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주최 '우크라 평화회의' 첫발…러시아 "실패 운명"
미국·서방 외 중국·인도 등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 집결
우크라 "매우 생산적 협의"…러시아 배제로 실효성 의문
중국 "많은 의견 충돌, 다른 입장 들어…원칙 공유 중요"
제다 평화회의 와중에 흑해에서 러-우 교전 다시 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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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찾기 위한 국제회의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렸다.
홍해에 접한 항구도시인 제다에서 사우디의 주최로 5~6일 이틀간 진행된 회의에는 요청국인 우크라이나는 물론 한국과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을 포함해 약 40개국이 참가했다. 그러나 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인 러시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미국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우리나라에선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각각 참석했다.
러시아 배제에서도 보듯이 이 회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향후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에 앞서 작년 11월 자신이 제시한 평화협상 조건 10개 항을 토대로 '협상 원칙'을 마련하고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미국·서방 외 중국·인도 등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 집결
젤렌스키의 이런 구상은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EU 등 서구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지만, 그 너머로는 확장되지 못해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의 개도국, 저소득국)에서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로 인해 자신들이 식량·에너지 위기 등 경제난을 겪는다고 여기는 나라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과 인도는 물론 대다수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도 일종의 '중립’을 표방하면서 대러 제재 가담을 거부해왔다. 유엔의 대러 규탄 결의안에 141개국이 찬성했지만, 대러 제재 결의안에는 서구 진영 33개국만이 찬성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중동의 맹주로서 국제 외교무대에서 위상을 과시하고자 하는 사우디의 협조를 얻어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러시아를 제외한 브릭스 국가들과 인도네시아, 이집트, 멕시코, 잠비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도 대거 초청했다.
러시아 제재에 불참한 나라들을 포함해 글로벌 사우스의 가급적 많은 나라를 우크라이나 정부 뒤에 결집하겠다는 게 젤렌스키와 미국 등 서방의 노림수다.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젤렌스키 평화안에 대한 지지 여론 조성하겠다는 얘기다.
중국 "많은 의견 충돌, 다른 입장 들어…원칙 공유 중요"
주최자인 사우디는 물론 서구 진영도 중국의 참가를 학수고대했다. 중국이 불참하면 우크라이나 지지를 위한 '편향적인 서방 진영 회의’로 비칠 수 있어서다.
더욱이 중국은 6월 24일부터 이틀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1차 비공개 회의 땐 초청은 받았지만 불참했던 터였다. 중국 정부는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에야 리후이 유라시아사무특별대표의 참가를 확인했다.
리후이 대표의 참석을 두고 중국의 스탠스가 바뀌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는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중국의 참가에는 작년 12월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국빈 방문 이후로 밀월 관계를 과시하는 사우디의 설득이 주효했을 법하다. 국제 외교가는 러시아와 전략적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중국을 우크라이나와 서방 주도의 이번 회의에 참석하도록 끌어들인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외교력에 주목하고 있다.
라이스대학 베이커연구소의 중동 전문가인 크리스티안 코아테스 울리히센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중국의 이번 회의 참석은 최근 양국 간 타 영역에서의 협력에 기반해 사우디 외교에 지지를 보내는 신호"라며 "중국의 회의 참석이 우크라이나가 추구하는 결과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중국의 리 대표도 "우리는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고 다른 입장들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원칙들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EU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3차 회의 개최 구상에도 긍정적이었다고 영국의 가디언은 전했다.
우크라 "매우 생산적 협의"…러시아 배제로 실효성 의문
제다 회의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했지만, 큰 틀에서 자국 영토 보전과 주권 존중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넓히는 기회가 됐다고 긍정 평가하고 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성명을 통해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 구축에 기초가 될 핵심 원칙들에 관해 매우 생산적 협의가 있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제기된 서로 다른 관점들에 대해선 "극도로 솔직하고 열린 대화였다"고도 했다.
앞서 젤렌스키는 첫날 회의에 대해 "국제 문제를 두고 각 대륙 간에 서로 다른 정치적 접근이 있지만 우리는 국제법 우선주의에서 단결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젤렌스키는 자신의 평화협상안을 토대로 마련한 '협상 원칙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기 위해 오는 가을, 늦어도 연내에 "평화 정상회의"를 개최한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젤렌스키의 평화협상 조건 10개 항은 △ 핵 안전 △ 식량안보 △ 에너지 안보 △ 포로 석방 △ 유엔헌장 이행 △ 러시아군 철수와 적대행위 중단 △ 정의 회복 △ 환경 파괴 대처 △ 긴장 고조 예방 △ 종전 공고화 등이다. 그 핵심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완전성과 주권 존중, 그리고 유엔 원칙 복원 및 국제법 수호이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러시아와의 평화가 가능해지려면 양국이 옛 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의 국경이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병합한 크림반도는 물론 지난 2월 '특별군사작전'을 통해 새로 점령한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지역도 되돌려 받아야만 종전 합의에 응하겠다는 게 젤렌스키의 입장이다.
제다 평화회의 와중에 흑해에서 러-우 교전 다시 가열
일단 제다 회의에선 공동성명이나 손에 잡힐만한 구체적 성과는 없었다.
다만 글로벌 식량안보와 핵 안전, 인도 지원, 포로 석방 등의 문제를 논의하는 워킹(실무) 그룹 구성과 관련해 후속 대화 계획이 제시될 것이라고 회의에 참석한 EU 당국자는 전했다. 이 당국자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주권 존중이 어떤 평화 합의에서든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데 참가국들이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반발했다. 세르게이 리아브코프 외교부 차관은 6일 "이른바 젤렌스키 평화안에 대한 지지를 얻고자 국제사회, 더 정확히는 글로벌 사우스를 동원하려는 서구의 시도를 반영한 것"이라며 "그 시도는 헛될 뿐 아니라 실패할 운명"이라고 비난했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이 전했다.
사우디에서 회의가 진행되던 와중에도 러시아가 흑해에서 군함과 유조선에 대한 기습 공격을 받자 극초음속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각지를 타격하는 등 전투는 다시 가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