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어 이스라엘도 중국에 '구애'…윤만 '오직 미국'

방중 임박 네타냐후, 중국에 사우디와 중재 요청할 듯

"네타냐후 방중, 미국의 오랜 중동 지배체제 깨는 것"

끝없는'싱하이밍 교체' 공방, 한중관계 앞날 불투명

사우디-이란 발 '봄바람' 이젠 친미 이스라엘까지

2023-06-27     이유 에디터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왕세자와 주먹인사하는 바이든.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동지역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날로 더 묵직해지고 있다.

미국이 "세계에서 미국에 도전할 의사와 역량을 지닌 유일한 국가"(2022 국가안보전략)로 꼽은 중국을 저지하고자 인도‧태평양으로 전략의 중심을 옮긴 사이, 텅 빈 중동을 중국이 적시에 파고든 이후 중동 전역에 걸쳐 그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가는 양상이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초순 전통적 맹방이지만 오랜 기간 관계가 소원했던 사우디아라비아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급파했다. 블링컨은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관계 복원을 시도했지만, 중국 저지에는 한계를 보였다.

중국은 지난 3월 10일 베이징에서 미국의 전통적 맹방으로 수니파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반미 시아파 수장인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는 데 성공했다.

옛날 같으면 미국이 했을 일이었다. 중동에서 중국이 '글로벌 파워'로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 협의 최종회의에 참석한 사우디 대표단(왼쪽)과 이란 대표단, 그리고 이 회의를 주재한 왕이 중앙위 국무원 등 중국 관계자들(중앙) 모습. 2023.03.11. 신화 연합뉴스

사우디-이란 발'봄바람' 이젠 친미 이스라엘까지

오랜 적대관계를 끝낸 사우디-이란 발 '봄바람'은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중동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중동의 기존 세력 구도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었음은 물론이다.

뒤이어 4월 12일 카타르와 바레인, 시리아와 튀니지가 각각 관계 정상화를 발표했고, 사우디와 시리아도 단교 12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5월 7일에는 2011년 아랍의 봄 때 잔혹 행위를 저질러 쫓겨난 시리아가 아랍연맹에 공식으로 복귀했다. 예멘 내전도 종식 수순에 들어갔고, 사우디-이란 주도의 걸프 지역 '합동해군동맹' 구축 계획도 이란이 공개했다.

중동의 판도를 뒤바꿀 만한 '태풍'은 작년 12월 사우디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국빈 방문 초청이란 '나비의 날갯짓'에서 비롯됐다. 사우디는 시 주석을 극진히 대접했고, 중국과의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함으로써 미국 보란 듯이 본격적인 '밀월'에 들어갔다.

이 모든 극적인 사건이 불과 반년 새 벌어졌다. 그동안 중동 상황을 관망하던 바이든 대통령이 때늦은 감은 있지만 '중동 복귀'를 위해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치욕'을 무릅쓰면서까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배경이다.

 

2017년 3월 중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방중 임박 네타냐후, 중국에 사우디와 중재 요청할 듯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인 이스라엘마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구애'를 하며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재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다음 달 중국을 공식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이스라엘 현지 신문의 26일 자 보도 내용이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재집권 후 6개월이 지났으나 바이든이 초청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하는 네타냐후 총리가 중국 방문을 추진 중이며, 이스라엘 총리실과 중국 주석궁 실무자들이 접촉해 방문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외교 소식통들은 이 신문의 히브리어 자매지인 〈지맨 이스라엘〉에 "이번 방문은 뭣보다 네타냐후가 다른 외교적 기회들을 갖고 있다는 점을 워싱턴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빈 살만이 구사해 일정한 성과를 냈던 방법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해 자신에게 냉담한 미국의 관심을 유도하겠다는 계산으로 들린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극우 정부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사법부 무력화'를 시도 중인 데 대해 지난 3월 철회를 요구하면서 가까운 시일 내 방미 초청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네타냐후는 백악관 초청을 참거나 기다리지 않고 채널을 병행해 활용할 것"이라며 "최근 중국이 중동에 대한 관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총리는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중국에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함마드 빈살 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회담하고 있다. 2023.06.07. 연합뉴스

"네타냐후 방중, 미국의 오랜 중동 지배체제 깨는 것"

신문은 네타냐후가 7월 베이징을 방문한다면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의 도움을 요청할 것이며,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촉구해왔던 미국을 불쾌하게 할 것으로 봤다. 중국이 사우디-이스라엘 중재에도 성공한다면 중동에서 미국의 위상은 치명상을 입는다.

앞서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번 사우디 방문 때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중재를 시도했다. 사우디는 북대서양조약 제5조에 명시된 '집단방위'와 같은 상호방위공약과 최소한의 무기 수출 제한, 우라늄 농축 및 민수용 핵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미국의 지원 등을 제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모로코 등 아랍권 국가들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관계를 정상화한 이스라엘은 사우디와도 관계 개선을 통해 협약의 확장을 원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 성과는 없는 상태다.

또한 네타냐후의 방중이 이뤄지면,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문제도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4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을 지지했다. 그러면서 2014년에 중단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의 재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스라엘 고위 소식통은 임박한 네타냐후의 방중을 미국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함께 오랫동안 중동을 주도적으로 지배해온 "체제를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전했다.

이는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바꾸고 중동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뿐 아니라, 중동과 새로운 중국-이스라엘 관계에 대한 중국의 진지한 관심을 과시할 기회가 될 것으로 신문은 내다봤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대일역사정의 운동과 시민단체 탄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6.1 연합뉴스

윤만 '미국 일편단심'…한‧중 '싱하이밍 교체' 공방

블링컨 국무장관의 지난 18~19일 중국 방문을 계기로 미‧중 양국이 대화 모드로 급선회하고, 일본도 중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이고 대표적인 친미 동맹국인 이스라엘까지 중국에 접근하는 마당에, 반중국 전선의 선두에서 행동대를 자청해온 윤석열 정부만 미국에 일편단심이다.

전개되는 상황이 심상치 않아 방향을 전환하고 싶어도 중국을 상대로 한국의 정상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못박듯이 단호하게 던져 놓은 말들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특히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을 둘러싼 공방이 걸림돌이다.

여당 대표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나라를 침략한 중국" "위안스카이와 비슷하단 얘기가 있다"는 등의 비난 발언을 쏟아내고 중국에 대사 교체를 공식 요구하고 교체 이후에야 관계 개선에 응한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그럴 생각이 없음을 거듭 확인하고 있어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의 25일 발언만 해도 그렇다. 박 장관은 연합뉴스TV에 출연해 한‧중 관계에 대해 "윤 정부의 입장은 중국과 척지고 지낼 이유가 없고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싱하이밍 발언에는 "외교관으로서 본분에 어긋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의 마오닝 대변인은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킨다는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도 싱하이밍 비판에 대해선 "주재국 각계 인사와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외교관의 직책이다. 정상적인 교류가 과장된 화제가 돼서는 안 된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이 이미 못을 박아놨으니 이제 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통령실이 입장을 바꿀 수도 없고 중국도 시 주석의 뜻에 따른 것으로 보여 관계 복원 전망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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