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민원 고충 10번 호소”…학교·당국 뭐했나?

당국 사건 조사결과 발표에 “새 사실 하나도 없다”

학교폭력 사건 관련 학부모와 접촉 사실은 확인

‘고위직 학부모의 갑질’ 여부 명쾌하게 규명 못해

“교사·학부모·학교 민원 관련 접촉 시스템 마련 시급”

2023-08-04     민병선 에디터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건과 관련한 합동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23.8.4.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불행한 사건(7월 18일)이 발생하고 17일 만에 교육 당국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의구심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이초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사 사망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연필 사건’과 관련돼 교사가 사건 관련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민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단은 동료 교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고인이 학생 간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부모 민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건 당일 학부모가 여러 번 고인에게 휴대전화로 통화했고, 고인은 전화번호를 학부모가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불안하다는 말을 동료 교사에게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부재중 전화가 엄청 걸려왔다’ ‘통화에서 학부모가 엄청 화를 냈다’ ‘개인 휴대전화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불안하다’는 동료 증언 등을 보면 학부모 민원에 대해 굉장한 스트레스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연필 사건’이 발생한 7월 12일부터 고인이 사망한 18일까지 고인과 학부모 사이에 통화가 수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고인이 학기 초부터 다른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호소했고, 학기 말 업무량이 많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장 차관은 “교사들 증언에 따르면 학급에서 화를 내고 막말하는 한 학생에 대해 (고인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 점이 있다”며 “또 다른 학생은 가위질하다가 난동을 부린 적이 있고 2∼3일에 한 번씩 ‘선생님 때문이야’라며 울부짖는 소리를 내는 등 폭발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서이초 교원 65명을 대상(41명 응답)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밝혔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월 1회 이상 학부모 민원과 항의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7회 이상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6명이었다. “교권 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49%였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들이 서이초등학교 교사 추모 및 재발 방지 대책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3.7.25. 연합뉴스

남는 의문점들과 문제점들

조사단의 발표에도 사건 초기 학교장 명의의 입장문 등에 대해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입장문에는 ‘해당 학급에서는 올해 학교폭력신고 사안이 없었다’라고 돼있다. 하지만 ‘연필사건’ 등 학교폭력으로 볼 사안이 분명히 있었다. 다만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나 교육청에까지 ‘신고’할 사건이 아니었을 뿐이다. 이 사건이 교사 죽음의 원인 중 하나로 보이는데도, 학교 측과 교육 당국이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입장문을 이같이 적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조사단은 입장문 초안에 있던 ‘연필 사건’이 학부모 요구로 최종본에서 빠졌다는 의혹에 대해, 다른 사건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니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달라는 교육청 요청에 따라 학교가 삭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1학년 담임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업무 배정이 고인의 ‘1지망’이었다고 조사단 발표도 더 따져볼 여지가 있다. 학교장 입장문에도 ‘담임 학년은 본인의 희망대로 배정된 것’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보통 가장 기피하는 1학년 담임을 고인이 스스로 2년 연속으로 맡았다는 점이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 한 초등교사는 “담임을 배정할 때 학년을 1~5순위로 적는다. 이렇게 하면 5순위에 1학년을 적어도 ‘본인 희망대로’라고 할 수 있다”며 “보통 초임 교원들이 1학년을 떠맡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사건 초기 가장 뜨거운 관심사였던 ‘고위직 학부모 가족의 갑질’에 대해서도 조사단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조사단은 “유명 정치인의 이름을 학교가 관리하는 기록(학부모 이름 등)과 대조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라고만 밝혔다.

최근 MBN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5월부터 이번 달까지 학교 측에 10건의 상담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학교나 관리자가 고인의 고충을 묵살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조사단은 학교가 보조교사를 배치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인이 선배 교사들에게 상담한 것을 보면 학교 측이 최선을 다했는 지 의문이다. 미국에서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부당하게 교사를 공격하는데 학교 당국이 교사를 보호하지 않으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이와 관련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2∼23일 교사 1만4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부모의 민원이 있을 때 ‘학교 관리자 지원을 받았다’는 응답률은 21.4%에 그쳤다. ‘교원단체나 노조 지원’을 받았다는 응답은 18.2%, ‘교육청의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동료 교사의 지원’(65.2%)을 받았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서이초등학교장 명의의 입장문.

시급한 개선점들

조사단의 발표에 대해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입장문을 내고 “여러 경로로 이미 보도된 내용 이외에 새로운 사실이 하나도 없고, 경찰 수사에 전가하는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도 성명서를 내고 “오늘 발표에는 이번 사건에서 가장 핵심인 교장의 부작위와 학부모 악성 민원에 대한 조사가 빠져있다”며 “장상윤 차관은 학부모 조사는 교육부가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경찰과 다르게) 한계가 있다고 밝혔지만, 조사 의무는 당연히 교육 당국에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권과 학생 인권을 함께 보호할 법적 조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촉발한 원인으로 지적되는 ‘교사와 학부모의 불편한 접촉’을 보완할 조치와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일 서울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앱을 통한 ‘교사 면담 사전예약 시스템’을 계획을 제시했다. 교사와 전화 통화·면담을 원하는 학부모는 ‘서울학교안전 앱’을 통해 예약하고, 일반적인 민원은 챗봇을 활용한다. 앱을 통해 민원을 1차로 분류하는 주체는 교장 혹은 교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교사 개인의 휴대전화로 학생이나 학부모가 연락할 수 없다. 민원이 있는 학부모는 학교 이메일과 전화 등 공식 채널을 통해서만 담임 교사, 교장, 교감, 교육감 등과 연락할 수 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