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국 신설 반대 주도한 류삼영 총경, 결국 사직
"총경회의 참석자 중 인사대상자 모두 불이익"
자신도 경남청 112 상황팀장 좌천성 발령
1991년 이전 내무부 치하에 있던 경찰 부활 우려
“경찰 역사에 당당한 선배 역할 다하겠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한 대표적인 인물인 류삼영 총경이 결국 경찰복을 벗었다. 경찰국 신설에 반대한 인사들에 대한 부당 인사에 항의하기 위함이다.
류 총경은 3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들에게 사직서를 내보이며 사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7일과 지난 2월 단행된 경찰청의 총경급 인사가 ‘보복성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지난 27일 경찰은 류삼영 울산경찰청 치안지도관을 경남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팀장으로 발령냈다. 시도경찰청 상황팀장은 지난해까지 총경보다 한 계급 낮은 경정급이 맡던 보직이었다. 올해부터 총경 복수직급제가 도입되면서 갓 승진한 총경급도 112 상황팀장을 맡았다. 그러나 류삼영 총경은 총경 진급 8년 차로 이번 인사가 사실상 좌천성 인사로 받아들여졌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을영 경남경찰직장협의회 회장은 “112상황실장이나 그 밑에 상황팀장이 총경인 경우도 있지만, 이번에 류 총경은 인사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삼영 총경의 사직은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의 징계와 좌천성 인사가 ‘경찰국 신설 반대’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15일 행정안전부는 경찰제도개선안을 발표하고 ‘경찰국 신설’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지난해 7월 23일 류삼영 총경 주도로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가 열렸다. 류 총경은 회의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대기 발령됐다.
지난해 8월 초 행안부 경찰국을 신설하면서 초대 경찰국장으로 임명된 인사는 김순호 씨였다. 1988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서 밀정 역할을 하면서 활동하다 잠적한 뒤 1989년 경찰이 인노회 조직 사건을 엮는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같은 인사를 초대 경찰국장으로 내정한 것은 경찰국에 대한 우려를 극대화했다.
내무부 산하에 있던 경찰청은 1991년 외청으로 독립했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만약 역사를 되돌려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신설하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나 인노회 등 조직 사건을 일으키던 그 시절 그 경찰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우려는 경찰 인사에 대한 행안부의 장악으로 현실화된다. 지난해 12월에는 류 총경에 대한 정직 3개월 중징계 조치가 내려졌다. 이후 지난 2월 경찰 인사가 단행됐는데 류 총경은 이를 두고 총경회의 참석자에 대한 ‘보복성 인사’라고 비판했다. 경찰국을 반대한 총경급 인사들이 대거 경정급 직위로 가거나, 본인이 희망하지 않았는데도 6개월 만에 다른 자리로 단기 인사 발령됐다. 사실상 ‘경찰 블랙리스트’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류 총경은 기자회견에서 “총경회의 현장 참석자 54명 중 이번 인사 대상에 포함된 47명 전원에게 문책성 인사가 단행됐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인사는 지난 27일 류삼영 총경을 경남경찰청 112 상황팀장으로 발령내면서 정점을 찍었다. 결국 윤희근 경찰청장의 경찰대 3년 선배인 류 총경은 경찰복을 벗는 결단을 내렸다.
행안부는 일선 간부 경찰들에게 직무관리 자가 진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경찰서장, 지구대 파출소장 등이 자기 업무에 대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무슨 일을 했는지 표시하고 이를 상급자가 감독하고 전산에 기록을 남겨 사후 인사 자료로 활용한다는 취지다. 이는 말을 듣지 않는 경찰은 승진에서 배제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하루하루 일상이 모두 기록되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문제 삼을 만한 근거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류 총경은 지난 3월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자기에 대한 데이터를 다른 사람이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자료를 관리한다고 하면 누구나 다 불안해 할 것”이라면서 “순수하게 업무를 잘하자는 취지로 만든 자료가 다른 데 절대 안 쓰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감찰이나 인사 자료로 쓰겠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니까 겁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 총경은 경찰국 신설이 이태원 참사와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 총경은 지난해 12월 CBS라디오 <김재홍의 한판승부>와의 인터뷰에서 “경찰국의 존재 자체만 해도 경찰의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경찰의 관심들이 인사권을 향하게 되면 그동안 국민을 향하던 경찰의 관심이 경찰 인사권을 가진 쪽으로 하게 되면 국민을 등지게 되고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다”면서 “이태원 참사 당일 그 이전까지 잘 배치하던 경찰 인력을 국민과 관련된 인력은 배치를 안 하고 대부분의 경비 병력은 경호와 경비에, 사복은 마약 수사에 그렇게 배치한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류 총경은 사직에 앞서 경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려 “최근 1년간 일련의 사태로 경찰 중립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려워 감히 14만 경찰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사직을 결심하게 됐다”면서 “비록 저는 사랑하는 경찰을 떠나지만 앞으로 조직과 후배들 곁을 지키며 경찰 역사의 흐름 앞에서 당당하고 부끄럼 없는 선배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지난해 7월 윤석열 정부가 경찰국 신설을 위해 시행령 개정에 나선 것에 대해 “상위법인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명백한 법체계 위반”이라면서 “정부조직법의 행안부 장관이 관장하는 사무에 경찰이나 치안에 관한 것이 없으므로 이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행안부 경찰국을 폐지하고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사임한 류 총경과 함께 새로운 실천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