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이라는 인간형, 햄릿이 되고 싶은 '이야고'
1인극처럼 자문자답한 청문회가 보여준 면모
전례없는 유형, 방통위장 돼 무엇을 보여줄까
국회 보고서 채택 불발, 방통위장 취임 확정적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의 시한인 21일, 보고서 채택은 이뤄지지 못했다. 적격성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여야 하는 상임위 전체 회의를 '적격 의견'을 전제로 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여당이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사실상 대통령의, 임명 때부터 확고하게 예정됐던 재가까지는 10일 정도만 남겨두게 됐다.
언론시민단체는 이날 방통위에 대해 ‘사망 선고’를 내렸지만 이명박 정부의 오욕과 함께 사라진 듯했던 이동관 씨는 새생명을, 그것도 막강 방통위원장으로서 화려한 ‘갱생’을 하게 됐다.
이제 이동관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미래가 어떤 것일지는 이미 그가 후보자로 내정된 이래 방통위가 그의 취임 준비 작업처럼 벌여온 공영방송 이사회 임원들에 대한 ‘대학살’ 등으로 충분히 예고되고 있지만 미래는 그 이상일 듯하다. 그가 지난 18일 국회 청문회에서 보인 모습은 상상 초월의 미래에 대한 ‘발표회’에 다름 아니었다.
이동관 후보자 청문회를 방송 중계로 지켜본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계속 시청하기 힘들었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청문회를 지켜본 이들에게 그것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청문회가 아니라 이 후보자 스스로 묻고 답하는 자문자답의 자리였던 듯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쏟아진 어떤 질문이든 그는 자신이 스스로 묻는 질문으로 만들었고, 그 질문에 스스로 준비한 답변을 했다. 이동관이 묻고 이동관이 답했을 뿐이다.
혼자서 배우, 연출, 관객이었던 청문회
그것은 일종의 연극과 같았다. 무대 위에서 그 자신이 배우이며, 연출이었고, 때로는 무대 밖으로 뛰쳐나와 관객이 되기도 했다. 이 1인극을 본 이들에게 그는 아마 셰익스피어 희곡의 ‘이야고’(<오델로>의 악한)처럼 비쳤을 테지만 그 자신은 스스로를 고뇌하는 '햄릿'으로 여겼던 듯하다. 그를 고뇌케 하는 중대한 질문은 단 하나였다. ‘사실’을 인정할 것이냐, 부인할 것이냐. 더욱 적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내게 유리한 것인가, 불리한 것인가’였다.
그 점에서 이동관 씨는 확고한 일관성과 철두철미함을 보여줬다. 모든 일을 자신에게의 유불리, 득이냐 실이냐는 기준에서 판단하는 점에서 철저한 일관성을 보여줬다. 그에겐 시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중요한 준거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적확히 말하자면 자신에게의 유불리, 득실의 계량 위에서 시비에 대한 판단을 한다. 그런 기준에서 작은 일은 크게 되고, 큰일은 하잖은 일이 된다.
그는 윤석열 정부 하에서 임명된 고위공직자들의 기이한 면모 중에서도 하나의 완결판을 이룬 듯했다. 아마도 야당 의원들이나 청문회를 지켜본 이들이 그것을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그 점에 있었을 것이다. 그가 매우 ‘특별한’ 인간형이라는 것에, 공인으로서 지닐 것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에,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라는 것에서 오는 당혹감과, 그런 이가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의 무력감이었던 듯하다. 그와 같은 유례를 찾기 힘든 특별한 인간형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움직이는 언론감독기관의 수장으로 거의 확정돼 있는 현실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생생한 체감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 대해 여러 언론에서 ‘타격감’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한방’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타격’은 타격을 가하는 이보다도 그걸 받는 이의 몫이다. 어떤 증거, 의혹, 규탄, 비판이라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이에게, 자신이 져야 할 책임, 자신이 답해야 할 질문을 마치 제3자처럼 구경하듯 말하는 이에게 타격은 있을 수 없다.
청문회장에 들어갈 때에 질문하는 기자에게 “허허, 이거 청문회 턱 앞에서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죠”라고 말하며 씩 웃는 그의 얼굴은 마치 청문회라는 ‘행사’에 좀 다녀올게,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청문회장의 당사자가 아닌 국외자, 제3자였던 그는 분명히 청문회장에 14시간이나 있었지만 사실상 그는 청문회장에 있지 않았던 셈이다.
여당 의원이 그를 엄호하려 “반대하는 세력들이 낙마시키려 한다”고 하자 “이제는 낙마가 아닌 흠집 내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고 이 후보자가 말한 것에 그의 ‘본심’이 담겨 있었다. 그에겐 청문회는 단지 요식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라는 것, 낙마할 일 따위는 결단코 없을 것이라는 것, 자신은 어떤 경우에든 사퇴할 일은 없다는 것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혹은 과시의 마음에서에서든-드러낸 것이다.
기억을 만들고 변형하는 능력
그가 개입하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거의 명백하게 추정되는 여러 언론장악 문건들에 대한 그의 답변은 특히 어떤 이들에게는 기억이 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이들에게 기억은 되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제조되고 변형된다. 언론장악 문건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그와 관련이 없으며 하급자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답변에 대해 사찰 대상이 됐던 명진 스님이 21일 아침 방송에 나와 얘기한 것이 이동관 씨에게 기억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시가 된다. 명진 스님은 이 후보자가 자서전에서 “명진 스님과 화해를 했다”고 쓴 대목에 대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기억이 없는데 어느 행사장에서 누군가 에스컬레이터 맞은편에서 스쳐 지나가며 눈인사를 해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이 말해줘서야 그가 이동관인 줄을 알았다”며 이것이 화해라는 것인가, 라고 했다.
이 얘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명진 스님은 불가해하다고 했지만 이동관 씨 자신에게는 그것이 화해의 기억으로 만들어지고, 그런 기억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었다. 명진 스님은 “안 해도 되는 거짓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이 후보자 본인 자신에겐 그 말은 확고한 진실이 돼 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사과를 받고 승낙해야 할 상대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화해’했다는 사실이 되며, 자신의 믿음에 의해 진실로 확정돼 간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의지에 의해 이렇게 가공되는 것인데, 반면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은 없던 일이 되거나,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착오하게 한다. 자신에게 스스로 기억해서는 안 되는 일로 지워지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가 ‘주군’처럼 모시고 함께 어울렸던 이명박 씨가 BBK 사건에 대해 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 단지 사실의 부정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믿고 싶은 대로 조작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 간에 상대방을 닮고 배우는 관계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남을 통해 배우는 법이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 안의 이명박, 이동관을 발견한 것이었다.
선택적 인지상정
그러나 어떤 일은 기억의 소거와 왜곡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그럴 때는 다른 전략이 동원된다.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야당 의원이 "이 후보자 본인이 김승유 당시 학교 이사장에게 전화해 (학폭 사건에) 개입했다. 부모가 도대체 학폭 사건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후보자의 배우자가 학폭위를 열자고 한 교사를 색출해 달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묻자 그는 "절박한 학부모 심정에서 전화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한다"고 답변했다. 청와대의 실력자였던 이는 이 대목에서 단지 ‘절박하고 가련한’ 처지의 평범한 부모로서 호소하고 있다. 그에겐 공과 사의 구분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는 공과 사의 기준 자체를 바꾼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피해 학생과 화해를 했으며 담임 교사가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로 사과했다고 한 말에 담임 교사가 그의 진술을 그대로 두고볼 수 없었던 듯 국회에 찾아와 발언을 자청하면서까지 반박하는 절박한 심정은 그에게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그의 아들의 학폭 축소·은폐와 입시 비리 의혹을 제기한 전경원 교사가 학교에서 탄압을 받으며 모든 것을 잃은 처지가 된 것에 대한 '인지상정'은 없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 언론 대응 관련 문건이 마치 자신이 주도했던 언론장악과 같은 것으로 둔갑돼 제시되자 그가 보인 반응과도 유사한 것이었다. 자신의 언론장악에 대한 추궁 때와는 정반대였다. 숱한 증거와 방증에도 무시하던 그는 이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실행됐다"며 "언론장악 보고서라고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장악 개입을 뒷받침하는 숱한 증거와 자료들에는 무조건 부인으로 일관하던 그가 문재인 정부의 언론장악 아닌 '언론대응' 문건에 대해서는 '심각한 음모'라며 단호하게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을 선물했다. 청문회에서 그의 입에서 “부끄럽다”는 말이나온 것이었다. 그는 “언론장악 기술자라는 말을 듣는 것에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했다. 그에게 그 같은 감정,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이 있다는 것은 그가 이날 내내 보였던 태도를 생각하면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에 대한 청문회는 방통위장이라는 고위직 공인(公人)으로서의 적격성에 대한 검증 이전에 한 명의 상식적인 공민(公民)으로서의 상식과 양식에 대한 청문회가 먼저 있었어야 마땅했다. 이동관 청문회가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었던 진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성공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성공신화를 쓰기 위해 한국언론과 한국사회는 어떤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 예측하기 힘들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상상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