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엔 '포탄', 일본엔 포탄 제조용 '폭약' 요구
도쿄서 미·일 국방회담…일본, 공업용 TNT 판매 의견접근
미국, 윤 정부에도 TNT 판매 의사 타진했을 가능성 있어
자민당 의원 "방위력 증강, 정상국가 가는 길의 5분의 4"
미국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보낼 155mm 포탄 제공을 한국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포탄 제조를 위해 일본으로부터 고성능 폭약인 TNT 구매를 추진 중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1일 도쿄 일본 방위성에서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과 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포함해 일본의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협의했다.
로이터 통신은 2일 복수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이 오스틴 장관에게 미국 정부에 군사용으로 쓸 수 있는 '이중 용도'의 공업용 TNT의 미국 판매를 허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 포기'를 선언한 현행 일본의 평화헌법의 정신에 따라 일본의 수출 법규는 자주포 포탄과 같은 인명 살상이 가능한 품목들의 해외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도쿄서 미·일 국방회담…일본, 공업용 TNT 판매 의견접근
일본이 살상 능력이 있는 TNT를 미국에 판매할 경우 국내외적으로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은 수출 법규 우회 방안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이중 용도'의 공업용 TNT를 판매하는 것이라고 통신은 덧붙였다.
일본의 수출 법규에 따르면,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이중 용도의 제품·장비에 대한 수출 규제는 군사용으로만 활용되는 것들보다는 덜 엄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육군 소유 탄약 제조 공장들에 폭약을 공급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을 TNT 공급망에 넣길 원한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TNT 수출과 관련해 어느 기업을 접촉했느냐는 로이터의 질의에 언급을 피했으나, 군사용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 품목은 국제 안보 저해 여부를 포함해 구매자의 의도를 검토하는 통상적인 수출 법규에 의거해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방위성도 논평을 거부했고, 미 국무부도 로이터의 질의에 직접적 답변은 하지 않았다. 다만 미 국무부는 우크라이나가 자위(自衛)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자" 동맹국·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우크라이나 방위 지원에 리더십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일본은 그동안 방탄조끼나 헬멧, 군용통조림과 같은 비살상 품목들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왔고, 지난달 주요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히로시마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만나 군용 지프와 트럭 등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오스틴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일본 살상무기 관련 정책의 변경 가능성을 묻자 "그것은 일본의 문제"이지만 우크라이나를 위한 "어떤 지원도 언제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관련 소식통들은 미국 정부에 폭약 공급을 하게 될 일본 기업이 어떤 곳인지 확인하기를 피했고, 미국이 구매를 원하는 TNT의 양이 얼마인지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이 미국에 상업용 TNT를 공급하는 것은 임시 조치일 수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대다수 의원이 수출 제한의 완화 또는 폐지를 원하고 있어서다.
미국, 윤 정부에도 TNT 판매 의사 타진했을 가능성 있어
앞서 기시다 총리는 작년 12월 일본의 5개년 방위력 증강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는 미국의 잠재적 동맹국들에 살상무기 공급을 허용하는 수출 법규 개정을 약속한 바 있다.
일본 방위성 차관을 지낸 나가시마 아키히사 자민당 의원은 로이터에 방위력 증강은 일본을 2차 세계대전 패배의 유산에 얽매이지 않는 "정상 국가"로 가는 길의 5분의 4에 해당하고 "수출 규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머지 20%"라고 주장했다.
한편 윤 정부도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인도적‧재정적 지원에 치중해왔으나, 지난 4월 26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155mm 포탄 등 살상무기 지원으로까지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윤 정부는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155㎜ 포탄 10만 발과 얼마전 미국 도청 문건이 폭로한 33만 발을 포함해 총 50만 발을 보냈거나 보내는 중이다.
이와 별개로 미국이 TNT 구매를 위해 윤 정부에게 의사를 타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