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우디와 '해군동맹' 만든다…중동 정세 대격변 예고
'국교정상화' 사우디-이란, 군사동맹까지 직진하나
멤버는 UAE·카타르·바레인·이라크·인도·파키스탄
반이란 '중동판 나토' 추진 미국·이스라엘 '난감'
중동 자체 결속 움직임 확산…미국 '복귀'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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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야 역내 국가들이 지역 안보는 상호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깨닫게 됐다."
샤흐람 이라니 이란 해군사령관은 현지 TV 인터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포함해 상당수 지역 국가들이 역내 안보 보장을 위해 '해군동맹' 창설을 추진 중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에서 이라니 사령관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바레인, 이라크를 포함한 역내 국가들과 이란 사이에 합동해군동맹(joint naval coalition)이 곧 구축될 것이며, 인도와 파키스탄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란 관영 이르나 통신이 3일 보도했다.
하지만, 해군동맹의 형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합동해군동맹의 성격에 대해 이라니는 "정당하지 못한 군대를 우리 지역에서 퇴출하는 기반을 닦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 지역의 인민은 자신의 힘으로 자기 안보를 담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교정상화' 사우디-이란, 군사동맹까지 직진하나
그의 발언대로 '걸프 해군동맹'이 창설된다면 중동과 주변 지역의 지정학적 세력 구도에 대대적인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지난 3월 10일 중국의 중재로 오랜 적대 관계를 끝내고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던 사우디와 이란의 '밀월 관계'가 일종의 군사동맹으로까지 급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그 경우 이란 봉쇄에 주력해온 미국과 이스라엘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라니의 말대로 다자 해군동맹에 오랜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참여해 공해상에서 해적 퇴치 및 대테러 공동작전을 펼친다면 화해 기류는 서아시아로도 확산할 개연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이라니 사령관은 "인도양 북부 지역의 사실상 모든 나라가 협력을 강화해 이란과 손잡고 공동으로 안보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라니가 '해군동맹'에 참여한다고 언급한 국가들을 보면,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아라비아해(인도양) 연안 국가들이다. 그에 따르면, 이란은 그동안 오만과는 몇 차례 합동해군훈련을 했으나, 최근 역내 다른 나라들이 집단적 해군작전에 참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한다.
이란, 사우디와 '해군동맹' 만든다…미국 "그럴 리가"
사실 이 지역을 비롯해 아덴만, 홍해, 인도양까지 아우르는 '연합해군'(CMF)이라는 미국 주도의 38개국 해군연합체가 2001년부터 이미 활동 중이다.
CMF는 미국 해군 5함대와 해군중부사령부와 함께 페르시아만 연안국인 바레인에 본부를 두고 있다. 사우디-이란의 '독자적' 걸프 해군동맹이 공식화할 경우 미국 주도의 CMF와의 갈등과 대립은 불가피하다.
당연히 미국은 반발했다. 미 해군 5함대와 CMF의 짐 호킨스 대변인은 3일 온라인 군사전문 매체인 <브레이킹 디펜스>의 질의에 "지역 안정 훼손의 주범인 이란이 자신들이 위협하는 바로 그 해역을 보호하고자 해군안보동맹을 만들려는 건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호킨스는 지난 2년동안 이란이 15개 국적의 상선을 공격·나포했다면서 "행동이 문제다. 우리가 파트너들과 호르무즈 해협 주위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라고 말했다.
이란의 '합동해군동맹' 주장은 UAE 외교부가 지난달 31일 성명을 통해 미국 주도의 CMF에서 "두 달 전에 철수했다"고 밝힌 지 불과 이틀 만에 나와 궁금증을 자아냈다.
거론된 국가들은 이라니 사령관의 발언과 관련해 나흘이 지나도록 공식으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이란 국민을 상대로 상당히 과장된 주장을 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반이란 '중동판 나토' 추진 미국·이스라엘 '난감'
관련국들의 반응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면 중동과 서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입지는 더욱 취약해질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도 타격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은 2020년 9월 미국의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UAE, 바레인, 모로코 등 아랍국가들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 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연합방공망 구축 등 이란을 겨냥한 '중동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구축을 추진해왔다.
로이터 통신은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는 이란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을 좌절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와 시아파의 수장 이란의 화해는 석유와 제국주의 침략사, 종교, 인권 문제 등이 뒤얽힌 갈등과 분쟁의 땅인 중동과 아랍 지역에 대전환을 촉발했다.
미국이 중국 봉쇄를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전략의 중심을 이동하면서 생긴 중동 지역의 전략적 공백을 중국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
특히 전통적인 친미 국가였던 중동의 맹주 사우디가 미국과 거리를 두며 이란과 함께 중동의 '대화해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은 커지고, 그만큼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중동 자체 결속 움직임 확산…미국 복귀 시도
사우디-이란 발 '화해 기류'가 주변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 달 남짓 후인 4월 12일에 카타르와 바레인, 시리아와 튀니지가 각각 관계 정상화를 발표했다. 또 이날 사우디와 시리아가 단교한 지 12년 만에 사우디 제다에서 외교부 장관 회담을 열어 영사 업무 재개와 항공편 재개통에 합의했다. 5월 9일에 다시 대사관 문을 열었다.
이틀 후인 4월 14일 아랍연맹 외교장관회의는 2011년 아랍의 봄 때 반정부 시위 탄압과 내전 과정에서 잔혹 행위를 저질러 퇴출됐던 시리아의 복귀를 결정하고, 5월 7일 아랍연맹에 시리아를 공식으로 복귀시켰다.
예멘 내전도 종식 수순을 밟고 있다. 사우디는 시아파의 한 분파로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2015년 예멘 수도 사나를 점령하자 정부군을 돕고자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이란과 화해하자 사우디는 4월 9일 사나에 대표단을 파견해 후티 반군과 평화협상에 돌입했다.
초조해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동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7일 전격적으로 사우디를 방문해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이달 중 사우디를 방문해 전략적 관계 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란 해군사령관의 '걸프 해군동맹' 발언은 이런 와중에 나온 것이다. 그의 말이 그대로 현실화한다면 역내 국가들끼리 '독자적인 군사동맹'을 결성한다는 면에서 미국의 중동 전략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격변의 시대다. 윤석열 정부가 이분법적인 ‘가치 외교’를 내걸고 국익과 경제는 도외시한 채 미국과 일본만 바라보고 반중국, 반러시아 전선에서 행동대를 자임함으로써 갈수록 다극화하는 세계에서 ‘고립’될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