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눈] 세수감소와 담뱃값 인상이라는 '약탈'

금연 명분으로 세수 보충하려는 정부의 반 보건 발상

2023-06-12     이명재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정치'가 시작되는 곳과 담배

모든 생명에는 선악이 없으며 귀천도 없다. 저마다의 의지와 집념으로 살아가는 것에 삶의 소중함과 가치가 있으며 그것에 생명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인간의 문물과 풍습도 그것에는 본래 선악과 우열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삶과 사회의 영위를 위한 필요와 이유가 있을 뿐이다. 밥이며 옷이며 집이며 등이 인간과 사회의 생존을 위해서건 생활을 위해서건 존재하는 것처럼 개개의 사물, 특히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그 폐해만큼 적잖은 위로와 양식이 돼 주기도 해온 물건에는 그 나름의 고유한 역사와 생명, 결국은 인간의 삶이 쌓여 있는 법이다. 그것이 비록 생존과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님은 물론 적잖은 폐해를 끼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는 인간의 삶에서 빛에 따르는 그림자처럼 인간의 삶의 애환과 고단함의 표정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그 같은 이해와 동정,  바로 그 연민이야말로 정치가 시작되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정치의 ‘정(政)’의 바탕은 정(正)이라고 할 때, 그 ‘정’은 정치가 향해야 할 국민의 삶에서의 음영, 그 그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담뱃값 인상설이 슬그머니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그 뉴스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단지 담뱃값을 올리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담뱃값 인상 여부가 아니라 담뱃값 인상을 꺼내는 것의 바닥에 놓여 있는 ‘정치’를 대하는 태도, 정치를 펼치는 발상에 대한 것이다.

 

편의점의 담배 판매대, 연합뉴스 자료 사진

어제(11일) 민들레에 실린 글의 한 대목이 담뱃값 인상설과 겹친다. ‘빨간불투성이 경제’를 염려하며 ‘부자감세를 멈추라’고 꾸짖는 필자는 올해 1분기 국세 수입 세수가 작년보다 급감한 것이 거듭 얘기되는 대로 부자감세와 대기업 감세 때문이었다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을 들면서 세수가 이렇게 줄어들어버리니 나라살림을 줄여야 하고 그 줄이는 곳이 저소득층과 서민가계에 대한 지원인 것이다라고 개탄하고 있다.

그 인상설이 '흉흉한 소문'이라고 해야 하는 것은, 담뱃값 인상 추진이 세수의 감소를 보충하려는 것이라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에 ‘세계 금연의 날’ 기념식과 함께 정부가 개최한 포럼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효과적인 흡연 규제를 위해 담배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민들레의 기사는 이를 ‘담뱃값 인상의 예고’로 해석하고 있다. 어느 신문이 이를 받아 ‘담배 꽁초가 일으키는 환경 문제’를 예시하며 인상의 근거로 뒷받침하는 기사도 소개하고 있다. 

흡연율의 사회경제적 배경 

세금을 올리자는 것이 환대를 받는 이런 일은 금연이 보건과 환경이라는 명분의 뒷받침에 힘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흡연을 추방한다는 것은 담배의 해악 그 이상에 대한 고찰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국민의 삶의 미세한 세부를 봐야 하는 정부로서의 소임이 있다.

오늘날 흡연자들은 어떤 이들인가, 라고 한다면 그들은 흔히 우리 사회 공공의 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습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이며, 청정한 대기와 공중의 안녕을 위협하는 이들로 여겨진다. 흡연자들의 많은 반성과 주의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흡연의 현실에는 금연 정책이 고민해야 할 사회경제적 측면이 드러난다. 가령 우리 사회의 어떤 이들이 담배를 피우는가에 대한 조사 결과들을 살펴보면, 그중 서울시의 구별 흡연율을 조사해 봤더니 강남북 간의 차이가 뚜렷했다. 못 사는 강북권 지역이 높게 나타난 반면 서초구 양천구 잘 사는 동네의 흡연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왜 담배가 복권과 같이 ‘가난한 자들의 세금’이 되는지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망우초(忘憂草)라는 별칭에서처럼 담배는 유해한 독초인 한편 서민들이 잠시라도 시름을 잊게 해 주는 위로이며 잠시 동안의 '정신의 양식'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의 유익한 결실은 아닐지라도 삶의 조건의 반영이며 산물이다.

8년째 담뱃값이 4500원에 머물러 있으며 가격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금연 정책이라는 말은 먼저 그것의 ‘사실성’을 따져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5년에 있었던 대폭의 담뱃값 인상이 효과적인 금연으로 이어졌을까에 대한 조사연구의 상당수는 “흡연율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없다”(<2015년 담배소비세 인상으로 인한 흡연율 효과의 동태적 분석> 설귀환 등, 2022년)는 것이거나 “단기적 가격 충격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담배 가격 인상 정책의 흡연 감소 효과> 김영직 등, 2017년)는 결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담뱃값 인상의 금연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캐고 들어가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이라는 처방을 마치 공중보건에 대한 염려와 고심의 산물로 얘기하려는 듯한 이들의 발상의 그 이면, 오히려 진짜 의도에 대한 것이다.

문제를 해답 아닌 또 다른 문제로 풀려는 정부

온갖 ‘문제’들을 빚어내는 현 정부의 더욱 큰 문제는 문제가 발생하면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공식과도 같은 이 방식이 담뱃값 인상 준비작업의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국민의 건강과 보건에 대한 우려라고 할 수는, 결코 그럴 수는 없다. 핵 오염수를 청정수라도 되는 듯이 호도하며 "마셔라!"고 국민의 입에 들이부으려는 듯하는 이들의 머릿속에서의 담뱃값 인상이 국민보건의 염려의 발로라고 할 수는 없다. 부자의 큰 곳간을 채워주면서 세수의 결손을 빈자들의 복지를 축소하는 상황에서 이를 과세정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차라리 이를 ‘약탈’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금연은 금연 정책과 함께,  건강을 해치는 담배 이상의 위협, 담배 이상의 적들을 함께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술을 즐기지 않는 이들도 술을 찾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들도 담배를 꺼내게 되는 지금의 한국사회의 현실, 그것을 바로 돌아보는 것에서부터가 금연 정책의 출발이다.   

옛말에 백성이 죄를 짓게 해 놓고 형을 내리는 것은 백성을 그물질로 사냥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고 했다. ‘그물질’을 하는 정부라면 어떤 금연 정책이라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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