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 입항 원조가 DJ·노무현?…YS가 '원조'

원조 타령…국힘과 조선일보 역사 인식 비참

민주당 정권 때 입항했으니 욱일기는 괜찮다?

역사적 맥락 고려 없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

지금, 왜, 욱일기 입항반대 여론 높은지 성찰 없어

국민들의 지지 받지 못하는 외교는 결국 실패

2023-05-31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9일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 함이 다국적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욱일기의 일종인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로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다국적 훈련(이스턴 엔데버 23)은 한국,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한 가운데 31일 제주 동남방 공해상에서 열린다. 2023.5.29 . 연합뉴스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 전쟁의 상징이자 전범기인 '욱일기'를 게양한 채 부산항에 입항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과 극우수구매체가 때 아닌 '욱일기 입항 원조' 타령을 하며 여론 '물타기'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책임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정쟁에 골몰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반일 감정이 자리 잡은 근본 이유에 대한 고민이 먼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DJ·노무현 정부가 욱일기 입항 원조?

느닷없는 '욱일기 입항 원조' 타령은 지난 29일 오전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함이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욱일기 입항에 대해 비판이 나오자,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인 박대출 의원은 페이스북에 "한심한 주장"이라면서 "민주당 주장대로라면  욱일기 입항으로 국민 자존심 짓밟은 원조는 DJ(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07년 9월에도 욱일기를 단 일본 카시마함이 인천항에 입항했고, 우리 해군의 사열을 받았다. 그보다 전인 1998년에는 진해 관함식 참여를 위해 일본 하루나, 세토기리, 묘코 등 자위대함 3척이 욱일기를 달고 입항했다"며, 온라인 백과사전인 '나무위키' 사진 자료 등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향해서는 왜 국가관과 역사관을 의심하지 않은 것이냐. 욱일기도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냐"며 "국민들은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는 '무지성 반일몰이'에 속지 않는다"고 했다.

전형적인 '물타기' '논점 흐리기' 정치 수사

기성언론에서 박 의원의 주장을 사실관계 검증도 없이 그대로 기사화하자, 국민의힘은 '내로남불' '친일 선동'이라는 프레임을 걸며 조직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30일 페이스북에 "DJ 정부 시절과 노무현 정부 시절은 물론 2017년 문재인 정권 시절에도 자위대함은 자위함기를 단 채 국내에 입항했던 사실이 기록으로도 버젓이 남아 있다"며 "그때는 욱일기가 아니었는데 윤 정부 출범 후 돌연 욱일기가 돼 버린 건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잊을 만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민주당의 '반일 선동 본능'이 지겹지만, 이번 건은 역사에 길이 남을 민주당의 헛발질이 될 모양새"라며 "'친일몰이'와 '반일 죽창가'가 주는 쾌감에 취해 스텝이 꼬인 나머지 자당이 배출한 대통령들마저도 '친일 잔재'로 만들어버리는 좌충우돌 행보를 했다"고 했다.

 

네이버 포털 갈무리.

<조선일보>도 여기에 가세해 '자위함기 단 日함정 2척 입항…文정부, 사진 공개 안했다' '자위함기 단 日 함정 부산 입항…DJ·노무현 때도 들어왔다' 등의 기사를 포털에 내걸며 여당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의 논리는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도 욱일기 입항 사실이 있으니 윤석열 정권에서도 욱일기 입항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단편적인 인식으로 해석된다. 역사·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 진영 논리로 치환해 정쟁화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논점 흐리기'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여기에 더해 한국이 이제는 전범기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하태경 의원은 30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일장기가 전범기인데 일장기는 왜 허용하냐"며 "욱일기하고도 화해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은 여전히 전범기를 사용하고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국주의와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를 인정하자는 것은 수준 낮은 역사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욱일기 단 함정 입항 반대

애초에 여당이 욱일기 입항 문제와 관련해 고려해야 할 것은 언제 욱일기 입항이 됐냐가 아니라 국민들의 대일 외교에 대한 인식으로 보인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외교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외교가의 금언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 문제가 결부된 대일 외교에서는 특히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달 미국한테 대통령실 도청을 당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뒤통수를 맞으며 국정 지지율이 20%대(한국갤럽 4월2주차 조사 참고)까지 폭락한 바 있다.

이 같은 면에서 최근의 국민들의 욱일기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여론조사는 정부·여당이 참고할 만하다.

여론조사꽃이 26~27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자위대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부산항에 입항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73.9%가 '전범기인 욱일기를 게양한 채 입항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1.5%에 그쳤다.

여론조사꽃은 조사 결과에 대해 "여야 지지층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욱일기 게양한 채 입항'에 대해서는 명확히 반대 의견이 높았다"면서 "국민의힘 지지층만이 양쪽 의견이 1% 내외에서 팽팽하게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꽃이 26~27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과 친일스런 정권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이처럼 욱일기 입항에 대해 부정 여론이 높은 이유는 역사적인 면에서나 현실적인 측면에서나 자명해 보인다.

첫째, 욱일기와 일본 자위대 자체에 대한 반감과 해결되지 않은 한일 간 역사 문제다.

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육군과 해군이 군기로 사용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을 상징하게 됐다. 그러나 독일이 나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금지한 것과 달리 일본은 이를 그대로 계승해서 사용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외무성 자료에 따르면 해상자위대는 1954년 자위대법 시행령으로 옛 일본 해군기를 자위함기로 사용했다. 이에 따라 한국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 등 일본의 침략을 받은 국가들에서는 욱일기 사용을 두고 종종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에 피파(FIFA) 산하 아시아축구연맹(AFC)은 관중이 욱일기를 내건 책임을 물어 일본팀에 1만 5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그만큼 아시아 지역의 피해국에서 욱일기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내에서의 반감은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이 나서서 부채질한 영향이 크다.

대통령실은 일본과의 셔틀외교를 복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은 일본의 즉각적인 참여를 이끌지 못한 굴욕적인 해법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일본 총리로부터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일본의 손만 들어준 꼴이 됐다.

이러한 가운데 군사강국을 획책하는 일본은 여전히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 '군사 동맹' 움직임까지 보이면서 한국 영토에 다시 일본 군대가 발을 디딜 명분을 내주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욱일기 입항에 대한 반감은 이러한 정서가 밑바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나 여당은 일본 외무성도 욱일기라고 인정하고 있음에도 일본 함정에 게양된 욱일기는 '욱일기'가 아니고 '자위함기'라며, 일본 외무성이나 방위성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국민들의 반감만 사고 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자위함기와 욱일기는 조금의 차이는 있긴 하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반일 감정 부추겨

둘째, 생존의 문제다. 일본은 이르면 7월께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투기를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정부에서는 시찰단을 보냈지만, 인적 구성부터 시찰 내용까지 깜깜이로 진행되면서 국민들의 불신만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시찰단을 보내자 급기야 후쿠시마 수산물을 수입하라고 압박까지 하고 나선 모습이다.

 

 일본 후쿠시마의 도쿄전력 제1원전 부지에 늘어서 있는 약 1천개의 사고원전 핵 오염수 저장탱크들.  2023.02.22. AP 연합뉴스

그러나 대통령실은 후쿠시마 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가 한국 원전에서 배출되는 삼중수소보다 적은 양이라며 일본 자민당의 주장을 인용해 후쿠시마의 안전성을 설명하고, 삼중수소의 생체 내 반감기가 최대 550일이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있음에도 열흘이면 배출된다며 일본 정부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국민의힘은 '후쿠시마에서 가져온 물 1리터가 있다면 바로 마셔볼 수 있다'는 주장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산 외국인 전문가를 자신들의 간담회에 또다시 초청해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10리터도 마실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게 했다.

이 발언은 나중에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음용하면 안 된다"고 정리해 일단락됐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두고 벌어진 어이없는 촌극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퍼주기에만 '올인'하는 윤석열 정부와 일본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꽃이 26~27일 실시한 전화면접조사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 이후 정부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재개한다면, 후쿠시마 수산물을 드실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4.2%가 '일본 수산업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먹어줄 생각이 없다'고 응답했다. '우리 정부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이니 먹을 생각이 있다'는 응답은 14.1%에 불과했다.

반일 감정만 부추기는 정부…역사적 오류까지

이러한 역사 문제와 현실 문제를 제쳐두고 과거 민주당 정권도 했으니 윤석열 정권도 괜찮다는 식의 주장은 되풀이하면 되풀이할수록 '친일 정부'라는 비판만 나올 뿐이다.

생존 문제인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문제까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욱일기가 무슨 문제냐는 식의 주장은 국민들의 공분만 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역대 민주당 정권 깎아내리는 문제에만 치중하다보니 사실관계도 틀렸다. 국민의힘은 김대중 대통령 때 욱일기를 게양한 함정 입항이 '원조'라는 식으로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996년 9월 2일자 MBC 보도 화면 갈무리.

1945년 해방 이후 첫 '욱일기 입항'은 국민의힘 전신인 신한국당이 집권한 1996년 김영삼 정부 때다. <MBC>의 1996년 9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일본 해상자위대 연습함 카시마호와 호위함 사와유키호는 9월 1일 부산항 제8부두에 정박했다. 해방 이후 51년 만에 처음이었다.

야마다 마치오 제독은 정박 다음 날인 9월 2일 오전 9시 입항식과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방문은 지난 94년 한국해군의 방일에 대한 답방형식이며,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밝혔다. 당시 <MBC> 보도 화면에는 함수에 일장기, 함미에 욱일기가 게양된 모습도 함께 확인된다.

국민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극일운동 시민연합 등 부산 시민단체들은 자위대함이 입항했던 1996년 9월 1일부터 9월 2일까지 시내 곳곳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를 가지고,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중요한 것은 당대 시민들의 인식과 한일 관계

국민의힘이 언급하는 김대중 대통령도 당시 상황을 지금과 단순히 비교하는 것도 무리다. 김 대통령이 관함식에 참여한 시기에는 21세기를 앞두고 한일 관계에 있어 변곡이 있었다.

김 대통령은 1998년 10월 13일 진해 관함식에서 일본 함정을 사열하기 바로 직전인 10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윤석열 정부가 계승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이끌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임기 초인 2003년 한일 정상회담을 하며 김대중 정부의 유산을 계승하려고 노력 했으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정부가 급속도로 우경화하면서 양국관계가 악화일로에 접어들게 됐다.

그럼에도 일본의 입항을 허용했다고 노무현 정부에 대해 '친일 비판'을 하거나 '친일 정부'라는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부가 독도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국민 감정을 대변해 일관적인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당선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한미연합사를 방문해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이날 장병들을 격려하고, 주한미군의 역할과 한미간 굳건한 동맹관계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국민의힘과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10월 자위대함의 입항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공격하고 있지만 이 역시 어불성설이다.

당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완성(2017년 11월)하기 직전으로,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어온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미국, 일본과 미사일 경보훈련을 실시하는 등 현 윤석열 정부 이상으로 강경 대응을 했었다.

이러한 맥락도 고려하지 않고 과거 정부의 욱일기 입항을 현재와 단순 비교해 자신들도 비판하지 말라며 욱일기를 옹호하는 것은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이자, 저열한 역사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욱일기 사용은 해방 이후 언제나 문제였고, 당시 처한 상황과 국민들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의 양상이 제각각이었을 뿐이다.

민주당 "윤석열 정부, 저열한 연사 인식"

민주당 유정주 의원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역사적으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할 때 교두보 삼은 통한의 땅이요 침략의 거점이었던 부산에 욱일기가 들어왔다"며 "아무리 역사 인식이 저열해도 이런 일에 윤석열 정부와 여당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방부 답변은 더 가관으로, 일본 함정의 깃발이 욱일기와 형태가 다르다며 욱일기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며 "과거 침략의 상징인 부산 앞바다에 (욱일기가) 들어온 것을 오히려 두둔하는 것"이라고 했다.

육군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의원은 같은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자위함기 자체가 부산항이나 이런 데 입항하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일본은 영토적인 야심이 있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강조하고, 또 지금 역사도 부인하는 상태"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와야 된다면 욱일기를 달고 들어오면 안 된다. 욱일기는 군국주의의 상징이며 침범국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우리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지 않고, 독도영유권 주장도 더 강화하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욱일기를 달고 들어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을 무시하고 국민들의 정서상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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