 상부 보고용 아닐 가능성 반증
현황표에는 경선 때 이낙연 후보를 지지한 한 유튜브의 성향에 대해 ‘꼴통’이란 비속어를 쓰고 있다. ‘꼴통’이란 말에서 이 현황표가 ‘캠프 고위직’ 보고용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상식적으로 상급자에게 제출할 공식 보고서에 ‘꼴통’이란 말을 쓰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 현황표는 비슷한 직위의 캠프 실무자들이 만들어 돌려봤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실제 기사도 “이재명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해당 문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조갑제 “선거운동 차원에서 만들었다면 문제 없다”
해당 기사에서 이른바 ‘보수 매체’에 몸 담고 있는 ‘보수 인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조갑제TV를 운영하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사 대표도 ‘선거 운동 차원에서 이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면서도 ‘만약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뒤 해당 문건을 악용했다면 그땐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펜앤드마이크 천영식 대표이사는 “단순히 ‘보수’다, ‘진보’다 성향만 분석해놓은 것이라면, 곧바로 ‘블랙리스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경우, 해당 문건을 ‘블랙리스트’로 활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두 사람의 말하는 방식이 같다. 가정의 전제를 먼저 앞에 둔다. ‘~했다면 ~일 수도 있다’는 가정법이다. 그래도 이 두 사람의 말은 적어도 월간조선 기사보다는 이성적이다. 월간조선처럼 <이재명 캠프의 유튜브 ‘블랙리스트’>라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월간조선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년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프리 크라임’이란 최첨단 치안 시스템으로 미래의 범죄자를 예측해 처단하는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2054년의 미국 워싱턴이 배경이다.
2023년의 한국에서, 월간조선은 상상력을 동원해 또 다른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쓴다. 톰 크루즈의 리포트는 설득력이 있지만, 월간조선의 리포트는 허무개그 같다. 심지어 재미도 없다. 그저 놀라운 것은 표 한 장으로 8000자가 넘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